[소리시선] 대권 후보에게 조국 전 장관보다 열배는 더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애국자

스코틀랜드 장군 맥베스는 내전에서 승리하는 전공을 세우고 던컨 왕으로부터 파격적인 대영주의 작위를 하사받는 이른바 “하해지은(河海之恩)”의 성은(聖恩)을 입는다. 이에 그가 나라의 은혜를 더욱 뜨거운 충성으로 보답했을까. 정반대다. “맥베스가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의 황당한 예언이 문제였다. 그는 반신반의하지만 평소 주술을 신봉하던 아내의 부추김으로 결국 밤중에 잠에 든 왕을 암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는 반역에 대항하는 반란군에게 패배한 후 그의 목이 적장의 창끝에 매달려 조리돌림 당하는 운명으로 끝난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자질도 능력도 그리고 깜도 안 되는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유일한 애국자를 자칭하며 대권을 넘보는 “애국자 계절”이 돌아오면서 『맥베스』를 다시 읽으니 영원한 고전이 주는 울림은 역시 새롭기만 하다. 대한민국 판 『맥베스』가 쓰이고 있기 때문일까. 전 정권에 찍혀 한직만을 맴돌다가 새 정권이 들어서며 중요 수사의 주역으로 공을 세운 후 인사 관행을 깬 파격적 승진을 거듭하며 검찰총장에 오르는 성은을 입은 인물이 급기야 정권에 반기를 들고 대선가도에 나섰다.  

허상

그도 맥베스처럼 대선 판에 뛰어든 것이 아내의 점술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내가 점술로 박사학위논문을 비롯해 여러 논문을 쓴 것까지는 사실로 확인됐다. 비록 그 논문들이 모두 완벽한 복사 수준의 표절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해당 대학의 입만 잘 틀어막으면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다. 맥베스와 일치하는 대목은 역시 배신이다. 아무리 미화해도 탐욕에 기반 한 배신은 여전히 추악하다. 오죽해야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는 옛말이 있을까. 대선출마 선언은 법과 원칙으로 포장했던 그의 정치적 욕망을 드러낸 것이다. 

대권도전에 대한 그의 발판은 “살아있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참 검찰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는 보수언론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대통령을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현재 각종 부패 비리로 영어(囹圄)의 몸이 된 두 명의 전 대통령들이 여실히 입증해준다. 그들도 한때는 보수언론들에 의해 구국과 중흥의 선구자로 예쁘게 분칠된 바 있다. “살아있는 권력”이 “현재 임기 중인 권력”을 의미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주장처럼 “조직적 폭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최고통치자의 권력”을 뜻한다면 사실이 아니다.

출처=오마이뉴스.
국민의힘에 입당한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 국민의힘 사무처 직원들과 인사를 마친 뒤 본관을 나서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꼬리곰탕

촛불로 탄생한 현 정권이 폭력적 권력행사를 자제하는 것만은 부인하지 못한다. “살아있는 권력”이란 막걸리를 마시다가 술김에 정권을 탓하는 볼멘소리만 내도 빨갱이로 몰아 감방에 처 넣고 가족을 풍비박산 냈던 군부독재정권에 어울리는 말이다. 대통령에 대놓고 욕을 바가지로 퍼부어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는 정권에겐 어불성설이다. 그가 서슬 퍼런 독재시절 권력에 소신 있는 수사로 당당히 맞섰다면 진정성을 인정하겠다. 허나 그는 MB정권 때는 “피의자였던 MB와 점심으로 꼬리곰탕을 함께 먹고 BBK 수사를 덮어준” 사상최악의 특검팀의 일원이었다. 

결국 BBK 비리는 MB가 몸통임이 사실로 밝혀졌다. 검찰의 비위를 맞춰주며 사리사욕을 꼼꼼히 챙겼던 MB정권에는 꼬리를 내린 것이다. 정말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는 장삼이사(張三李四) 어중이떠중이도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대통령과 맞장을 뜨는 민주주의가 만개한 시대다. 이런 환경을 이용해 억지스런 혐의로 최고 권력의 언저리를 수사하는 시늉을 내니 보수언론은 그를 단번에 “공정과 상식”의 화신으로 추켜세웠다. “법과 원칙 앞에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화려한 수사(修辭)로 미화했지만 실상은 다르다. 사법 적폐의 온상인 검찰의 기득권을 깨는 개혁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저항에 다름 아니다. 

역심

결과적으로 정권수사는 그에게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 줬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조직에 대한 개혁 속도를 늦추게 만들면서 다른 한편으론 본인이 대권에 눈독을 들일 수 있는 기반을 안겨준 일거양득(一擧兩得)이었던 셈이다. 그것이 인지(認知)에 의한 순리적인 수사인지 아니면 이런 결과를 기대한 “정치적 수사”였는지는 그의 대권도전으로 그 정답이 확인되지 않았을까. 검찰개혁을 위해 특별히 임명된 검찰총장이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이미 역심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다. 

물론 민주주의 시대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원하면 대권에 도전할 수는 있다. 하지만 욕심은 많아도 자질은 턱없이 모자라다는 점에서 맥베스와 막상막하다. 예(禮)가 없는 지도자는 구성원의 충(忠)을 기대할 수 없다. 검찰총장으로 발탁돼 분수 넘치는 특권을 누린 그가 야권후보로 나서게 되자 정부에 대해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리고 자유와 법치를 부정하는 세력”이며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이라고 독설을 퍼붓는 것은 우리의 정서 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니 자신이 먹던 우물에 침을 뱉는 격이다.  

단두대

더욱이 조국 수사는 그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가 사상최대의 수사 인력을 동원하고 백 개가 넘는 압수수색 영장을 남발하면서도 재판에서 건진 것은 겨우 표창장 위조에 불과하다. 모기를 잡는데 대포를 마구 쏘아댄 꼴이니 맥베스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무능한 장수인 셈이다. 게다가 표창장 위조마저 1심 판결 후 검찰의 주장에 반하는 증거와 증언들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조국 수사는 검찰에 대한 신뢰성과 공정성을 현격히 추락시켰다. 조선시대 때도 구족(九族)을 멸한 것은 왕조에 대한 반역을 일으킨 ‘대역죄인’에 한했다. 

하지만 21세기 민주주의의 대한민국에서는 특별한 죄가 없더라도 검찰에만 찍히면 본인은 물론 가족전체와 주변의 지인들까지 탈탈 털리는 멸문지화(滅門之禍)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 코미디를 보여준 게 조국의 사례다. 이런 몰상식하고 잔인한 수사가 “공직자에 대한 검증”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된 것이다. 이제 그도 검증의 단두대에 서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일개 장관이 아니라 국가 전체 최고책임자가 되고자 함이니 열배는 더 엄격한 검증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가 전유물처럼 말하는 “공정과 상식”이 살아있는 반듯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선 말이다.

출처=오마이뉴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하우스 카페에서 열린 청년 싱크탱크 ‘상상23 오픈 세미나’에 참석, 질의에 답하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종착지

“한 주에 5일간 하루 24시간 연속으로 일할 수도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발언은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에 도전하는 후보로서 그가 얼마나 기본적 소양과 철학이 부족한가를 보여준다. 악랄함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북한의 아오지 탄광도 그렇게 하면 운영이 불가능할 것이다. 검사가 되자마자 젊은 나이에 “영감님” 소리를 들으며 “슈퍼 갑”으로만 살아왔을 그가 대통령에 출마한다고 갑자기 서민들의 애환을 알 수 있을까. 시장으로 달려가 어묵 한 꼬치를 먹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맥베스의 탐욕이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끝난 것은 중세 영국에 그나마 약간의 도(道)라도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21세기 민주주의의 한복판에 있는 한국의 『맥베스』는 어떤 결말로 끝을 맺을지 지켜볼 일이다. 욕망만으로 달리는 대권열차의 종착지는 과연 어디일까. / 김헌범 논설위원, 제주한라대 교수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