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탐나는가치 맵핑(1)] 마을공동목장④ / 마을공동목장 대안 사례 ‘머체왓숲길’

 

무심코 지나쳤던 제주의 숨은 가치를 찾아내고 지속 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해 다양한 지역 문제나 의제를 주민 스스로 발굴해 해결해가는 연대의 걸음이 시작됐다. 지역 주민이 발굴한 의제를 시민사회와 전문가집단이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한 뒤 문제해결까지 이뤄내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젝트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와 함께하는 ‘공동기획 - 탐나는가치 맵핑’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참여라는 측면에서 매우 유의미한 연대가 될 것이다. 이번 도민참여 솔루션이 잊히고 사라지는 제주의 가치를 발굴·공유하고 제주다움을 지켜내는 길이 될 수 있도록 도민의 참여와 관심을 당부드린다.  [편집자 주]

개발의 유혹에 흔들리며 소멸 위기에 놓인 마을공동목장이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고 제주 특유의 목축경관과 자연환경을 지켜나갈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의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 두 번째 방문지로 서귀포시 남원한남공동목장을 찾았다.

마을공동목장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마을공동체의 자산이자, 제주도 특유의 목축경관을 간직한 보고(寶庫)다. 팔려나간 마을공동목장의 사유화는 즉각 난개발로 이어지고 다시는 공동체 자산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제주의 허파를 품은 중산간과 곶자왈의 상당부분이 마을공동목장에 속해있거나 맞닿아 있다. 마을공동체를 넘어서서 도민공동체가 마을공동목장 관리 유지 방안, 관련 정책수립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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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나무가 울창하게 자란 머체왓숲길을 따라 마을공동목장을 둘러보고 있는 탐나는가치 맵핑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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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고 대표의 설명을 바탕으로 참가자들은 마을공동목장을 지켜내기 위한 다양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공동기획 - 탐나는가치 맵핑]은 지난 8월 28일 오전 남원한남공동목장을 찾았다. 이곳은 골프장 부지로 매각될 뻔한 마을공동목장을 지키고 ‘머체왓숲길’이라는 아름다운 탐방로를 개척한 곳이다.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에 있는 남원한남공동목장은 현재 머체왓숲길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방문객에게 사랑받고 있다. 

머체왓숲길은 돌이 쌓이고 잡목이 우거진 곳을 뜻하는 ‘머체’와 ‘밭’을 의미하는 제주어 ‘왓’이 합쳐져 ‘돌과 나무가 한껏 우거진 숲길’이란 뜻을 가진다. 산 중턱 목장과 제주에서 세 번째로 긴 서중천 계곡을 따라 두 개의 탐방코스로 나뉜다. 

현재 마을공동목장 부지 중 일부는 2012년부터 조성된 머체왓숲길로 운영 중이며 이를 통해 제주 특유 목축경관을 유지, 공동목장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방치되고 외면받는 제주의 마을공동목장을 개발업자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지켜내면서도 그 속에 숨어 있는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머체왓숲길을 ‘탐나는가치 맵핑’ 프로젝트 팀이 찾았다.

이날 현장에는 탐나는가치 맵핑 운영위원회를 비롯한 도민 참여자 등 20여 명이 현장을 둘러보며 고철희 머체왓숲길 대표의 설명을 듣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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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희 머체왓숲길 대표는 사라져가는 마을공동목장의 위기를 이겨낼 방법 중 하나로 머체왓숲길을 사례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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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마을공동목장은 현재 머체왓숲길로 탈바꿈한 뒤 많은 관광객에게 사랑받는 명소로 거듭났다. ⓒ제주의소리

남원한남공동목장은 도유지와 일부 사유지로 구성돼있다. 목장지가 없는 해안마을 남원리 주민들이 중산간마을인 한남리 주민과 연합해 공동목장을 설립한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축산 방식의 변화 추세에 따라 남원한남공동목장 역시 소를 키우는 사람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사용되지 않는 목장은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기 시작했다. 

이에 1990년대 중반 남제주군 남원관광지구 사업이 시작될 무렵에는 골프장이 지어질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당시 주민들은 마을공동목장에 골프장이 들어설 경우 활용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반대에 앞장섰고 목장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 같은 위기가 닥치자 고철희 대표(당시 이장)를 비롯한 주민들은 마을공동목장을 보전하면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2012년에는 행정안전부 공모사업을 통해 ‘머체왓숲길’을 조성했다.

행안부 친환경 생활공간 조성 공모사업을 통해 ‘한남리 머체왓 숲길조성사업’을 시작한 주민들은 현재와 같은 숲길을 만들어 냈고, 2018년 산림청이 주최하는 ‘제1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하는 등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고철희 대표는 “골프장이 들어섰다면 주민들이 활용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기업에 넘어가 버렸을 것”이라며 “이렇게 숲길이 조성되니 개발업자가 들어올 엄두도 못내고 있다. 목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많은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약 50만 평(약 165만2892㎡)에 달하는 마을목장 가운데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부지는 6만여 평(약 19만8347㎡)밖에 안 된다”며 “나머지는 아직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또 목장인 만큼 마소를 키우지 않으면 안 돼 말 10여 마리를 기르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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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체왓숲길 탐방 안내도.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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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체왓숲길 소롱콧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다 보면 예전에 사용됐던 산불감시초소를 만날 수 있다. ⓒ제주의소리

소를 많이 기를 때는 진드기와 가시, 나무 등을 없애기 위해 주민들이 불을 놓고 목초를 길렀지만, 축산 방식의 변화로 소를 기르지 않게 되자 산림녹화정책과 더불어 나무를 심게 돼 지금과 같은 모양이 갖춰졌다는 것. 

이를 증명하듯 숲길을 올라가다 보면 해발고도 250m 지점에서 산불감시초소로 사용됐던 옛 건물이 나타난다. 고 대표 설명에 따르면 1970년대 나무가 전혀 없었던 이곳에서 주민들이 놓는 불이 번지는 것을 감시해왔다.

숲길을 걷다 보면 불을 놓았던 옛 목장의 지형을 어림잡아 확인할 수 있다. 산림녹화정책이 시작된 이후 심어진 편백나무 숲이 시작되는 지점이 목장으로 활용된 지점의 경계라는 것. 편백나무 숲을 만나기 전까진 제각기 다른 나무들을 볼 수 있다. 

더불어 예전부터 활용돼 온 마을공동목장은 현재 대부분이 도유지에 속한다. 감귤 농업이 시작된 이후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치돼왔고, 이에 남제주군 시절 군유지가 됐다가 특별자치도가 시작되면서 도유지가 된 것이다. 

고 대표는 “도유지가 됐지만, 이곳 머체오른 일대는 예전부터 공동목장이자 마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며 “고사리가 자랄 때면 꺾으러 올라와 이곳에서 팔면서 삶고 말리기도 했던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유지라고 해서 마을 주민들이 활용하지 못하거나 그런 것은 없다. 임대 형식으로 목장 부지를 임대해 다양한 활용 방안을 고민하면 되는 것”이라며 “오히려 부지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 없이 순수하게 활용할 수 있으니 어떻게 활용하냐만 고민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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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체왓숲길에서는 마을공동목장이었던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하늘 높이 뻗어있는 울창한 편백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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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고 대표의 설명을 바탕으로 참가자들은 마을공동목장을 지켜내기 위한 다양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이어 도유지이기 때문에 중앙정부나 제주도 차원의 사업이 진행될 경우 부지가 개발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강경식 탐나는가치 맵핑 운영위원은 “실제 도유지이지만 마을 주민들이 이용해왔던 땅이다. 국책사업 등에 따라 언제든 개발될 위험이 있으니 마을 주민의 이용권을 우선하거나 의견을 반드시 묻도록 하는 등 조례가 필요하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한 도민 참가자는 “서귀포시 하원동 탐라대학교가 실패 사례가 될 것 같다. 탐라대를 유치한다고 하니 주민들이 공동목장 몇십만 평을 내놓지 않았나”라면서 “학교는 문을 닫고 땅은 다른 기업들이 호시탐탐 넘본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을공동목장을 지킬 방안이 필요하겠다”고 피력했다.

한편,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그램은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제주 곳곳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 

구글 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mapplerk3’를 내려받아 회원 가입한 뒤 커뮤니티 검색에서 ‘Save Jeju’를 검색, 가입하면 된다.

이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곳곳의 가치들을 영상과 글, 사진 등을 통해 기록하면 된다. 회원 가입을 하지 않더라도 홈페이지(mapplerone.net/savejeju)에서 공유된 가치들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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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체왓숲길에서 만나볼 수 있는 머체. 고철희 대표는 "머체는 제주어로 돌이 쌓이고 잡목이 우거진 곳을 뜻한다."면서 숲길 곳곳에 자리한 머체들을 소개했다. 일각에선 말의 모습을 닮았다해서 '마체(馬体)'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제주의소리
남원한남마을공동목장에서 기르고 있는 말. 목장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10여 마리의 말이 길러지고 있다.ⓒ제주의소리
남원한남마을공동목장에서 기르고 있는 말. 목장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10여 마리의 말이 길러지고 있다.ⓒ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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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체왓숲길 중 일부는 군사 독재 시절 개인에게 넘어가 곳곳이 사유지로 남아있기도 하다. 사진에 보이는 돌담 넘어는 사유지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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