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 (29) 중앙여고 후문 제주 예술 전문서점 ‘캔북스’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인 고봉선 작가가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글] 

그림이란 선이나 색채를 써서 사물의 형상이나 이미지를 평면 위에 나타낸 것으로 회도(繪圖) 또는 회소(繪素)라고도 한다. 사람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글자를 발명한 것보다 훨씬 오래전이다. 글자의 발명도 그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탐방에서 이 같은 책방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번엔 ‘캔버스’와 ‘북’을 더하여 만든 예술 전문서점 ‘캔북스’를 찾았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때에 따라선 미술사도 강의하고, 어른들을 대상으로 미술수업도 하는 해요 작가 이행석 씨를 만났다. 조금은 무뚝뚝한 것 같으면서도 그의 목소리에선 한없는 다정함이 묻어났다. 

작가의 아호는 ‘해요’다. 별 의미 없이 어릴 적부터 친구들이 별명처럼 부르던 것이 자연스럽게 이행석 화가의 호가 되었다. 그래서 해요 작가로 불리게 되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온종일 찾아오는 책 손님은 서너 명. 그중에 책 구매는 절반 정도.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 화가 책방지기는 예술 전문서적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늘도 책방 문을 열었다.예술 전문서적 캔북스. 왼쪽 아래 구석에는 강의 시간이 적혀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그림은 놀이수단에 불과했다”
올해 서른아홉의 이행석 화가, 그가 태어난 곳은 용담 2동 속칭 먹돌새기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는 지금도 이곳에 살고 있으며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그림을 그려왔다.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미술 쪽으로 진학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을 보였다면 얼핏 유별난 행동을 했을 것도 같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그저 여느 아이들처럼 만화책도 따라 그리고 자신만의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끼랄까, 무언가를 보면 따라 그리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본인은 이 같은 행동들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 사람에겐 당연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당연한 건 아니다. 누구나 그렇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만화책을 보면서 따라 그리면 잘 그렸다고 주변에서 칭찬도 했을 법하다. 그러나 본인은 그랬던 것 같았을 뿐 느끼지 못했다. 그저 그림 그리는 게 재미있었을 뿐이다. 사생대회 같은 건 나가본 적도 없다. 당연히 상 받은 적도 없다. 그림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도 해 보지 않았다.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꾼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놀이하듯이 그냥 그렸다. 그렇게 계속 그리다 보니 자연스레 화가가 되어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림은 오직 놀이의 한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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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는 해요 작가 이행석 씨의 그림들이 걸려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미술 관련 수입 서적”
책방에 진열된 서적들은 대부분이 원어로 된 책이었다. 수입 서적이기 때문이다. 40여 권 정도는 번역판이 있었는데 나에게 익숙해서일까, 다른 화가 보다는 고흐를 소개하는 책이 상대적으로 많아 보였다. 하지만 이 역시도 해요 작가의 말로는 있을 만큼만 있을 뿐 특별히 많은 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고흐를 좋아한다. 그래서 고흐 관련 책들을 번역하는 것이고, 해요 화가는 그걸 놓고 파는 것이다. 책방지기의 취향이거나 특별한 이유는 전혀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유독 고흐를 좋아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알려지니까 좋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갱이나 다른 화가들의 이야기도 번역되고 알려지면 좋아하지 않을까? 그러나 해요 작가의 생각은 다르다. 번역되어 나온다고 해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란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흐를 좋아한다. 

수입 서적, 단가가 맞을까? 사실 운송비며 이것저것 계산해 보면 단가는 맞지 않는다. 수입 서적 판매로는 생계가 될 수도 없을뿐더러 또 되지도 않는다. 해요 작가는 서적으로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그냥 좋아서다. 자신의 책을 주문하는 김에 조금 더 주문하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이러한 서적이 필요하거나 좋아하는 분들도 있다. 해요 작가는 그런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해요 작가는 이곳에서 미술과 관련된 책을 팔며 그림을 그리고 수업도 한다. 그 외에도 미술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외부 강의도 하고, 외부에서 그림 의뢰가 들어올 때도 있다. 개인적인 작가 활동으로 생기는 수익도 있다. 이 외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두루두루 다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모여 작가의 생계 수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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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전문서적 캔북스 내부엔 여기저기 해요 작가 이행석 씨의 그림들이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좋아하는 화가 한 명을 고른다는 건 불가능”
좋아하는 화가는 너무나 많다. 콕 집어서 어느 화가를 유난히 좋아한다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소비자나 팬으로서 책이나 미술품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느 한 사람에 꽂혀서 그 사람을 좋아하거나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작가의 성향보다는,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거나 계속 바뀌는 생각들에 초점을 맞춘다. 작년까지는 A라는 사람을 주로 보다가도 올해는 분위기에 따라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화가 한 사람을 고른다는 건 그에게 있어서 불가능하다. 특별히 누구의 그림을 좋아하거나 그런 것도 없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충분히 이해된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고, 배우고 싶어서 접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그림이 좋아서 그 그림이 보고 싶고 궁금해하는 등 팬으로서 좋아하는 마음과는 조금 다르다. 화가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이지 모방하는 게 아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예술 전문서적 내부. 화실엔 온통 해요 작가 이행석 씨의 그림이 놓여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작가의 기준,”
그가 생각하는 미술은 ‘대학을 졸업했나, 안 했나.’에 큰 차이가 없다. 그도 졸업은 좀 늦게 했다. 그러나 졸업했다고 하여 어디에서 어떻게 증명이 나오거나 취직이 되는 건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게 일이라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지 졸업했다고 해서 갑자기 ‘작가가 됐다.’라고 말할 계기 같은 건 전혀 없다. 어느 순간부터 작가라고 해야 할지 자체도 애매하다. 개인전으로 작가의 기준을 꼽는 사람도 있다. 사람에 따라 개인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겠지만, 해요 작가 이행석 씨는 이미 학생 때 개인전을 하기도 했다. 

노형에서 1년, 그리고 옆 건물에서 1년, 그리고 현재 이 공간에서 화실과 책방을 시작한 지는 3년째다, 결과적으로 해요 작가가 이름을 걸어 놓고 자신의 화실을 시작한 건 5년 전이다. 그는 부인과 함께 화실을 사용하면서 서로의 시간에 맞춰 그림을 그리고 수업도 한다. 부부는 서로 생각을 주고받기도 하는 등 가장 많은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엔 예술 전문서적 책방답게 온통 미술과 관련된 수입 서적이 진열되어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그림을 그리다가 막힐 때”
해요 작가 이행석 씨는 처음엔 주로 인물을 그렸다. 그러다가 지금은 인물과 함께 풍경이 적당히 섞인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막힐 때도 있다. 이 또한 창작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작가는 보통 책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때로는 아예 그리는 것을 멈추기도 한다. 쉬면서 기다리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기도 한다. 

어릴 때는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 볼까?’ 등 어떻게든 수습을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하다가 안 되면 붓을 놓는다. 그렇게 잠깐 기다리다 보면 다른 생각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기다림의 미학을 느낀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일들이 너무 잦다는 것이다. 단 하루도 순탄하게 굴러가는 날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 ‘또 이럴 때가 됐구나.’ 하고 다시 고민으로 빠져들 뿐이다. 마치 고민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인다.

글이 단숨에 써질 때가 있는가 하면 몇 년이 걸릴 때도 있다. 그림 역시 그렇지 않을까? 아닌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이 꽤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해요 작가는 그렇게 몇 년 묵혀 뒀다가 다시 꺼내거나 그런 적이 없다. 한 번 몰입하기 시작하면 빠르게는 2~3일에 끝난다. 오래 그려도 채 한 달이 걸리지 않는다. 물론 그림의 크기며 여러 가지 정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작업에서 봤을 때  해요 작가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한 작품에 고뇌가 많은 편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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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엔 예술 전문 서적답게 온통 미술 관련 수입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고민하기 위해 그리는 그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해요 작가의 대답을 듣고 나면 말문이 콱콱 막히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내가 생각하는 보편적 기준과는 멀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그려냈을 작품들. 그 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만족했던 작품조차도 그는 전혀 없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그림만 그려왔고 또 현재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그림 그려서 행복할 때도 없었단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모든 걸 다 잊을 것도 같은데 그도 아니란다. 그저 그리는 거란다. 그는 오히려 고민하려고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다가 막힐 땐 고민보다는 요즘 젊은이답게 오히려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실 수도 있다. 한마디로 뭔가 더 재밌고 자극적인 것에 끌릴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것들엔 흥미가 없다. 오히려 그림을 그리면 생각이 훨씬 많아진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캔버스 앞에 앉으면 신들린 사람처럼 그림이 절로 그려지는 건 아니다. 무엇인가를 그리겠다는 게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고민이고  스트레스다. 작가에게 즐거운 일은 특별한 게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그런데 뭘 그려야 할지, 어떻게 그려야 할지, 이 방법이 맞는지, 하나에서 열까지 다 고민이다. 그러므로 모든 게 엄청난 스트레스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림을 끝냈다고 해도 엄청나게 큰 성취감을 얻거나 만족 같은 것도 없다. 

그에게 미술이 즐거운 이유는 사람을 만나고 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그림도 그리지 않으면서, 별 고민도 없으면서 말로만 할 수는 없다. 그림 하나에도 고민하면서 책으로는 또 다른 미술을 배운다. 그렇게 고민하고 터득한 내용을 수강생들에게 전달한다. 전시 때는 또 그런 사람들과 만난다. 해요 작가에게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보다 이런 일들이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전시회는 개인전 네 번에 그룹전이나 기획전은 여러 번 했다. 전시회에서 역시 자신이 그렸던 그림 중에서 특별히 마음에 들거나 그런 게 전혀 없다. 순간순간 ‘아, 이번 전시회는 잘 끝났구나.’ 이런 것들은 있었지만 여태까지 그림이 잘 되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동시에 스트레스 해소의 대상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내부 가운데에 놓여 있는 원탁에 놓여 있는 미술 관련 전문서적이다. 책방에 있는 책 중 한글판은 많아야 40여 권밖에 되지 않는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해요 작가에게 그림을 배우는 사람들”
그가 하는 수업의 대상은 성인이다. 물론 가끔은 특이한 케이스의 학생들도 있다. 일반적인 입시 미술학원 등에서 어디 가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다 싶은 애들을 종종 가르치기도 한다. 

수강생들은 대부분은 그림에 목마른 사람들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이 좋았는데 함께하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접어야 했던 사람들, 어릴 때부터 가슴 한편에 그림을 향한 그리움을 간직해오던 사람들이다.

나도 한때는 그림을 배우고 싶었던 적이 있다. 내가 쓴 글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고민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닿을 나의 여력이 없었다. 욕심인 것 같아서 내려놓았다. 

해요 작가에게 그림을 배우고 다시 활동하는 사람들은 없을까. 작가에게 배운 것으로 상업적인 활동을 하거나 대외적으로 작가 활동을 하는 사람은 아직 없다. 그래도 뭔가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더러 있다. 요즘은 개인도 책이든 뭐든 만들기 쉬운 시대다. 

어른이 되어 그림을 배우러 온다는 건 묵혀두었던 꿈이 싹트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내 몸 어딘가에서 육화된 채로 언젠가 싹틀 그 날을 기다리며 무수히 참고 참았을 어른들이 꿈을 찾아 모여드는 곳, 화실을 찾는 것만으로도, 붓을 손에 쥔다는 사실 만으로도 가슴은 벅찰 것이다. 꿈을 실현하지 못한 그들의 꿈에 오늘도 해요 작가 이행석 씨는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다.

사람들이 화실을 알고 저절로 찾아오진 않을 것이다. 홍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해요 작가는 그 흔한 홍보 또한 하지 않았다. 모든 게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자신의 앞길을 걸어온 사람처럼 화실 역시 그렇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계속 학생들을 가르쳐왔고, 전역하면서도 바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연결고리가 되어주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을 통해서 찾아온다. 비록 소규모이기도 하지만 홍보하지 않아도 이런저런 이유로 수강생들은 꾸준히 찾아주는 편이다.  

아내와는 그림을 그리면서 만났다. 같은 미술학원에 다녔고, 같은 학교에 다닌 부부는 같은 공간에서 각자 시간대를 달리하여 수업한다.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 각자 정해진 시간에 수업을 진행하는데 해요 작가는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수업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작가의 작업실이다. 작가의 뒷모습이 보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원어로 된 책들”
이곳에 있는 책은 대중서점에서는 만날 수 없는 예술 전문서적들이다. 필요한 책이 있어도 어디에 가야 구할 수 있는지 몰라서 헤매는 사람에겐 꼭 필요한 곳이다. 

영어에 젬병인 난 무엇보다도 원어로 된 이 책들을 ‘고객들이 다 읽을까.’가 궁금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필요 없는 궁금증이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여기 있는 책들은 굳이 끝까지 읽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읽다가 어려우면 덮으면 그만이다. 이곳에 있는 책들은 95%가 미술 관련 서적이다. 구태여 한글 서적 읽듯이 줄줄 읽을 필요는 없는 책들이다. 문학적인 내용이거나 문학적 해설이 필요한 텍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이론적이거나 좀 딱딱한 표현들이다. 읽다가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찾으면 간단하다. 그리고 또 미술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들이 많다. 그러므로 충분히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영어를 배우기 때문에 얼추 읽을 수 있다. 그래도 대중적으로 읽히는 책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꼭 읽지 않더라도 책 자체가 예뻐서 사는 사람도 있다. 그림만 보려고 사는 사람도 많다. 문학책이 아니라서, 이처럼 조건 방식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굳이 다 읽어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번역된 책들이 없어서 원어로 된 책을 구매하는 것일까도 궁금했다. 하지만 이 책들은 번역될 필요조차 없단다. 만약에 번역이 되어 있다고 해도 안 읽는다는 것이다. 읽지 않는 책, 그래서 굳이 번역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게다가 미술이 그다지 대중적인 장르(넓은 범위에서 보면 우리 삶은 온통 미술이다. 그렇지만 그림이라는 축소판으로 들어왔을 땐 또 달라진다. 현대미술이나 페인팅이나 미술 시장이나 그런 특수 분야, 즉 미술 시장에서 일어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가 아니므로 번역해도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원어가 됐든 번역본이 됐든 그래도 살 사람들은 사는 책이 이곳에 진열된 책들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거대한 책으로 알려진 타셴 SUMO 사이즈로, 데이비드 호크니의 모노그래프를 담은 멋진 책이다(오른쪽 앞). 브레드퍼드 예술 학교의 10대 시절부터 1960년대 신나는 런던(Swinging London) 속 비약적 발전을 이룬 시기, 197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수영장을 그린 생활과 최근 자화상, iPad로 그린 드로잉 및 요크셔 경관까지 60년 이상 그린 작품들을 모았다. 호크니의 작품이 이처럼 놀랍고 거대한 스케일로 출판된 적이 없었다. 페이지마다 파랑, 분홍, 초록과 오렌지색으로 펼쳐지며, 화려한 색을 입힌 작가의 활기와 세상에 대한 그의 독특한 감각은 관객을 매료시키기 충분하다. 자각과 표현에 대한 작가의 들뜬 호기심을 통해, 독자는 탁한 요크셔 물웅덩이에 비친 빛의 부드러운 광택, "A Bigger Grand Canyon"의 황토색의 웅장함, "Bigger Trees near Warter" 속 특유의 장엄함은 물론 "A Bigger Splash"를 통해 빛나는 캘리포니아 하늘 아래 청록빛 수영장의 정교한 반짝임을 확인한다. 이러한 주요 작품들은 작가의 드로잉, 사진 복합물, 콜라주, 무대디자인, 복합 카메라 비디오 작품과 iPad 드로잉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과 재료를 통한 집합체라 할 수 있다. 호크니는 이번 책을 통해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 모든 제작 과정에 밀접하게 참여를 했고, 친필의 계획적 진술에 따라 쓰인 450점 이상의 작품에 대한 시각적 조사에 근거한 책이다. 좀처럼 그의 작품 전반을 볼 수 없었으나, 이번 거대한 사이즈의 책은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을 위한 결정적인 기록으로 그의 개인적 평가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나는 과거에 머물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을 만들면서, 내가 얼마만큼 작업을 해왔는지 볼 수 있다.”라고 말한다. 화려한 포트폴리오는 600페이지 이상 연대순으로 구성되었으며, 드로잉, 그래픽 작품, 자화상 사진과 현대적 비평뿐만 아니라 자신의 글을 기반으로 한 글이 포함되어 있다. A Bigger Book은 마크 뉴슨(Marc Newson)의 북스탠드에 놓여 소개될 것이다. 작가의 사인이 담긴 한정판 컬렉터 에디션 9,000부는 마크 뉴슨의 북스탠드와 함께 제공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동병상련”
책방에 손님은 하루에 서너 명 정도 다녀간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 책을 구매하는 사람은 잘해야 반이다. 대중을 위한 서점이 아닌 데다가 해요 작가 역시 손님이 많이 오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작가는 서점이라는 이름을 내세웠을까? 이런 책들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화가는 본인이 이런 서점에서 책을 사려고 다녀본 적이 있다. 그런데 자신처럼 이러한 책들을 원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해도 돈이 안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동병상련이라고 했던가, 해요 작가는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해요 작가는 책을 생계로 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차피 자신에겐 필요한 책들이고, 또 사야 할 책들이다. 거기에 몇 권 더 얹어서 사다 놓으면 필요한 사람들이 같이 볼 수 있다. 자신이 이런 책방을 해도 될 것 같았다. 망설임 없이 해요 작가는 자신의 애로사항을 접목하여 예술 전문서적을 운영하기로 했다. 그렇게 책방 캔북스는 태어났다.

군대, 많은 사람의 삶을 바꾸는 경계선이다. 나의 막내아들도 군대 다녀오더니 학교를 때려치웠다.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다. 자신은 선생 체질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해요 작가 역시 그랬다. 전역 후 복학해서 학교에 다니다가 외국으로 갔다. 대학을 다니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한때 그에게도 누구나 하는 방황이 있었다. 그 방황기에 작가는 영국으로 가서  1년 반 동안 영어공부도 하고 다른 공부도 두루두루 했다. 어찌 보면 방황이 아니라 자신이 가는 길을 탄탄하게 다진 셈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면서 모든 건 정신없을 정도로 휙휙 변하고 있다. 미술 역시 마찬가지다. 석기 시대엔 벽화를 그렸지만, 요즘은 컴퓨터로 그리고 온라인에서 보여주며 또 온라인으로 판매한다. 시대를 거스를 수 없는 변화다. 컴퓨터라는 도구의 개발은 인간의 생활에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손으로 하던 작업에서 컴퓨터로 처리하는 기술의 발전은 디자이너의 표현방법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 연필이나 붓, 물감, 색연필 등의 입력장치가 이젠 마우스, 디지타이저, 라이트 펜 등으로 바뀌었다. 출력장치 역시 과거엔 화판, 종이였던 것이 이제는 모니터, 프린터, 플로터 등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과거엔 많은 시간과 노력, 노동력이 필요했지만 이제 컴퓨터로 정확하고 빠르게 디자인 작업 및 수정도 가능하다. 과거와 컴퓨터 세대의 결정적인 차이다. 

아크릴 물감으로 캔버스지에 그려낸 그의 작품은 섬세했다. 부드러운 곡선을 추구하기보다는 약간은 직선적이면서도 꺾이는 그의 개성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그림은 작가의 이미지와 똑 닮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에서 돌아오는 길, 연북로에서 바라본 하늘엔 자연의 화가가 그려놓은 구름의 외침이 들려는 듯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예술전문서적 캔북스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채 지내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집 혹은 미술 관련 전문서적을 어디 가면 찾을까, 헤매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중앙여고 후문에 있는 캔북스로 가 보세요. 아무나 쉽게 오는 서점이 아닌, 누구든 ‘한 번 가 봐라.’ 하고 쉽게 추천할 수 있는 서점이 아닌, 적당히 예쁘고 저렴하게 기념품 삼아 살만한 책들이 아닌, 그래도 관심이 있으면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비록 대중적으로 봤을 때 어려운 책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책이 이곳에 있습니다. 당신의 가슴에 품고 있던 그림에 대한 갈망을 해소할 수 있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 제주시 남광로4길 27, 1층 
영업시간 : 월~금요일 오전 10:30~18:30, 토요일 12:00~18:00(일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canvooks
 

# 고봉선 작가는?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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