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마흔한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일본 도쿄 올림픽 남자 양궁전, 결승보다 준결승전이 험난했다. 7월26일 한국은 개최국 일본과 맞붙었는데 4-4 동점을 이룬 뒤 슛오프(Shoot Off)를 거쳐 가까스로 결승행 티켓을 따냈다. 양 팀 선수들이 한 차례씩 화살을 쏘는 슛오프에서 한국과 일본은 똑같이 28점을 기록했지만 김제덕이 중심부에 가장 가깝게 쏜 화살 덕에 일본을 제압했다. 김제덕이 쏜 10점 화살은 중심에서 3.3㎝, 일본 가와타 유키의 화살은 5.7㎝ 떨어져 있었다. 단 2.4㎝의 거리 차이지만  면적으로 계산하면 약 3배 정도로 초점에 가깝다.

'태극궁사' 안산,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 여자 양궁은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나온 여자 개인전·단체전 금메달 22개 중 18개를 쓸어 담았다. 2세트까지 세트점수 3-1로 앞서던 안산은 3세트 첫발을 8점에 쏘면서 잠시 흔들렸고 결국 4세트에서 3-5 역전을 허용했다. 그러나 마지막 5세트에서 안 산은 9점, 10점, 10점을 쏘며 9점만 세 번 쏜 오시포바와 5-5 동점을 만들었다. 마지막 슛오프에서 안산이 먼저 10점을 쏘고 러시아오시포바가 이어 8점을 기록하면서 안산의 3관왕 등극이 확정됐다. 안산(安山)은 흔들리지 않은 큰 산이었다.

도쿄 올림픽에서 양궁 혼성단체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안산 선수와 김제덕 선수. 사진=SBS 도쿄 올림픽 중계 영상 갈무리.

한국은 왜 양궁이 강한가?

중국인들이 주변 민족들을 지칭하면서 동북지역에 살고 있던 우리 조상들에게 붙인 동이족(東夷族활을 잘 쏘는 민족)명칭이다. 활쏘기하면 이씨조선 태조 이성계(1335-1408) 장군이 있다.

역사에 기록된 이성계의 활솜씨를 보면, 중국 역사상 최강의 인간병기로 손꼽히는 항우급의 인간병기다. 정사에 실린 이성계의 활실력에 관한 일화들 몇 개를 소개한다. 동녕부의 추장 고안위(高安慰)가 오녀산성에 웅거하면서 항전을 하자 이성계는 편전(애기화살)을 이용하여 성의 병사들 얼굴에 70발을 쏴 70명 모두 맞췄다. 이를 보고 고안위는 기겁하여 도망갔으며, 성안의 적군들의 사기가 떨어져 곧 항복을 하였다. 이것을 보고 주위 여러 성들이 항복하였는데 그 수가 1만 여 호나 되었다.

또, 기샤인테무르가 이끌고 나온 장수 중에 처명(處明)이라는 자가 있는데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잘 싸우자 이성계가 몽골어를 할 줄 아는 이원경에게 항복 권유를 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단칼에 거절 당하자 이성계는 활을 들어 처명의 투구를 날려버렸고 두 번째 권유에도 거절하자 처명의 허벅다리를 맞춰버렸다. 이에 처명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급히 말을 돌렸고 이성계는 놔줬다. 상처를 치료하고 돌아온 처명은 다시 군사를 이끌고 와 싸움을 걸었는데 이원경이 세 번째 설득을 했다. "이번에 말에서 안내려오면 너님 헤드샷 각오하셈" 결국 처명이 말에서 내려 머리를 조아리며 이성계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이야기, 지리산 인월 황산대첩 때 왜구 적장 아기발도의 투구를 활로 맞춰 벗겼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 뒤를 이어 이지란이 얼굴에 화살을 맞춰서 쓰러뜨렸다고 한다. 다만 일본 갑옷의 투구를 보면 이성계가 맞추었다는 정자 부위가 상당히 큰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투구는 그 부분이 상당히 작으나 일본 투구에는 화려하다 못해 너무 크다싶을 정도인 장식이 달렸기 때문에 정자도 크다. 그렇다 해도 전투중이라서 필시 움직이는 상태였을 상대를 두 번 다 같은 위치에 맞췄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이건 현대 저격수들도 어려운 일이다.

이성계는 왜구와의 격전을 앞두고 150보 떨어진 곳에서 투구를 놓아두고 세 번 쏴 세 번 다 맞혀 군사들의 사기를 높였다. 1보가 대략 1.8m 이니, 270m 거리를 백발백중으로 맞히는 실력이었던 셈이다.  이 정도 사거리는 웬만한 초기 화약병기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또한 가지고 있던 화살 20개중 17개를 쏘아 모두 맞혔는데 모두 왼쪽 눈초리에 명중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런 일화도 있다. 5월, 경상도 원수(慶尙道元帥) 우인열(禹仁烈)이 비보(飛報)하기를, "나졸(邏卒)들이 말하기를, '왜적이 대마도(對馬島)로부터 바다를 뒤덮고 오는데 돛대가 서로 바라다보인다.' 하니, 도와서 싸울 원수(元帥)를 보내 주기를 청합니다." 하였다.

이때 왜적이 있는 곳은 가득히 찼으므로, 이성계에게 명하여 가서 이를 치게 하였다. 이성계가 행군하여 아직 이르지 않으니 인심(人心)이 흉흉하여 두려워하였다. 인열(仁烈)의 비보(飛報)가 계속해 이르므로, 이성계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가서 적군과 지리산(智異山) 밑에서 싸우는데, 서로의 거리가 2백여 보(步)나 되었다. 적 한 명이 등(背)을 세워 몸을 숙이고 손으로 그 궁둥이를 두드리며 두려움이 없음을 보이면서 욕설을 하므로, 이성계가 편전(片箭,반으로 쪼갠 대나무 통에 넣어서 쏘는 화살)을 사용하여 이를 쏘아서 화살 한 개에 넘어뜨렸다. 이에 적군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기운이 쑥 빠졌으므로, 곧 크게 이를 부수었다. 또한 어느 날 신하들이 공민왕 앞에서 활을 내었는데 이성계가 100번을 쏴 다 맞히어 "오늘날의 활쏘기는 다만 이성계(李成桂) 한 사람뿐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거기다 원나라에서 활을 잘쏘기로 유명한 찬성사(贊成事) 황상(黃裳)이 이성계와 함께 활을 쏜 적도 있었는데, 족히 수백 발을 쏘았다고 한다. 이 때 황상은 50발을 연달아 맞힌 후 맞히기도 하고 못 맞히기도 하였으나, 이성계는 (수백 발)전부 다 맞혔다고 한다. 

여진정벌 당시에는 여진기병의 말의 눈을 쏘아 넘어뜨리기도 했으며, 온 몸에 갑옷을 입은 장수가 달려오자 투구를 쏘아 맞혔는데, 그 장수가 놀라서 입을 벌리자 입 안으로 화살을 쏘아 죽였다는 기록도 있다. 전주에는 이성계 태조의 “활“ 관련 많은 전설이 남아있다. 지리산과 전주 오목대, 경기전과 건지산 왕능에, 이씨조선왕조 발원지 향취를 곳곳에서 보고 들을수 있다.

식사를 할 때, 한국은 길이가 같은 접음과 숟갈, 중국은 키다리 접음과  작은 숟갈, 일본은 접음과  흔적같은 숟갈을 사용 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길이가 같은 접음과 숟갈을 사용,식사를 하면서 손재주(手技) 기술을 익혔다. 대칭의 기술이다. 화살이 70미터 공간을 날라가 원의 대칭중심에 꽂힐려면, 좌우가 힘의 균형일 때이다. 순간에 바람이 풍향, 풍속과 화살이 속도는 경험과 본능적으로 계산되어진다. 1995년경 북경에서 열린 국제학회에서 필자가 토론에서 ‘화살의 대칭과 균형의 코딩’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중국과 일본은 접음과 숟갈 길이가 비대칭적(Nonsymmetric)이다. 따라서 한국은 손으로 만드는 반도체나 자동차 조립 기술이 한 수 위다. 김제덕(17세, 경북일고)의 “파이팅” 자신에 거는 응원과 안산(20세, 광주여대)의 “눈빛”에서 정신 집중력을 보았다. 태조 이성계는 초인간적인 활쏘기 기술을 터득, “신궁(神弓)”소릴 들었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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