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마을공동목장 “제주인 삶의 터전, 생존 관건은 활용 방안”
위기의 마을공동목장 “제주인 삶의 터전, 생존 관건은 활용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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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탐나는가치 맵핑(1)] 마을공동목장⑤ / 고철희 남원한남공동목장 '머체왓숲길' 대표

 

무심코 지나쳤던 제주의 숨은 가치를 찾아내고 지속 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해 다양한 지역 문제나 의제를 주민 스스로 발굴해 해결해가는 연대의 걸음이 시작됐다. 지역 주민이 발굴한 의제를 시민사회와 전문가집단이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한 뒤 문제해결까지 이뤄내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젝트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와 함께하는 ‘공동기획 - 탐나는가치 맵핑’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참여라는 측면에서 매우 유의미한 연대가 될 것이다. 이번 도민참여 솔루션이 잊히고 사라지는 제주의 가치를 발굴·공유하고 제주다움을 지켜내는 길이 될 수 있도록 도민의 참여와 관심을 당부드린다.  [편집자 주]

“마을공동목장이 도유지에 속해 제주도가 관리하더라도 이제깢 삶의 터전으로 활용해온 마을 주민들이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제주도 역시 이 점을 감안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주민 갈등 없이 선대로부터 이어진 제주의 보고(寶庫)를 지켜나갈 수 있겠죠.”

제주 특유의 목축경관과 자연환경을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지혜로운 방법으로 마을공동목장을 숲길로 만들어 지역사회를 위해 활용하고 있는 ‘남원한남공동목장’.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마을 공동체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개발의 유혹을 뿌리치고 활용안을 고민한 끝에 방문객들에게 사랑받는 ‘머체왓숲길’로 탈바꿈시킨 마을공동목장의 좋은 선례다.

지난 28일 [공동기획 –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참가자들은 공동목장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가치를 모색한 뒤 해결책을 찾기 위해 머체왓숲길을 방문한 자리에서 고철희 대표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줬다. 

ⓒ제주의소리
탐나는가치 맵핑 참가자들에게 마을공동목장을 활용해 많은 관광객에게 사랑받는 명소로 탈바꿈한 머체왓숲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고철희 머체왓숲길 대표이사. 그는 마을공동목장의 살길은 활용 방안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제주의소리

2018년 제주연구원 조사 결과, 도내 마을공동목장은 총 51곳으로 조사된 바 있다. 2006년 조사 당시 70개였던 마을공동목장이 10여 년 사이 약 20곳 가까이가 사라진 셈이다. 

이 같은 위기에 처한 마을공동목장을 향해 그는 “목장이 마을 소유일 경우 주민들끼리 싸움이 많이 일어나거나 개발업자에 팔려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도유지 같은 공유 재산이 된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 관건은 어떻게 활용하느냐다”라고 조언했다. 

마을공동목장 소유와 상관없이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 가꾸고 변화시킬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사적 영역을 배제하고 마을 공동체를 위한 공공의 목적으로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목장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남원한남공동목장의 경우도 머체왓숲길로 탈바꿈하기 전까지 많은 위기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골프장을 짓겠다는 개발업자가 나타나 마을 주민 간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는 것.

주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대립하다가 골프장이 들어서게 되면 다양한 마을 자원의 활용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우려해 결국 투쟁 끝에 마을공동목장을 지켜냈다. 만약 골프장이 지어졌다면 연간 15만 명이 방문하는 아름다운 숲길을 구경해볼 수 없었을 것이다. 

머체왓숲길은 다른 마을공동목장과 다르게 숲길로 들어가는 일부에 경관작물인 메밀을 심는 등 방문객을 위해 부지를 다채롭게 활용하고 있다. 목초지에는 농작물 재배를 할 수 없지만, 목초를 키우지 않는 잠깐의 시기를 적절히 활용한 것.

마소가 목초를 먹고 난 뒤 땅을 갈아엎게 되는 시기 ‘90일 작물’이라고 불릴 만큼 짧은 시기에 자라는 메밀을 심어 방문객들에게 아름다운 목축경관을 선보이고 있다. 

생산된 메밀 역시 수확 목적이 아니기에 다른 생산 농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재배 용도 씨앗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갈아엎는다. 고민 끝에 마련한 이 같은 방법 덕분에 알뜰하게 목장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메체왓숲길 초입 방목장과 방문객들을 위해 마련한 장소를 제외한 약 90%에 달하는 부지는 여전히 방치 중이라 고민이 많은 상황이다.

고 대표는 “골프장이 들어왔다면 주민들이 활용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기업의 손에 넘어가게 됐을 것”이라며 “지금 이렇게 숲길을 조성해 두니 호시탐탐 부지를 노리던 업자들도 사라지고 우리는 자부심을 가진 채 목장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목장 부지를 활용하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행정에서는 목장 용지라는 이유만으로 거의 모든 것을 제재했고, 말을 기르는 조건을 달아 겨우 숲길을 만들 수 있었다”며 “한라산과 오름군락, 바다가 보이는 숲길이 조성되니 방문객도 늘고 가치 있는 활용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머체왓숲길에서는  마을공동목장이었던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하늘 높이 뻗어있는 울창한 나무를 바라볼 수 있다. ⓒ제주의소리
머체왓숲길 소룡콧길로 진입한 뒤 조금만 걷다 보면 마을공동목장이었던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하늘 높이 뻗어있는 울창한 나무 숲을 마주할 수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남원한남공동목장은 머체왓숲길로 탈바꿈한 뒤 '제1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받기도 했다. 사람과 숲의 조화로운 공존을 통해 아름다운 숲을 만든 공을 인정받은 것이다. ⓒ제주의소리

고 대표는 마을공동목장이 제 기능을 잃게 된 것은 축산 방식의 변화와 정책 실패와 연관 있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소를 방목하지 않고 축사에서 기르게 되는 방식에 따라 자연스럽게 마을공동목장은 방치됐고, 군부독재 시절 잘못된 정책으로 소를 키우다 망해버리면서 소를 키우는 사람이 줄어든 것이 이유라는 것이다. 

그는 “전두환 정권 시절 외국에서 식량이 될 만한 소를 들여오며 정부가 농민들을 상대로 소장사를 해먹었다”며 “그러던 중 소값이 폭락하게 돼 개인 농가는 다 팔아넘겼고 몇 사람만 소유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소를 키우는 농가가 거의 사라지고 난 1990년대 후반쯤 돼서야 한우를 육성해야 한다면서 다시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며 “말 키우는 농가는 조금 있어도 소는 더 이상 키우지 않게 됐다. 대기업 같은 경영목축 말고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소를 다 팔아버리고 시작한 것이 감귤 농업이다. 우리 마을도 95% 이상이 감귤 농사에 뛰어들 만큼 감귤 농업이 한창 유행했다”며 “결국 목장에 관심이 없게 되는 것은 돈이 안 되니까 그런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원한남공동목장 역시 돈이 되지 않으니 마을공동목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져 세금을 내지 않는 등 이유로 군유지가 됐고, 특별자치도가 만들어지면서 도유지로 전환됐다는 것. 그나마 골프장이나 대기업 소유로 넘어가지 않고 숲길이 조성돼 주민들이 만족하고 있단다.

목장 대부분이 도유지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도민 참가자 질문에 그는 “마을 소유가 돼 주민 갈등이 빚어지는 것보다 행정에서 관리하는 것이 났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어 “행정으로부터 임대받아 목장 부지를 활용하고는 있지만,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민을 비롯한 공공의 이익으로 활용하고 있으니 큰 문제 거리도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 현재 마을 주민들은 더 이상 남아 있는 마을공동목장 부지를 개발하거나 매각하자고 하지 않는단다. 머체왓숲길로의 변신을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에 이제 실질적으로 마을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인지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의소리
머체왓숲길 소룡콧길을 따라 걷고 있는 탐나는가치 맵핑 도민 참가자들. 이날 20여 명의 참가자들은 마을공동목장의 현실과 앞으로의 미래상을 고민하며 다양한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남원한남마을공동목장에서 기르고 있는 말. 목장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10여 마리의 말이 길러지고 있다.ⓒ제주의소리
남원한남마을공동목장에서 기르고 있는 말. 목장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10여 마리의 말이 길러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참가자들 가운데는 도유지이기 때문에 중앙정부나 제주도 차원의 사업이 진행될 경우 부지가 개발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강경식 탐나는가치 맵핑 운영위원은 “실제 도유지이지만 마을 주민들이 이용해왔던 땅이다. 국책사업 등에 따라 언제든 개발될 위험이 있으니 마을 주민의 이용권을 우선하거나 의견을 반드시 묻도록 하는 등 조례가 필요하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고 대표는 “확실한 목적 없이는 제주도 역시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것이고 마을에서도 원치 않는다”며 “정말 이 지역 환경에 맞느냐를 생태나 지하수 관계 등을 따져본 뒤 지역주민과 어울릴 수 있는 것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전혀 엉뚱한 것이라면 절대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예전에 서중천 동쪽 목장 일부를 대학교가 들어온다고 해서 팔았던 적이 있었는데 결국 대학교는 들어오지 않고 교육청 부지로만 남게되는 등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주민들은 이제 어떤 것이 들어선다고 하면 질색부터 한다”고 밝혔다.

이에 한 도민 참가자는 “서귀포시 하원동 탐라대학교가 유사 사례가 될 것 같다. 탐라대를 유치한다고 하니 주민들이 공동목장 몇십만 평을 내놓지 않았나”라면서 “학교는 문을 닫았고 땅은 주인이 바뀌었다. 이를 교훈삼아 마을공동목장을 지킬 확실한 방안이 필요하겠다”고 피력했다.

고 대표는 “스위스나 덴마크 같은 유럽에는 마소가 뛰노는 드넒은 초지를 옆에 끼고 드라이브를 하지 않나”라며 “도로 옆으로 멋있는 초원을 만들 수 있는 목장이 많은 제주가 왜 그대로 자원을 내버려 두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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