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소리] 활어차들 바닷물 공급 위해 횡단보도 점령...차도로 내몰린 보행자들

제주의소리 독자와 함께하는 [독자의소리]입니다. 

제주도민 고주환(가명) 씨는 최근 제주동문시장 야시장을 찾았다가 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인도 끝 횡단보도를 건너가려다 가로막고 있는 활어차 때문에 차도로 내려갈 수밖에 없어 발을 차도에 딛는 순간 마주보는 방향에서 차량이 순식간에 코앞으로 지나간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주환 씨는 가슴을 쓸어내린 뒤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사람은 안중에 없고 횡단보도를 완전히 가로막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활어차를 살펴봤지만, 차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습니다.

보행자의 안전을 담보하는 횡단보도를 마치 지정 주차공간인 것처럼 점령(?)한 활어차들 때문에 보행자들이 자칫 큰 화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갈 길이 바빠 걸음을 재촉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환 씨는 수일 뒤 다시 동문시장을 갈 일이 생겨, 며칠 전 사고를 당할뻔한 기억에 다시 같은 장소를 들렀습니다. 역시나 활어차들이 떡하니 횡단보도를 완전히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걸음이 불편한 노인들이나 유모차까지도 차도로 내려와 위험한 보행을 하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제주시 주차단속 부서에 신고했는데, 공무원 분의 돌아온 대답은 "CCTV에서 횡단보도 무단주차한 차량 번호판이 잘 보이지 않아 단속하기에 어려움이 있다"였다고 합니다. 

주환 씨는 "보행자들이 횡단보도를 점령하고 무단주차한 불법 차량들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차도로 다니는 상황인데도 CCTV를 탓하며 주차에 어려움이 있다는 무지한 답변을 내놓을거면 주차단속 부서는 뭐하러 있는것인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트리며 제보해왔습니다. 

주환 씨는 “엄연히 횡단보도는 주차할 수 없는 구역 아닌가. 사람들도 많이 다니는 곳인데 보행로를 가로막으니 차도로 내려갈 수밖에 없는 위험한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고 토로했습니다.

ⓒ제주의소리
제주동문시장 남수각 공영주차장 횡단보도를 가로막고 있는 활어차입니다. 주환 씨는 이 차들 때문에 사고 위협을 겪기도 했습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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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를 정확히 가로막은 활어차입니다. 바닷물 공급을 위해 잠시 정차해둔 것이 아니라 주차를 해놓은 모습입니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가 제보를 받고 수일간 반복 취재한 결과 활어차량들의 횡단보도 무단주차는 사실이었습니다. 문제의 활어차들은 동문시장수산시장 상인들이 사용하는 바닷물을 공급하는 활어차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시장 안으로 차량이 들어갈 수 없어 남수각 공영유료주차장 옆 남수교에 호스를 연결한 뒤 차량에 실린 바닷물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취재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 활어차는 시장 내부로 바닷물을 공급하고 있지 않은 상태임에도 3대나 세워져 횡단보도를 가로막는 등 불법주차 된 모습이었습니다.

바닷물을 공급하기 위해 활어차 1대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옆으로 활어차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던 것입니다.

이날 유모차를 이끌고 보행로를 지나던 한 시민은 정상적인 길이 가로막혀 어쩔 수 없이 차도로 내려가는 등 위험천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이의 손을 잡은 한 어머니도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레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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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 시민들은 활어차를 피해 차도로 나와 걸어야만 했습니다. 이날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가로막힌 횡단보도와 활어차를 피해 차도로 내려와 걷는 모습도 목격됐습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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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어쩔 수 없이 활어차를 피해 돌아가는 한 어머니의 모습이 위험해보입니다. 골목에서 나오는 차량과 마주한 모녀의 모습이 위태롭습니다. ⓒ제주의소리

누구나 불편함 없이 지나갈 수 있도록 열어둬야 할 보행로임에도 불구하고 활어차들이 바닷물 공급을 목적으로 관행적으로 차를 주차해둔 것입니다. 

주차는 밤 늦게까지 이뤄졌습니다. 오후 10시께 현장을 다시 찾았을 때도 활어차는 두 대가 세워져 있었고, 그중 한 대는 시장으로 물을 공급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주차는 일반 보행자는 물론 교통약자들에게 더욱 잔인하게 다가옵니다. [제주의소리]는 지난 2월 [휠체어 직접 타봤더니…계단·턱·2층·버스 공통점 ‘깎아지른 절벽’] 기사를 통해 교통약자들의 현주소를 체험기로 풀어낸 바 있습니다. 

취재기자가 직접 휠체어에 올라 거리를 다녀본 결과 보행로 끝, 횡단보도에 세워진 차량들은 큰 위협이었습니다. 

통행을 보장하는 보행로는 자유를 앗아갔고, 어디서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는 사치가 됐습니다. 갈 수 있는 곳을 먼저 찾게 됐고, 거리보다 이동하기 편하고 안전한 길을 우선하게 된 것입니다.

누군가는 피해갈 수 있는 사소한 문제일지 몰라도 다른 누군가는 위험한 길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는 등 교통약자들은 이런 힘든 싸움과 매일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통행의 자유와 안전이 보장돼야 할 보행로가 활어차로 가로막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언제든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동문시장을 찾는 방문객 등 통행이 많은 지역이라 사고 가능성은 더욱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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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어차들은 밤에도 어김없이 횡단보로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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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에 주차한 뒤 물을 빼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제주의소리

지난 2월 [무심코 걸었던 길, 누군가는 날마다 사투를 벌입니다] 기사에서 이준협(39) 씨는 “휠체어를 타고 보행로를 출입하려면 경사로를 통할 수밖에 없는데 끝 지점에서 불법주차 차량을 만날 땐 맥이 빠진다. 결국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 차도를 통해 이동할 수밖에 없으니 위험하기도 한데다 시간도 두 배 이상 걸리니 화가 난다”고 했습니다. 

이어 “차들이 보행로 경사로가 낮은 것을 이용해 주차하는 경우가 많다. 잠시 주차하는 거라고 말하지만 누군가에겐 잠시가 긴 시간이 되고, 이동권 침해와 보행로 신뢰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바닷물을 공급하기 위해 잠시 세운 것도 아닌 지정석처럼 횡단보도를 아예 점령하고 차를 세워둔 상황에서 이 같은 주차는 언제라도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임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CCTV나 번호판 식별이 안된다는 이유를 들어 단속에 느슨한 행정기관의 태도도 무사안일하다고 비판 받을 수 있습니다. 시민의 제보가 있었는데도 인명사고가 나야만 사후약방문 식의 뒷북 행정을 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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