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38) 글 하기 싫은 놈은 대충 글 읽는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실픈 : 싫은
* 허천 : 보아야 할 곳은 보지 않고 엉뚱한 데만 보는 것

부모가 그 아이 속을 잘도 꿰뚫어 보았다. 예전에야 어른 대부분이 글을 배우지 못했으니 까막눈, ‘낫 놓고 기역 자 모르는’ 곧 문맹(文盲)이었다.

한데 제 자식이 책상을 받아 앉아 글을 읽는다 하면, 정말 글을 읽는 건지 건성으로 읽는 척하고 있는지를 바로 알아 맞췄다. 글을 전혀 모르면서도 녀석이 정말 글을 읽는지 읽는 시늉만 하는지를 한눈에 알아봤다는 얘기다.

글공부하는 아이는 표정부터 다르다. 머릿속에서 셈하고 헤아리고 생각하는 건지 아닌지 얼굴에 쓰여 있는 법이다. 사진=픽사베이. 

아이가 제대로 글을 읽는지 아닌지를 모른 척하고 살폈을 것 아닌가. 글공부하는 아이는 표정부터 다르다. 머릿속에서 셈하고 헤아리고 생각하는 건지 아닌지 얼굴에 쓰여 있는 법이다. 어른을 눈속임하려고 책장이나 세고 공책이나 만지작거리는 걸 왜 모를까. 

“어디 보게. 느 지금 글 어디꺼지 읽언디, 혼번 읽어 볼래?”
(어디 보자. 너 지금 글 어디까지 읽었느냐, 한 번 읽어 볼래?)

할 수는 도저히 못한다. 자신이 글 모르는 걸 자식에게 내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끙끙 속앓이 하다가 마침내 터트리고 말 것이다. 자신이 배우지 못한 설움이 순간적으로 북받칠 게 아닌가.

“내가 보기엔 느 허라는 글은 아니 허고 손장난만 허는 거 같아 뵈다 이? 내가 그걸 모르카부댄 햄댜? 정신 똑발로 촐령 허라이? 알아들엄샤? (내가 보기엔 너 하라는 글은 아니 하고 손장난만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이?) 내가 그걸 모를 거라 하느냐? 정신 똑바로 차려서 해라이? 알아 듣느냐?”

책상 받아 앉으면 글 읽는 것이 아니다. 원래 하라 하라 하지만 공부하고는 인연을 끊은 아이가 있는 법이다. 어른이 글을 읽으라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빈둥대면서 겉으로 하는 척하는 아이가 적지 않다. 이런 아이는 글하고는 담을 쌓은 아이다. 이쯤 되면 공부하기는 다 틀려먹은 것이다.

하다하다 말을 듣지 않으니 탄식조로 나오는 말이 있다.

“내 불주게. 쇠랑 물 멕일 거라. 다 지 팔저만썩 살 테주게.(내 버리지 뭐. 소라고 물 먹일 건가. 다 제 팔자만큼씩 살 테니까.)”

비단 공부뿐 아니라 매사가 다 한가지다. 타성이 되면 어쩔 도리가 없다. 다른 일도 하는 시늉만 내게 마련이라 아마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을 것 아닌가.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고 한다. 글을 안 읽는 버릇이 몸에 배면 하릴없이 게으름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유사하게 전국적으로 통하는 말이 있다. “게으른 선비 책장 넘기기”, “일 싫은 놈 밭이랑부터 센다”. 함께 쓰인다. 게으른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본인이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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