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모든 노동자, 근로기준법 앞에 평등해야 / 임기환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지난 8월 16일은 광복절 대체공휴일로 ‘빨간날’이다. 지난 7월 제정된 공휴일법에서 공휴일이 주말이나 다른 공휴일과 겹치면 대체공휴일로 지정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사라진 빨간 날을 돌려주겠다며,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휴식권 보장과 내수 진작을 명분으로 법을 통과시켰지만,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제외됐다. 남들처럼 납세 같은 국민의 의무를 다한 이들은 또다시 권리는 배제된 불평등한 2등 국민이 되었다.

공휴일법에 ‘5인’이라는 규정은 없다. 제4조(공휴일의 적용)에서 ‘근로기준법 등 관계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할 뿐이다. 관계법령이라는 근로기준법은 제11조(적용 범위)에서 ‘상시 5명 이상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규정하여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배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모든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렇다 보니 공휴일은 물론, 부당해고, 법정노동시간, 연차휴가, 연장·야간·휴일수당, 직장내 괴롭힘 금지에 관한 사항도 보호받지 못한다. 부당해고와 직장내 괴롭힘를 당해도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 사업주의 책임으로 휴업을 해도, 연장·야간·휴일근무를 해도 별도의 수당을 받을 수 없다.

또 연차휴가도 없고, 법정노동시간도 제한이 없다 보니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저녁이 있는 삶’은 이들에겐 딴 세상 이야기다. 5인미만 사업장 중대재해 발생률이 전체사업장의 35%에 해당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이들은 보호받지 못한다. 생명과 안전앞에서도 차별받는다.

그런데 왜 5명일까? 근로기준법은 1953년에 제정되었지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 열사의 외침에서 알 수 있듯 1970년대까지는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적용이 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을 어겼다고 해서 재판에 가는 경우도 없었고, 법 존재 자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번져가고, 노동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근로기준법의 적용이 1975년에 16명 이상 사업장, 1987년에는 10명 이상 사업장, 1989년에는 지금의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되었다.

적용대상을 사업장규모로 차별하는 것에 대해 정부는 영세사업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영세사업자 보호는 정부가 별도로 대책을 마련하고 지원을 해야지, 노동자들을 사업장규모로 차별하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제주지역 노동자 중 35%에 해당하는 10만명이 5인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3명 중 1명은 빨간날은커녕 근로기준법을 온전히 적용받지 못한다. 어디 이들뿐인가. 제주지역 노동자 절반이 비정규직, 농수축산업, 단시간, 감시단속, 특수고용,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미 사업장 규모로 예외를 두지 않는 노동법들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1982년부터 모든 사업장에 적용됐고, 고용보험과 최저임금제도 역시 예외가 없다. 또, 지난해 민주노총이 근로기준법 제11조 개정으로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자며 시작한 국민동의청원에 10만명 이상이 참여해 국회 상임위 회부 조건을 충족했다.

근로기준법은 인간 존엄성의 최저 기준이자 노동권의 기본이다. 모든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 지난해 국민청원을 통해 사회적 요구도 확인됐고, 다른 노동법도 예외를 두지 않는 만큼 모든 노동자의 권리 실현을 위해 근로기준법 제11조 등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조항은 전면 개정해야 한다. / 민주노총제주본부 본부장 임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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