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디 골아봅주’ 제주가치-제주의소리 공동기획] 박찬식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공동대표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후 30년, 제주국제자유도시 출범 20년을 맞은 제주. 개발과 성장만을 외치며 달려온 오늘 제주의 모습은 도민이 바라던 행복과 풍요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지난 30년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미래 100년을 향한 진단과 성찰, 그리고 근본적인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발적이고 다양한 정치참여를 통해 제주다움을 지키고 더 나은 제주를 만들어가려는 시민모임인 '제주가치'와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릴레이 칼럼 ‘혼디 골아봅주’(함께 이야기해봅시다)를 매주 싣는다. 제주가 과잉관광과 난개발 위기로부터 탈출, 지속가능한 생태평화 공동체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제주가치 공동대표 8인의 참여로 도민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편집자 글]
지난 6월 22일 열린 '제3차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 공청회'. 이날 발표된 계획안에 대한 비판이 각계각층에서 쏟아졌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6월 22일 열린 '제3차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 공청회'. 이날 발표된 계획안에 대한 비판이 각계각층에서 쏟아졌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3차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이하 3차 종합계획)이 일부 수정보완을 거쳐 도의회에 제출되었다.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은 제주특별자치도설치및국제자유도시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에 따라 10년마다 제주도가 나아갈 중장기 정책방향과 전략, 주요 사업계획을 세우는 제주도의 최상위 법정계획이라고 한다.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각 부문별 하위계획을 세우는 가이드라인 역할까지 하기 때문에 제주도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계획이다.

제주도는 12억5000만원을 들여 국토연구원 등에 연구용역을 의뢰했고, 연구진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스마트사회, 제주’라는 비전에 따라 8대 전략과 15개의 핵심사업을 선정하여 지난 6월 22일 공청회를 열었다. 

그런데 공청회에서는 토론자와 방청객을 막론하고 ‘초딩만도 못하다’ ‘도민사기이자 도민농락이다’ ‘제주도 10년 계획에 제주가 없다’는 등의 혹평이 쏟아졌다. 이로 인해 원래 예정했던 최종보고회와 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 심의회, 도의회 동의안 일정 등을 연기하면서 수정 보완을 거친 끝에 예정보다 한 달 넘게 늦어진 지난 8월 18일 도의회에 제출된 것이다.

그런데 도의회도 공청회 과정에서 제시된 사항들이 충분히 보완되지 않았다며 상정을 보류하고 10월 임시회로 미루었다고 한다. 미루면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동안 도의회에서 논란이 되는 의제들을 바로 처리하지 않고 시간을 끌다가 은근슬쩍 처리하는 예가 적지 않아서 이번에도 그럴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곁가지에 문제가 있는 정도라면 어찌해 볼 수 있겠지만, 뿌리와 줄기가 썩은 나무라면 통째로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선포한 지 19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지 15년이다. 그로 인해 양적 성장을 이룬 것은 분명하나, 잃은 것 또한 적지 않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도민의 삶의 질 증진을 위해 어디로 가야할지 밀도있는 논의들이 지속돼야 한다. 그래픽 이미지=최윤정 기자. ⓒ제주의소리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선포한 지 19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지 15년이다. 그로 인해 양적 성장을 이룬 것은 분명하나, 잃은 것 또한 적지 않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도민의 삶의 질 증진을 위해 어디로 가야할지 밀도있는 논의들이 지속돼야 한다. 그래픽 이미지=최윤정 기자. ⓒ제주의소리

 ‘제주’가 빠진 제주도 10년 계획

3차 종합계획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점은 지난 공청회 발언에서도 충분히 드러났다. 토론자로 나선 (사)제주생태교육연구소 현원학 소장의 지적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현 소장은 “제주는 한정된 땅을 가지고 있는 섬이다. 다른 도시와 같은 시각으로 보면 안 된다. 제주의 수용력이 중요하다. 제주의 수용력에 대한 조사·연구를 기초로 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하는데, 제주의 수용력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서 ‘제주도의 최상위 계획에 제주가 없다’고 일갈했다. 

사실 2018년에 제2공항 검토위원회가 구성되었을 때 제일 먼저 따져물었던 것도 바로 제주의 수용력 문제였다. 2015년 11월 발표된 사전타당성 검토용역 당시 국토부는 30년 후인 2045년 제주도 항공수요를 연간 4560만 명으로 예측하고 제2공항 건설안을 제시했다. 관광객으로 치면 대략 연간 2,300만 명 정도에 해당하는 예측치다.

당시 연간 관광객이 1500만 명을 넘기면서 하수와 쓰레기, 교통체증, 자연환경과 경관 훼손, 지가폭등, 범죄 등 온갖 후유증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국토부가 고려하는 것은 오직 공항 이용객 추세에 따른 통계학적 예측뿐이었다. 2005년 이후 관광객이 폭증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추세에 따른 예측은 부풀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관광객이 그렇게 증가했을 때 제주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안중에 없었다. 

우리는 제주의 자연과 공동체가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는지, 즉 제주의 환경적, 사회적 수용력을 검토하여 적정한 규모(수요)를 도출하는 게 우선이 아니냐고 따졌다. 그렇게 적정규모를 정하고 나서 그에 적합한 공항인프라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국토부는 ‘수용력을 검토해야 하는 제도나 규정이 없고, 방법론도 없다’는 답변만을 반복했다.

하긴 그동안 공항 건설계획에서는 수요가 적은데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최대의 이슈였다. 엉터리로 끼워맞춘 수요예측으로 공항을 건설했다가 ‘고추 말리는 공항’으로 전락한 게 한 두 개가 아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수요 부족이 아니라 수요 과잉으로 인한 수용력을 검토할 필요가 없으니 규정이 없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나왔으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찾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과잉관광 시대, 제주의 수용력 검토가 우선이다

당시에도 세계 주요 관광지에서는 과잉관광과 수용력 문제가 이미 커다란 이슈로 부각되고 있었다. 2012년 트위터에 처음 등장한 과잉관광이라는 용어는 2017년에는 세계관광기구 장관회의의 정식의제로 채택될 정도였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섬, 이탈리아의 베니스 등에서는 “관광은 침공”이라며 시위가 벌어졌다. 

그 중에서도 제주도와 유사한 마요르카섬의 사례를 잠깐 살펴보자. 지중해에 위치한 마요르카는 는 은 과잉관광의 악순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마요르카는 바르셀로나에서 남쪽으로 약 170km미터 떨어진 지중해에 위치해 있고 크기는 제주도의 2배 정도인 섬이다. 과거에는 농업과 목축이 주 산업이었으나 1960년대 이후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1980년대에는 지역총생산(GRDP)의 약 80%가 관광에 의존하게 된다. 관광객 유치만을 위하여 무계획적인 도시건설과 인프라 확충이 이루어지면서 비옥한 토지가 황폐화되고 호텔과 레스토랑 등이 마구잡이로 들어서며 아름다운 해안선이 사라져갔다. 무분별한 개발의 결과 섬이 가지고 있던 매력이 감소하면서 싸구려 관광지로 전락했다.

특히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에는 관광객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이 허용되는 환락의 섬이 된다. 여름 시즌이면 알콜과 고성방가, 거리에서 웃통을 벗거나 비키니 차림으로 배회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마요르카는 숙박업소에 등급에 따라 관광세를 부과하는 등 질적 관리를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싸구려 관광지라는 이미지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과잉관광이 세계적인 이슈가 되다 보니 관광지의 수용력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과잉관광은 대체로 “관광이 공동체의 삶과 관광이 의존하는 자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게 되는 현상”이라고 정의된다. 여기에는 교통체증, 주차난, 쓰레기와 오폐수 처리난과 같은 인프라 과부하, 대기와 물 오염, 문화유산 훼손, 생태계 교란, 경관 훼손 등 환경영향, 임대료와 생활비 상승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부의 집중과 역외 유출, 부문·지역간 차이와 갈등, 비성수기 실업, 지역공동체 해체, 범죄와 문화 충돌 등의 사회경제적 영향, 소음과 음주 방뇨, 문화차이 몰이해 등 관광객 행태를 망라한다. 사실 과잉관광과 수용력은 동전의 양면이다. 적정 수용력을 초과하는 것이 과잉관광이기 때문이다. 

 전제와 방향이 잘못된 제3차 종합계획 심의 중단하고 차기 도정으로 넘겨야

제주에서도 과잉관광과 수용력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제주관광공사는 2017년에 「제주관광 수용력 연구」라는 용역을 실시하여 보고서를 낸 바 있고, 2019년 1월에도 「2018년 제주관광 수용력 관리방안 연구」라는 용역보고서를 냈다. 그에 앞서 2016년 제주도가 17억 원 짜리 용역을 거쳐 발표한 「제주미래비전-청정과 공존」에서도 “제주는 섬 관광지로 관광객 수 증가에 의존하는 양적 성장정책을 추진하여 왔다.

그러나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경우 관광수용력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이는 제주의 양적 성장과 자원중심 개발, 가격 중심의 경쟁구도, 관광수용력 한계로 인한 여러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주는 질적 성장과 가치창조 중심의 관광개발방식으로 정책전환이 필요하다”고 명시한 바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말만 해 놓고 아무런 진전도 없다는 것이다. 이번 제3차 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이 바로 그 상징이다. 제2차 종합계획 기간 동안 제주의 수용력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었다면, 제3차 계획을 수립할 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자 기준이 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한마디로 그동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1, 2차 종합계획의 기조를 그대로 계승한 종합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5년전 제주도정이 막대한 예산을 들인 제주미래비전에서도 분명히 ‘정책전환’의 필요성이 강조되었지만, 전환의 흔적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어쩌면 국토부 산하의 국토연구원에 용역을 맡길 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10년 계획은 한라산과 오름, 곶자왈과 동굴과 숨골, 바다와 해안, 지하수 등 제주의 환경자원의 현황과 수용능력에 대한 과학적이고 면밀한 조사와 연구, 그리고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 제주의 환경수용력과 지속가능성을 점검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이번 제3차 종합계획은 지금이라도 중단하는 게 차라리 낫다. 수정하거나 보완해서 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지방선거가 있다. 누가 되든지 차기 도지사는 이 계획을 그대로 가져가기 어려울 것이다. 공청회에서 지적되었듯이 ‘제주가 없는’ 계획을 가지고 어떻게 10년을 간단 말인가? 근본 전제와 방향 자체가 잘못되었는데 잔가지를 손보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제3차 종합계획이 도의회 동의를 거쳐서 확정되면 법적 효력을 갖게 된다. 1년이 가기 전에 법적 효력을 갖는 계획을 수정하느니 처음부터 새로 계획을 세우는 게 훨씬 낫다. 3차 종합계획이 없다고 제주도가 할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하여 이번 제3차 종합계획은 도의회 심의를 중단하고 내년에 들어설 새로운 도정에게 넘기는 게 낫다고 본다.

박찬식 공동대표는?

현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공동대표. 전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상임공동대표.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원장이면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 이사와 제주4.3제70주년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을 맡았었고, 충북대학교와 성공회대학교에서 외래교수로 교단에 섰다. '육지사는제주사람'을 이끌기도 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