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디 골아봅주’ 제주가치-제주의소리 공동기획] 고권일 시민정치연대제주가치 공동대표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후 30년, 제주국제자유도시 출범 20년을 맞은 제주. 개발과 성장만을 외치며 달려온 오늘 제주의 모습은 도민이 바라던 행복과 풍요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지난 30년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미래 100년을 향한 진단과 성찰, 그리고 근본적인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발적이고 다양한 정치참여를 통해 제주다움을 지키고 더 나은 제주를 만들어가려는 시민모임인 '제주가치'와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릴레이 칼럼 ‘혼디 골아봅주’(함께 이야기해봅시다)를 매주 싣는다. 제주가 과잉관광과 난개발 위기로부터 탈출, 지속가능한 생태평화 공동체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제주가치 공동대표 8인의 참여로 도민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편집자 글]

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이 고국으로 돌아오셨다. 참으로 죄스러우면서도 감개무량한 일이다. 온 국민이 느낀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홍범도 장군 유해 반환과정에 뼈 아픈 일침을 가한 사람이 있다. 오슬로 대학 교수 박노자 씨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유해를 모셔오는 과정이 전혀 민주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끼리의 약속이 진행되었을 뿐,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홍범도장군의 유해를 합의를 통해 양도받는 과정이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관료행정, 편의주의의 표본이었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자부심과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사업이었지만, 먼 이국땅에서 설움을 받아온 고려인들에게는 상징과도 같은 분의 유해를 잃는 일이 된 것이다. 끝으로 박노자 씨는 홍범도 장군 부대원들의 후손도 포함된 고려인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이제부터 세계인의 시선은 대한민국의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 영향력 못지 않게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에도 집중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시스템이 헌법 1조에 명시된 ‘민주주의 공화국’에 맞는 시스템인지 철저히 점검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입법, 사법, 행정 간 균형과 견제가 잘 이루어지고 전문가와 시민들의 참여와 역할이 언제나 열려있는 구조가 되도록 바꿔나가야 한다.

그 동안 제주도의 많은 개발사업들이 얼마나 도민의 의사와 반대로 진행되어왔는지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원희룡 전지사는 제2공항 추진과정에서 ‘전문가들이 제2공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도민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했었다. 제주라는 섬의 환경수용력과 도민의 삶의 질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제2공항 반대라는 제주도민의 의사가 명확한 지금, 국토부는 제주도민의 중지를 고려하여 제2공항 건설계획을 포기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그린뉴딜을 하겠다는 정부가 가장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항공기를 더 많이 운용하는 공항을 전국 곳곳에 추진하는 것부터가 민주주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증거로 보인다.

특히 제주해군기지 건설과정은 안보사업이라는 이유 하나로 폭압적 방식으로 진행되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리적 폭력으로 다치고 벌금 폭탄을 맞아야 했고, 구속되고 실형까지 살아야 했다. 정부와 도정, 해군참모총장이 사과를 했지만 응어리는 풀리지 않고 있다. 진상조사조차 없이 진행된 사과와 보상은 더 큰 갈등을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개발사업에 필수인 환경영향평가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라 평가업체를 선정하고 비용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환경영향평가가 이루어지기 힘든 구조적 문제점을 내포한다. 대상지 관련 주민들 의견도 사업 추진을 전제로 청취만 하도록 되어 있다. 사업 자체의 필요성이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 구조다. 그렇기에 민주주의는 실종된다.

ⓒ제주의소리
현행법에 따라 진행될 수밖에 없는 환경영향평가는 독립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가 될 수 없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제주해군기지와 제주해군기지 진입도로 사업이다. 하지만 이제는 행정과 국가가 모든 사업을 알아서 정하는 방식에서 국민에게 묻고 합의된 미래상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책임지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주의소리

예를 들자면 제주해군기지 진입도로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해군은 거의 모든 물자를 해상을 통해 반입하고 있으며, 비상출동 요원은 해군기지 옆 지근거리에 관사를 지어 운용하고 있다. 나머지 출퇴근 인원도 가까운 서귀포시 신시가지에 거주하여 4차선인 진입도로를 건설하여도 2.3km에 불과하여 시간 단축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해군은 이 진입도로를 명목상 반드시 필요한 도로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주도정이 제주해군기지가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건설되었기에 크루즈 입출항에 따르는 관광객을 수송하기 위한 도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역설했다. 그러나 크루즈항과 터미널이 완성된 2018년 이후로 관광객이 내린 크루즈 입항은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친 이후 크루즈는 코로나 배양기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아무리 방역을 철저하게 한다 해도 좁은 공간 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선상생활은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위기 시대에 항공기 못지않게 대형크루즈 선박 역시 탄소배출의 주범이라고 눈총을 받고 있다. 크루즈 선박 한 척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백만 대 분량의 승용차와 맞먹는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세계에서 대규모 여행수단인 크루즈 관광이 얼마나 활성화될지는 미지수에 가깝다. 만약 크루즈가 들어 온다고 해도 10만급 초대형 크루즈가 1년에 열 척 이상 들어온다는 보장이 없으며, 꼭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인 강정항으로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다. 백번 양보해서 강정항에 들어온다고 해도 기존도로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해안도로로 충분히 커버가 될 뿐 아니라, 중문관광단지나 제주컨벤션센터 면세점과 연계에 해안도로가 월등히 유리하므로 제주해군기지 진입도로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즉, 불필요한 사업을 하기 위해 서귀포 시민들의 가장 큰 식수원이자 제주도 생태계의 핫스팟인 강정천을 관통하는 비점오염시설을 건설하려고 하는 것이다. 도로가 수질오염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비점오염원이 된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도로를 진행하기 위해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할 때 천연기념물 원앙을 아예 조사하지 않았고, 또 다른 천연기념물 녹나무 자생단지는 사업지에 없다고 거짓 기술했으며, 강정동 담팔수는 위치를 사업지보다 상류에 위치하여 영향이 없다는 거짓 기술을 하는가 하면, 멸종위기종인 솔잎란도 누락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문헌조사에는 분명 있었던 천연기념물 황조롱이와 매 등의 조류도 조사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이다. 참조한 문헌조사가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라는 점에서 더욱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환경영향평가에는 대상지인 해안과 바다에 서식하는 수많은 멸종위기종을 누락하기는 했으나 강정천에 서식하는 천연기념물들과 멸종위기종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히 조사하였다. 그러나 제주해군기지 진입도로 환경영향평가에는 강정천에 서식하는 천연기념물들과 멸종위기종들을 조사대상에서 제외하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인 것이다. 

이처럼 현행법에 따라 진행될 수밖에 없는 환경영향평가는 독립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가 될 수 없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제주해군기지와 제주해군기지 진입도로 사업이라고 본다. 물론 비자림로 확장사업도 서귀포 우회도로 사업도 제2공항 환경영향평가도 부실한 평가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

즉,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하려고 하는 사업에 시민들이 제동을 걸지 못하게 관료주의, 행정편의주의 체계 내에서 모든 단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든 사업마다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선진국 반열에 대한민국이 오른 만큼 시민들의 정치의식도 높아지고 참여의식도 높아졌지만, 정작 그 통로는 매우 제한적이다. 유일한 참여는 선거권뿐이다. 입법과 행정부에 대한 선거권과 함께 사법부에 대한 선거권도 보장되어야 한다. 최근 입법청원 등의 길이 열리고 있으나 행정감시와 통제는 그 길이 매우 좁다. 오랜 기득권을 유지해 온 관료들은 현재 바꾸기 매우 힘든 구조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검찰, 경찰, 행정기관, 언론 등 기득권을 누려온 조직끼리 공동이익을 사수하려 결사체에 가까운 저항이 엄청나다.

그래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행정과 국가가 모든 사업을 알아서 정하는 방식에서 국민에게 묻고 합의된 미래상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책임지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국가 단위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일 수 있겠지만, 지방자치단체는 다르다. 얼마든지 어렵지 않게 미래상을 합의하고 수용할 수 있다. 제주도의 경우, 백년대계, 오십년대계, 10년, 5년 단위 도시계획을 먼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수립하고, 기초단체의 부활과 읍면단위 또는 동단위까지 직선제를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를 통해 자율적인 행정이 이루어진다면 갈등보다는 상생적 사회관계가 구축되리라 믿는다. 토건세력과 유착관계를 의심받는 정치가 아닌 지속가능한 환경과 선순환적 지역경제가 구현되는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 제주도의 자랑스러운 정신적 유산인 수눌음 전통은 그저 단순한 일손 나눔 문화가 아닌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정치력을 지역사회가 발휘했기에 만들어진 경제체제다. 공동체 경제의 핵심 수단으로 수눌음이 존재했었다. 그렇기에 수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마을공동목장이나 바다목장 관리가 가능했고 마을을 형성하고 살 수 있었다. 미래를 열어나가는 가장 큰 원동력도 여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21세기 대한민국, 21세기 제주도의 미래를 가장 확실하게 이끌어 나갈 원동력은 민주주의라고 단언할 수 있다. 모두가 행복하게 수눌어 사는 제주도를 꿈꾸어 본다.

끝으로 제주해군기지 진입도로 사업을 원점재검토하여 도로사업을 포기하고, 이미 매입하여 진행된 부분이 있으므로 그 토지에 숲을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숲은 강정천 수량과 수질을 더욱 좋게 만드는 역할을 할 것이며, 생태환경을 풍부하게 바꾸며, 사람들에게도 건강한 삶을 지탱해주는 산책로 역할을 할 것이기에 서귀포 제일의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 자동차 한 대 더 늘리려는 발상에서 걸을 수 있는 구간을 한 뼘이라도 더 늘리려는 전환기적 정책이 절실한 시대이다.

고권일 공동대표는?

1963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났다. 만화가로 활동하며, 대표작으로 ‘와일드 피쳐’, ‘영웅신화’, ‘위저드리’ 등이 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대책위 위원장을 지내고, 현재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공동대표, 제주가치 공동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기후위기에 맞선 지속가능한 환경에 관심이 많고, 마을자치, 마을공화국, 지방자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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