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장법원. ⓒ제주의소리.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의 화보 제작을 명분으로 제주에서 100억원이 넘는 사기행각을 벌인 일당에 대한 첫 재판이 허무하게 끝났다. 이날 재판부는 작심한 듯 검찰과 변호인 측의 부실한 업무 행태를 비판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유사수신행위의규제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고모(59)씨 등 4명과 고씨가 대표로 있는 A투자회사(법인)에 대한 첫 재판을 2일 진행했다. 

고씨의 경우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사기) 등 총 4개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BTS 화보 제작을 명분으로 투자 원금과 연 20%에 달하는 수익금을 약속하면서 2018년 3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제주에서 투자자를 모집했다. 

이들은 화보 샘플까지 준비해 사람들을 속였고, 피해자 1인당 1억원 안팎의 투자금을 받아 편취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경찰 고소·고발이 잇따랐으며, 피해금액만 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적으로 형사사건 첫 재판은 검찰이 공소 사실을 설명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증거·증인 조사 등이 이뤄지지만, 이날 진행된 첫 재판에서 재판부가 “불쾌하다”고 ‘작심발언’하면서 검찰 측에 공소사실 발언 시간조차 할애하지 않았다. 

재판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검찰의 공소장이 너무 빈약하다는 취지다. 

형사재판에서 검찰은 공소를 통해 법원에 재판을 요구한다. 공소 제기(기소)를 위해서 검찰은 피고인에 대한 정보와 공소 제기 사유 등을 공소장에 담아야 한다. 

공소장은 형사재판에서 가장 기본적인 ‘기초자료’와 같은 개념이다. 

제주지법 형사2부 재판장인 장찬수 부장판사는 이날 검찰을 향해 “검찰이 공소장을 이렇게 써도 되느냐. 1~2번이 아니라 1년째 참았다. 불만이 많다”고 질타했다. 

장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이 (범행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조차 공소장에 나와 있지 않다. 공소사실이 구체적으로 기재돼야 피고인들이 변호사와 협의해 의견서를 제출할 것이 아닌가. 제출된 피고인들의 의견서를 보면 공통적으로 이렇다할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다. 일을 똑바로 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라며 “정말 답답하고, 불쾌하다”고 작심발언했다. 

사법연수원 32기인 장 부장판사는 검사 출신으로, 2007년 12월 판사로 임용됐다. 검사 출신인 판사가 후배 검사의 부실한 업무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장 부장판사는 일부 피고의 변호인도 나무랐다. 공소장 부본 송달이 이뤄진 지 2달 가까이 지났음에도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아서다. 

형사소송법 제266조의2(의견서의 제출)에 따르면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공소장 부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공소사실에 대한 인정 여부, 공판준비절차에 관한 의견 등을 기재한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올해 6월30일 기소돼 7월1일부터 공소장 부본이 각 피고인 측에 송달됐다. 

장 부장판사는 “아직도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재판부는 무엇을 보고 판단하는가. 판사뿐만 아니라 변호사도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내용조차 지키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양측의 부실한 업무로 재판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 추가 기일에 재판을 속행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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