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공유재를 잘 관리하고 확대해야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1968년 미국의 생태학자 개릿 하딘(Garret Hardin)은 ‘사이언스’ 지에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유인 때문에 공유자원은 황폐화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개릿 하딘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목초지’라는 유명한 예를 든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공유 목초지에서 목동들은 소를 과잉 방목하게 되는데, 이는 방목으로 인한 이익은 자신이 직접 얻지만, 과잉 방목으로 인한 손실은 일부만 부담하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의 경제학자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1990년 ‘공유의 비극을 넘어서(Governing the Commons)’라는 책을 발표했다(그녀는 ‘공유자원의 지속가능한 협력 거버넌스에 대한 연구’로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이 책에서 개릿 하딘과는 반대로 ‘현존하는 잘 관리되는 공유지’를 예로 살피면서 공유자원 또한 잘 관리될 수 있음을 밝혔다. 

스위스 산골 마을 퇴르벨에 있는 관개 공유지가 15세기부터 지금까지 잘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녀는 그 같은 여러 사례를 찾아 연구했다. 그녀는 1517년 퇴르벨 ‘하절기 목초지에 관한 조례’ 기록을 책에서 언급한다. “여름철 초지에 내보낼 수 있는 소의 수는 겨울철에 자신이 사육할 수 있는 소의 수만큼만 허용한다.” 그녀는 참여 구성원들이 제도적 장치나 재산권에 대하여 상당한 통제력을 행사해 오는 상황인 경우에는, 사유재산과 공유 재산 사이에 병렬적 공존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Elinor Ostrom, 윤홍근/안도경 역, 공유의 비극을 넘어, RHK, 2010 참조)

공유자원의 운명이 비극이냐 희극이냐의 중심에는 “제대로 된 관리”가 있다. (Guy Standing, 안효상 역, 창비, 2021 참조) 공유자원 운영 규칙을 참여자가 제대로 준수한다면 공유자원은 공동의 목적에 부합하게 운영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공유지의 비극’이 실현될 수도 있다. 우리의 관심이 공유지가 잘 관리되고 있는가, 잘못 관리되고 있는가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공유지의 비극’과 ‘공유지의 희극’이라는 수사에 매몰되어 있지 않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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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코로나 위기로 부의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특히 자영업자와 사회적 약자의 피해가 크다. 이럴 때일수록 잘 관리되는 공유재의 역할이 절실하다. 공유재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공유재는 우리 모두가 향유하는 것이며, 사회적 약자를 위해 꼭 필요하다. [그래픽이미지=최윤정 기자] ⓒ제주의소리

코로나 위기와 공유재

공유재가 위기에 흔들린다는 점은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IMF 경제위기 때 “민영화, 공공지출의 삭감, 민간 부분에 대한 탈규제화”라는 IMF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여야 했다.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공유지를 쉽게 허무는 쪽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위기가 공유재를 더욱 단단하게 할 수 있는 계기도 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큰 변화는 평소에는 잘 이루어지지 않지만, 위기를 맞아 계기를 맞는다. 큰 변화는 큰 위기와 함께 온다. 공공영역을 허물자는 목소리와 공공영역을 더욱 단단히 하자는 목소리가 동시에 일어난다. 공공영역의 확대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공유자원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고, 제대로 관리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동시에 공유자원이 허물어지는 것에 대한 저항 운동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코로나 위기는 양면적이다. 많은 사람에게 코로나 위기는 경제 위기이다. 코로나가 발생한 지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코로나가 곧 종식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코로나 전후를 나눌 만큼 큰 재앙임을 알게 된다. 

곳곳에서 코로나 위기로 부의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특히 자영업자와 사회적 약자의 피해가 크다. 이럴 때일수록 잘 관리되는 공유재의 역할이 절실하다. 재난지원금도 공유재의 한 모습이다. 코로나 위기가 공유재를 허무는 위기가 아니라 공유재를 세우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위기와 기회는 접해 있다. 위기를 맞아 공공영역이 중요해졌고, 이를 관리하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만 민생을 이야기할 게 아니다. 선거와 관계없이, 위기에 처한 민생을 어떻게 구제할지 고민하고 고민해야 한다. 지난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활발하게 진행되던 ‘재난지원금’ 등의 논의가 이후 시들해지는 걸 느끼는 건 나만일까? 

공유재를 잘 관리·운영해야 

게릿 하딘과 엘리너 오스트롬의 주장은 대비를 이루면서 일견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나, 모순되는 주장이 아니다. 게릿 하딘은 “관리되지 않는 공유지의 비극”에 초점을 맞췄고 엘리너 오스트롬은 “관리된 공유지의 희극”에 집중했다. 이는 게릿 하딘이 이후 자신의 논문을 “관리되지 않은 공유지의 비극”으로 불렀어야 한다고 고백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Guy Standing, 안효상 역, 공유지의 약탈, 창비, 2021, 65면 참조). 

공유지를 사유지로 바꾸는 현대판 인클로우저 운동이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난다. 위기가 발생한 때에는 쇼코 요법처럼 민영화 방안이 제시된다. (이에 대해서는 Naomi Klein, 김소희 역,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 Mobidicbooks, 2021 참조. 이 책의 원제는 ‘The Shock Doctrine’이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이래, 국가는 큰 위기에 처했을 때 공유지를 박탈하는 방식으로 재난에 대처했다. 코로나 재난이라고 다른 재난과 다른 정책이 쓰일까?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코로나 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 논의를 낳을 정도로 다른 점이 물론 있지만, 코로나 위기 또한 경제 위기임을 인지한다면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공성이 곳곳에서 무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실제로 그런 모습이 엿보인다. 그렇기에 (게릿 하딘과 엘리너 오스트롬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공유재가 잘 관리되면 공유재는 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공유재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공유재는 우리 모두가 향유하는 것이며, 사회적 약자를 위해 꼭 필요하다. 사회는 약자를 돌아봐야 하는 책무가 있다. 공유재를 잘 관리·운영해야 한다는 당위는 지상명령처럼 들린다. /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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