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세계자연유산 확정을 기뻐하며 / 이도영 교수

2007년 6월 27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 처치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제주화산섬을 세계 자연유산으로 만장일치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뻐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나 맘 한구석에는 먹구름이 시커멓게 몰려 옴을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그 아름답고 평화로운 나의 어머니의 젖가슴과도 같은 곳에다 철조망을 겹겹이 두른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최신식 무기들을 장착한 가공할만한 함대들을 정박하고 또 외국군함까지 수시로 들락거리도록 할 것이라는데 대해서 슬프고 또 분노가 넘칩니다.

제주 해협의 해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스킨 스쿠버 다이빙을 직접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저 비디오 카메라로 전달해 주는 것 정도로만 감상하고 그저 그렇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나는 어렸을 적 모슬포 근교 앞바당은 물론이고 화순 중문 서귀포까지도 원정하여 다이빙을 즐겼습니다. 목적은 물고기를 잡는 것이었지만, 물안경을 쓰고 바다 깊숙히 다이빙해서 둘러보는 경관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요지경 속과 같은 경관을 해군 함대와 잠수함들이 눈꼽만치라도 헤아릴 수가 있고 또 감상하게 그대로 놔 둘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제주 남쪽 근해에 아주 잘 발달되어 있는 산호초들은 수만년을 거쳐서 자라난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사람의 맨손이 닿기만해도 죽어버리고 부서져 버리는 아주 연약한 것들입니다. 다시 원상복귀되려면 몇 만년이 지나도 되질 않는 것들입니다.

한 2년전 겨울 뉴욕의 극심한 한파를 피해 미국의 최남단이라고 불리우는 플로리다 주의 키 웨스트(Key West)라는 수십 개의 섬들로 점철되어 있는 관광지를 가서 3박 4일을 지내면서 많은 것들을 구경했습니다. 그 중에도 가장 인상 깊게 남겨진 곳은 바로 산호초 섬들이었습니다. 물론 바다 깊숙히 있습니다. 밑 바닥에 유리창이 넓게 깔린 유람선을 타고 한참을 달려 나가서야 만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산호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그 사이를 커다랗고 작은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헤엄치는 것들을 바라보노라면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평화를 만끽하게 됩니다.

그 산호섬들을 보호하느라고 키 위스트 관광국에서는 상당히 신경을 쓰고 관리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아무 배나 접근하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혹시나 연약한 산호들이 상처를 입을까봐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지금 서귀포 앞바당에서 잠수함으로 관광하고 있는 현실은 나의 가슴을 상당히 많이 아프게 합니다. 많은 산호초들이 부서져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과 자연들은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곳입니다. 이탤리 나폴리 항 근교의 관광명소인 조그만 섬에도 가 봤고 화산재로 뒤덮힌 폼페이 유적지도 가 봤고 스위스의 알프스 한 산봉우리인 융 푸라우도 두 차례나 올라가 봤습니다만, 제주 만큼 경관이 뛰어 나질 않습니다.

제주에서 나서 제주에서 자라고 그냥 그대로 살고 있는 이들은 살고 있는 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잘 감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고향을 잃어봐야 고향의 참 맛을 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평화는 더 더욱 그렇습니다. 평화는 말로만 지켜지는 것도 아니고 말로만 누리는 것도 아닙니다. 평화는 어머니의 젖을 먹다가 젖가슴 속에서 잠을 자고 있는 어린 애기가 느끼는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젖가슴 속에다 바늘을 수십 개 숨겨서 꽂아 놨다고 상상해 봐요. 그 아기가 그것도 모르고 머리를 파 묻었다면 얼마나 소스라 칠 것인지...

미국의 민권 운동의 대부 마틴 루터 킹 목사나 인도의 독립투사 간디와 같은 분들이 늘 주창하는 것은 평화였습니다. 그 이들은 자신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것을 늘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흔해 빠진 권총을 킹 목사가 소지하고 다녔다는 말을 들어 보질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그 순간부터 평화를 설파할 자격이 상실되는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간디가 그렇게 무장하고 다니면서 자국민들을 설득하였다면 그리고 '비폭력 무한저항'을 울부짖을 수가 있었을까요?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지정한 지가 한 3년 됐나요? 그런데 느닷없이 해군전략기지로 중무장을 한다니...기가 막혀서 말이 잘 나오질 않습니다.

평화의 섬에서는 이제 남북정상회담도 열리고 세계 평화를 논하는 켄벤션들도 주최한다고 떠들썩한데, 상상을 해 보십시요, 제주 주민여러분!

흉칙한 무기를 등뒤에 숨겨두고 얼굴에는 가득히 평화로운 웃음을 머금고 오른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그런 그림 어디선가 많이 보지 않았나요? 그게 바로 2~30년전 우리 도덕과 윤리 교과서에서 소위 '공산당'들의 전략을 보여주는 밑그림이었습니다.

왜 우리 평화의 섬에서 그런 흉칙한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또 그것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와서 구경꺼리로 삼겠다고 하고 있으니 그 얼마나 엉뚱한 설계인지요.

해군전략기지는 보안이 철두철미해서 출입도 접근도 맘대로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디오 카메라나 그냥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댄다면 아마도 간첩혐의로 국가보안법 저촉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분단 사진작가 이시우 씨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38도 선 부근의 철조망 같은 것들을 찍고 작품화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현재 재판을 받고 있지요. 그는 단식으로 맞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슬프고도 화나게 하는 현실입니까.

군부대 근처에 안 살아본 사람은 군사문화가 어떤 것인지를 전혀 느끼지도 상상도 되질 않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모슬포에서는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물러가자 마자 미군과 한국군들이 그냥 그자리에 다시 점령했습니다. <4.3광풍>이 휘몰고 간 바로 직후에는 <한반도 전쟁>으로 육군 제1 훈련소가 생겼습니다. 잠시 평화가 오나 싶었던 모슬포에는 피난민들과 자식들을 찾아 면회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지만, 창녀촌으로 전락하고 말더군요.

나의 어릴 적 내 동생과 나를 돌봐주던 희주란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우리 집을 나간 후 얼마 없어서 그만 창녀가 되고 말았지요. 어릴 때였지만 나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습니다.

군대는 국민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방어)할 목적으로 만들어집니다만, 사실상에서는 너무나도 공격적이고 파괴적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염려하는 것은 해군전략기지가 제주 앞바당에 들어서면 세계 자연유산도 보호되지 못하고 파괴되고 말고 결국에는 평화도 지키지 못하고 파괴된다는 것이지요, 그게 나의 60년간의 경험이지요.

군사문화에 대해서 한 톨도 긍정적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하니 어쩌지요, 나는 스스로 봐도 '우울증'에 몹씨도 시달려 왔던가 봅니다.

   
 
 
나의 고교 때 국사를 가르치고 또 우리 반 담임도 했던 고혜란 선생님(서울대 국사과 출신)은 항상 웃음을 머금고 있는 나에게 "너는 왜 그렇게 슬프게 보이지?" 왜 우울하게 지내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나의 그 웃음은 평화의 웃음이 아니라 맘속의 그 쓰라린 상처를 캄플러머치 하기 위한 포장에 지나지 않았나 봅니다. 그 선생님은 아주 예리하게 그것을 지적해 냈습니다. 나중에는 그것이 '멜랑콜리 스마일'(슬픈 웃음)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서귀포 앞바당에 해군전략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바로 이런 멜랑콜리 스마일을 가중시키는 일임을 다시 한 번 천명합니다.

<평화의 섬> 제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고 세계의 자랑거리로 내 놓을 것인지 등, 더 많은 진지한 연구가 잇따라야 하겠습니다. 평화의 섬으로 명명만 한다고 해서 그게 그냥 그렇게 태어나는 것 아니쟎습니까? 갖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아주 멋있게 또 철학적으로 지어줬다고 해서 그 아기가 자라나서 그 이름값을 하느냐 하는 것과 같습니다.

- 이역만리에서 '나그네'된 사람 이도영 올림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