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노라면 잔잔한 감동을 넘어서는 기쁨을 느끼곤 한다.

그 중에서도 작은 것, 그러나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던 것, 그러나 무관심하게 지나쳤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들판은 얼마나 적막하고, 황량했으며 밋밋했을까? 제주에서 만난 자연풍광들 모두가 아름다움 그 자체였지만 산야에 피어있는 들꽃만큼 아름답게 다가온 것은 없었다.

늘 보았던 꽃들,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는 일과 그들이 들려주는 삶의 소리를 듣는 일도 참으로 소중할 것 같아 <나에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이라는 제목으로 제주의 꽃들을 하나 둘 만나보려고 한다.

그 첫번째 꽃은 동백(冬柏).
겨울에 피는 꽃, 겨울을 열어가는 꽃이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이 왔던 땅에 잠시 기대어 흙내음을 맡으며 자기의 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모든 때를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소리를 온 몸으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리라.

1936년 5월 《조광》지에 발표된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동백꽃이 핀 농촌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사랑을 이야기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한 점순이의 애정공세를 주인공은 전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성간의 애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적극적인 성격의 '점순이'와 아직 이성관계에 맹목인 좀 어리버리한 성격의 자신을 대립구도로 설정함으로써 해학적인 싸움을 벌이게 한다.

소녀는 구운 감자로 유혹하기도 하고, 소년의 닭에게 해코지를 하기도 한다. '바보' '배냇병신'이라는 원망이 섞인 욕설로 그의 관심을 유도해보기도 하지만 눈치없는 소년은 점순이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하고 화만 낸다.
마침내 소녀는 소년을 끌어안은 채 동백꽃 속에 파묻히고, 소년은 그제서야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해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동백꽃은 꽃의 아름다움과 이파리의 아름다움, 그리고 꽃이 지고 난 후 열매까지도 아름다운 팔방미인의 꽃이다. 동백기름으로 쪽을 진 정갈한 여인네의 머리......
이미 사라진 풍경이지만 아싸하게 뇌리를 파고든다.

'나에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을 연재하는 '수'님은, 제주의 동쪽 끝마을 종달리에 살고 있으며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는 것을 즐겨한다. 목사이며, 수필가로 근간 자연산문집<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꽃을 찾아 떠난 여행 1,2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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