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도로 내듯 원형파괴 반복…더 큰 재앙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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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정비 사업으로 원형을 잃은 제주시 종합운동장 인근 한천(왼쪽)과 병문천(오른쪽). 공사는 대개 하천 양쪽 기슭의 숲을 밀어내 제방을 쌓고, 하천 바닥을 편평하게 고르는 식이다. 원형 훼손, 생태계 파괴, 하류 피해 위험 가중 등의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나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러다간 수량이 풍부한 천미천의 소(沼·가운데)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그래픽=한형진 기자>

143개나 되는 제주 하천의 생성 시기를 논하는 것은 능력 밖이다. 다만 한가지, 각각의 하천이 장구한 세월 풍수와 맞서거나 상호작용한 결과가 오늘의 모습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비든 바람이든 어디 부드럽기만 했겠는가. 하천의 나이를 가늠해보면, 사납게 몰아친 날도 셀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때때로 홍수도 닥쳤을 터. 그 인고의 시간이 없었다면, 단언컨대 제주의 하천은 지금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신의 조화가 아니다. 암반 위 각양각색의 소(沼)도 마찬가지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없다고 하찮게 볼 일이 아니다. 지질적으로나 환경·생태적으로나 아님 경관적인 면에서도 제주의 하천은 육지부의 그것과 견줘 결코 손색이 없다. 조선 선비들의 놀이터 방선문(訪仙門)을 품고 있는 한천(漢川)을 보라. 모양이 변화무쌍하고, 그만큼 소도 많은 천미천(川尾川)은 또 어떤가. 

하천 양쪽의 울창한 숲은 제주도의 핵심 녹지축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하천변을 따라 어김없이 녹색 띠가 길게 이어져있다. 대개 한라산 자락인 발원지에서부터 종착역인 바다에 이르기까지 거의 끊김이 없다. 상록활엽, 낙엽활엽, 침엽 등의 수종은 고도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고도에 따라 식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가 주변에 펼쳐져 있는 셈이다. 

하천변 숲은 큰 비가 올 때 유속을 조절하는 기능도 한다. 이러한 하천이 도시를 가로지른다면? 도심 하천이 주는 유익함은 더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였을 것이다. 비록 코로나19로 더뎌지고는 있지만, 제주시가 한천 복개구조물을 철거하기로 한 것은, 한편으로는 도심 하천의 순기능에 주목했기 때문이리라. 물론 비싼 수업료를 치르긴 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첫 ‘수업’은 2007년 9월16일이었다. 태풍 ‘나리’가 제주 섬을 강타했다. 악몽을 꾸는 듯 했다. 한천을 비롯한 도심 하천이 범람했다.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홍수로 인한 인명피해가 흔치않은 제주에선 실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대안으로 저류지가 등장했다. 제주시 도심을 관통하는 4개 하천 상류에 저류지 12개를 설치했다. 예산 851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더니 당국은 “이제 100년에 한번 발생하는 폭우까지 견딜 수 있게 됐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복개 하천은 9년 뒤 또 범람하고 말았다. 2016년 10월5일 새벽 태풍 ‘차바’가 덮쳤다. 한천이 또 직격탄을 맞았다. 복개 구간의 아스팔트가 맥없이 뜯겨져 나가고, 차량 30여대가 물에 휩쓸렸다. 일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두 번의 태풍은 하천 복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복개가 능사가 아니라는, 나아가 가급적 원래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는 인식이 싹텄다. 그 뒤 제주시 5대 하천 복개 구조물 전면 철거 방침이 나왔다. 코로나19로 기약없이 미뤄지던 한천 우선 철거 구간에 대한 주민설명회도 이윽고 시작됐다. 

참 먼길을 돌아왔다. 애초 복개를 안했다면 콘크리트를 걷어낼 일도 없었다. 그 와중에 저류지까지 만들었으니 밑 빠진 독에 물(혈세)만 붓고 있었던 셈이다. 그 후로도 저류지 설치는 계속돼 지금은 크고작은 것들을 합쳐 200개나 된다고 한다.  

시민들의 추억이 서려있는 하천을 복원한다니 늦었지만 그래도 잘한 결정이다 싶었다. 그런데 당국이 또 후회할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번에는 무분별한 하천정비다. 무엇보다 정비 방식이 문제다. 홍수 방지 제방을 쌓는다며 하천 양쪽 기슭의 숲을 밀어버리거나 하천 바닥을 고른다며 소를 없애는 식이다. 원형이 유지될리 만무하다. 

어딜가나 천편일률적이다. 현장 모습을 보면 고속도로가 따로 없다. 유속을 키워 오히려 하천 하류의 피해를 가중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사라지는 건 숲이나 소 만이 아니다. 그만의 고유한 생태, 역사 문화적 가치도 함께 묻히고 있다. 

30년 가까이 비슷한 방식의 하천정비가 지속됐다. 제주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5~2020년) 추진됐거나 진행중인 하천정비 사업이 최소 30건에 이른다. 총 길이는 70km가 넘는다. 공사비는 3400억원에 육박한다. 각각의 사업이 수해 방지에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분석은 없었다. 좀비처럼 그저 나아갈 뿐이었다. 

이러다간 내풍 나리 때보다 더 준엄한 자연의 경고를 듣게될지 모른다. 차라리 손을 떼는게 상책일 수 있다. 하천 바닥에 쌓인 퇴적물을 그때그때 걷어내는게 어쩌면 나을 수 있다. 천문학적인 사업 예산이면 수많은 인력을 고용하고도 남는다. 성찰은 없고, 언제까지 비싼 수업료를 내려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당국은 이제라도 하천정비 사업에 개선의 여지가 없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진지하게 돌아보길 바란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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