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디 골아봅주’ 제주가치-제주의소리 공동기획] 임형묵 제주가치 공동대표·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후 30년, 제주국제자유도시 출범 20년을 맞은 제주. 개발과 성장만을 외치며 달려온 오늘 제주의 모습은 도민이 바라던 행복과 풍요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지난 30년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미래 100년을 향한 진단과 성찰, 그리고 근본적인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발적이고 다양한 정치참여를 통해 제주다움을 지키고 더 나은 제주를 만들어가려는 시민모임인 '제주가치'와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릴레이 칼럼 ‘혼디 골아봅주’(함께 이야기해봅시다)를 매주 싣는다. 제주가 과잉관광과 난개발 위기로부터 탈출, 지속가능한 생태평화 공동체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제주가치 공동대표 8인의 참여로 도민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편집자 글]  

 # 갯벌 세계자연유산 등재
우리나라 서남해안 갯벌 네 곳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갯벌들은 생물다양성이 잘 보존되었고 멸종 위기 철새들의 기착지로서 가치가 크다는 것이 대표적 등재 이유이다. 난 운 좋게도 등재된 갯벌들을 모두 가보았고 그곳의 생물들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갯벌 위를 걸으며 그곳에 사는 수많은 생물을 보면 우린 이런 어마어마한 자원의 가치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어려서부터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하니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우리에겐 자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보유한 자원의 가치와 그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고 있었는지 몰랐을 뿐이다.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의 제주 암반 조간대. ⓒ임형묵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의 제주 암반 조간대. ⓒ임형묵

 # 제주 조간대 우수성
갯벌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이유가 ‘생물다양성이 잘 보존되어 있고 멸종 위기 철새들의 기착지’라는 것을 다시 떠올려 보자. 난 그와 완벽히 일치하는, 어쩌면 그보다 더 생물다양성이 높고 다양한 철새가 찾는 곳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제주 해안이다. 제주 암반 조간대는 굳이 데이터를 찾을 필요도 없이 상식이나 경험에만 비추어 보아도 우리나라 어느 갯벌보다 생물다양성이 밀집된 곳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선, 모래가 섞인 갯벌이나 질퍽한 펄갯벌엔 해조류가 살기 어렵고 당연히 해조류와 더불어 사는 생물들이 없다. 또한 바위에 붙어서 살거나 돌 밑에 숨어 사는 생물도 많지 않다. 주로 갯벌 위를 기어 다니거나 굴을 파고 숨어 사는 것들만 있다. 게다가 갯벌은 평면이지만 바위는 입체적이어서 같은 면적 안에 생물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더 많다. 특히 제주도 바위와 돌은 다공질에 틈새도 많아 생물들이 살기에 아주 좋다. 그리고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쿠로시오해류의 영향으로 따뜻한 지역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생물들이 공급된다. 
철새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가 주로 철새들의 기착지인 것과 마찬가지로, 제주도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겨울 철새와 남쪽에서 올라오는 여름 철새들이 쉬었다 가거나 서식하는 곳이다. 다만 제주에는 넓은 평야가 많지 않고 새들의 주요 먹이인 곡물 나락이 부족해 대규모로 머물지 못할 뿐이지 물새, 산새, 들새에 맹금류까지 좁은 지역에 매우 다양한 종이 모이는 지역이다.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의 제주 암반 조간대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의 제주 암반 조간대. ⓒ임형묵

 # 조간대는 습지
습지가 생태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생물다양성이 높고 철새가 많이 찾는 곳을 람사르습지로 지정하여 보호한다. 보통 습지 하면 육상에 물이 고인 곳을 떠올린다. 제주에선 동백동산습지가 대표적이고 그 외 1100고지습지, 물장오리, 물영아리, 숨은물뱅듸가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었다. 모두 중산간 이상 고지대의 육상 습지이다. 하지만 갯벌도 습지고 암반 조간대도 습지다. 우리나라 람사르습지 22곳 중 7곳은 갯벌 등의 연안습지이고 람사르 유적지 정보 서비스 사이트(https://rsis.ramsar.org/)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해양 습지는 내륙습지의 절반가량인 994곳(2021. 8. 4 기준)이며 그중 해조류가 많은 조하대는 286곳, 바위가 많은 해안은 267곳이다. 이렇게 제주와 조건이 비슷한 지역이 500곳 이상 되는데 그곳들과 정량적 비교는 어렵겠지만 과연 제주도 조간대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외국의 다른 곳과 비교해 500위 안에도 들지 못할까? 람사르 사이트에선 지정된 지역들의 사진도 볼 수 있다. 정보를 파악하기에 좋은 사진들은 아니지만 난 제주도보다 나아 보이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의 제주 암반 조간대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의 제주 암반 조간대. ⓒ임형묵

 # 조간대 훼손     
갯벌의 가치를 모르던 때 염분이 많고 질퍽거리는 땅은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불과 얼마 전까지도 갯벌을 마른 땅으로 만드는 간척사업을 지도를 바꾼 역사라며 칭송했고 서산 간척지를 만든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일화가 신화처럼 떠받들어졌지만, 지금은 아산만, 천수만, 새만금, 시화호 등 대표적 간척지 모두 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제주도는 어떤가? 제주도 해안선은 부속 도서 포함 총 415.56km 중 약 25%가 인공해안선으로 전국 평균인 약 85%보다 낮다(해양수산부 연안 포털). 본섬만 기준으로 한다면 훨씬 더 낮을 것으로 생각된다. 제주엔 농지 확보를 위한 대규모 간척사업은 없었지만, 탑동과 이호 매립지처럼 절실한 사유도 없이 단순한 개발 이익을 위해 바다를 없앤 더 나쁜 사례가 많다. 해안도로 건설 과정에서 바다를 막아 환경을 변화시킨 곳은 부지기수다. 그리고 여전히 제주에서 조간대 파괴는 민간보다 관에 의해 더 주도적이고 대규모로 행해진다. 지금은 제2공항 이슈로 수면 밑에 감춰져 있었지만, 탑동 매립의 8배에 달하는 매립이 예정된 신항만 사업이 중단 없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제주 조간대에서 먹이를 찾는 멸종 위기종 저어새.
제주 조간대에서 먹이를 찾는 멸종 위기종 저어새. ⓒ임형묵

 # 조간대 자원 가치
갯벌의 가치를 그곳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이나 관광수익만으로 평가할 수 없듯, 제주도 조간대 역시 마찬가지다. 환경 정화, 생태계 유지 그리고 최근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탄소흡수 등 조간대의 역할은 바로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원시시대로 돌아가라는 것이냐며 반발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당장 활용 가능한 조간대의 기능 또한 매립이나 훼손해서 생기는 이익보다는 커 보인다. 자연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직업 덕에 여러 곳의 자연 자원을 이용한 관광, 교육 시설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우선 자연공원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쾌적한 환경과 자연을 체험할 기회를 준다. 이것은 삶의 질을 크게 높이는 것이며 많은 사람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행복한 삶’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 열섬효과를 줄이거나 공기를 정화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리고 자연공원이나 학습장, 체험 시설은 다른 관광 시설에 비해 오래 지속되고 이익이 골고루 분배된다. 내가 가본 곳 중 인상적인 곳으로는 낙동강하구에코센터와 마산 봉암갯벌을 들 수 있는데 낙동강하구에코센터는 규모와 시설에 놀랐고 봉암갯벌은 그와 반대로 크기는 작더라도 방향을 잘 잡아 열심히 노력하면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제주도로 치면 한 동네 갯가보다도 작은 범위 하구에 갈대 습지를 복원해서 체험장, 학습장을 만들고 생물 연구와 모니터링을 통해 여러 교육자료와 보고서도 펴내고 있었는데 전문성과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놀라웠다.

제주 조간대 조수웅덩이 생물들
제주 조간대 조수웅덩이 생물들. ⓒ임형묵

 # 제주 조간대 비전
제주도 조간대 전체를 생태적 관점에서 관리해야 한다. 지금은 어촌계가 마을 바다를 통제하고 있으나 어촌계는 말 그대로 어업권에 대해서만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옳다. 사람은 마을 단위로 구분할 수 있지만, 바다와 해양 생물에게는 마을이 아니라 국경도 없다. 그러므로 생태 환경에 대한 관리는 전체를 통합해서 해야만 한다. 다만 지역별 특성을 잘 파악하여 원형 보전이 필요한 곳, 교육·체험에 적합한 곳, 관광하기 좋은 곳 등으로 구분하여 그에 맞는 운영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자연유산이나 람사르 같은 권위 있는 타이틀을 확보하는 것도 명분과 활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선 반드시 연구와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제주도 조간대에 사는 생물이 얼마나 다양하며 어떤 가치가 있는지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도 중요하다. 해외 주요 해양 연구 기지들의 사례를 보면 그 자체로 경제 효과가 큰 산업이 되고 지역 발전 기반이 될 수도 있다. 
제주도가 생물권 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그리고 지질공원이 된 후의 위상 변화와 효과를 생각해보면 조간대를 훼손하며 생기는 작은 이익보다 보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서남해안 갯벌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부러워하거나 남의 일로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 것의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
갯벌이란 어마어마한 자원을 곁에 두고도 스스로 늘 자원이 부족한 나라라고 생각했듯 세계에서 부러워할 만한 생태 자원인 암반 조간대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모르고 망가트리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더 좋은 활용 방법은 없는지 같이 생각해보자.    

을숙도 하구 습지와 에코센터. ⓒ임형묵
을숙도 하구 습지와 에코센터. ⓒ임형묵

 # 먼저 조직을 갖추자
제주 도청 입구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 제주’란 캐치프레이즈가 걸려 있다. 공존이란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하지만 제주도 행정 조직엔 자연을 담당하는 부서 규모가 매우 작고 인원도 적으며 해양 쪽에선 그나마도 없다. 도청 해양수산국에선 수산업과 항만관리 그리고 해녀를 담당하지만, 해양 생태와 해양환경 업무는 하지 않으며 시청 연안관리팀에서 해양쓰레기와 오염 관련 업무 정도를 하고 있을 뿐이다. 제주도 소속의 연구소들도 대부분 수산업이나 해양 소재 이용 관련 연구를 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제주는 섬이며 누가 뭐래도 제주의 가장 큰 보물은 바다이다. 그런 바다를 더 훼손하지 않고 바다와 공존하며 가치를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더 크게 보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말로만 청정이니 생태니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조직을 만들자. 특히 제주 바다를 생태 보존과 생태적 활용의 관점에서 관리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도의회와 정치권에서도 구체적 실현 방안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지원해주길 바란다. 

 임형묵 제주가치 공동대표는? 

다큐멘터리 프로덕션 '깅이와 바당' 대표 감독이다. 대표 작품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조수웅덩이 : 바다의 시작’ 제작·감독·촬영 외에도, KBS파노라마 ‘대양을 담은 바다 조수웅덩이’ 연출·촬영, KBS와일드맵 ‘풍덩 달의 정원으로’ 촬영·출연, MBC 느림의 미학 제주 올레 12부작 촬영, EBS하나뿐인 지구 ‘자연의 길 올레’ 외 10여 편, 아리랑TV ArTravel ‘The Island of Artists, Gareth Brookes' Trip to Jejudo Island’ 촬영 등을 맡았다. 저서로는 「생명력 넘치는 제주도 조수웅덩이」, 그림책 「바당 바당」이 있다.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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