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갤러리 - 이중섭의 귀향] 바닷가에서 새와 노는 아이들 등 엽서화

 

한국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이중섭(1916~1956)이 세상에 머물렀던 시간은 재능에 비해 너무나 짧았던 40년이다. 그 중에서 제주에 머물렀던 시기는 1951년 한 해 뿐이다. 비록 고단한 생활이었지만 부인과 두 아들을 포함한 온 가족이 함께 지낸 몇 없는 시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리운 제주도 풍경’.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풍경’ 같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중섭 가족이 서귀포를 떠난 지 70년이 흘러, 원화 12점이 서귀포에 왔다. 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보유했던 일명 ‘이건희 컬렉션’이다. [제주의소리]는 9월 5일부터 시작하는 이중섭미술관 특별전 ‘70년 만의 서귀포 귀향’을 앞두고 웹 갤러리를 통해 다섯 차례에 걸쳐 전시작을 소개한다. 원화의 감동은 이중섭미술관을 찾아 직접 느껴보도록 하자. [편집자 주]

작품 소개 순서

①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비둘기와 아이들, 연날리기 
② 섶섬이 보이는 풍경, 해변의 가족
③ 풀밭 위의 소와 사람들, 토끼풀, 바닷가에서 새와 노는 아이들
④ 아이들과 끈, 현해탄, 물고기와 두 어린이
⑤ 게와 아이들, 은지화


사진=이중섭미술관.
이중섭, 풀밭 위의 소와 사람들, 14×9cm, 엽서에 잉크, 1942. 사진=이중섭미술관.

# 풀밭 위의 소와 사람들, 14×9cm, 엽서에 잉크, 1942.

이중섭 작품들 가운데, 엽서화는 1940년 12월부터 1943년 8월까지 일본 유학 시절에 남긴 그림이다. 도쿄 문화학원 후배로 시작해 연인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여사를 위해 엽서화를 그렸다는 특징이 주목할 만 하다.

이중섭은 엽서 한 면을 그림으로 채워 마사코에게 보냈다. 받는이 주소를 제외하고는 다른 내용도 없이 정성스런 그림만을 전달한 엽서.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가 엽서화를 세상에 처음 공개할 때 밝힌 소감은 서로를 위하는 진심 어린 사랑을 잘 느낄 수 있다.

“사무치도록 남편이 그리울 때면 남편이 남긴 엽서 그림과 작품들을 어루만지며 스스로 위로하곤 했습니다…결코 남에게 공개할 수 없었던 남편의 분신을 처음으로 공개하게 된 것은 모두 나만의 것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나만이 그를 차지하기에는 그의 천재성이 너무 강한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사진=이중섭미술관.
이중섭, 토끼풀, 9×14cm, 엽서에 수채-잉크, 1941. 사진=이중섭미술관.

# 토끼풀, 9×14cm, 엽서에 수채-잉크, 1941.

현재 남아있는 이중섭 엽서화는 90점 정도다. 70점 이상이 1941년에 보낸 것들이다. 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는 “엽서화는 1940년대 이중섭 그림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당시 이중섭의 화풍을 가늠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한다.

이중섭미술관이 삼성가로부터 기증받은 엽서화 원화는 총 3점이다. 엽서 그림 속 알몸으로 역동적인 몸짓을 보이는 사람들과 동물(소, 새)들은 작가가 꾸준히 다뤄온 소재들이다. 

이준 삼성미술관 리움 부관장은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서 “2년 후배의 일본 여인을 사랑하게 된 이중섭의 사랑의 고백, 설레임, 욕망과 열정, 갈등과 불안 등이 상징적이고 비유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면서 “일본유학을 통해 간접적으로 받아들인 서구미술의 다양한 영향과 새와 물고기, 거북, 연꽃 등 우리의 전통미술에 대한 소재적 관심도 눈길을 끈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당시 일본에서 통용되고 있던 조그만 관제엽서(9×14cm)를 이용하여 일상의 매체를 엽서화하는 독창적인 예술 형식으로 승화시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진=이중섭미술관.
이중섭, 바닷가에서 새와 노는 아이들, 9×14cm, 엽서에 잉크, 1941. 사진=이중섭미술관.

# 바닷가에서 새와 노는 아이들, 9×14cm, 엽서에 잉크, 1941.

이중섭이 일본 도쿄 문화학원에 입학한 때는 1937년 22살. 엽서화를 보내기 시작한 1940년이면 25살이다. 비록 낯선 이국 생활이었지만 이중섭은 미술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각종 대회에 입상했을 뿐만 아니라 김환기, 이쾌대 등 유학 온 다른 조선인 작가들과 전시·협회 창설 같은 활동을 벌였다. 당시 김환기 작가는 이중섭에 대해 “우리 화단에 일등의 빛나는 존재였다”고 호평한 바 있다.

20대 청년 이중섭은 한 일본 여성을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이후 평생의 인연으로 발전한 그녀에게 이중섭은 그림 엽서를 보내면서 마음을 전한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도쿄 문화학원에서 야마모토 마사코와 연애하던 시기의 엽서화에는 두 사람의 연인관계를 암시하는 환상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들이 풍요롭게 넘쳐흐른다”고 소개한다.

새들을 잡으려고 바짝 엎드린 바닷가 아이들을 그리면서 이중섭은 사랑하는 연인과의 미래를 상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10년 뒤 이중섭과 마사코는 엽서화처럼 두 아들과 함께 서귀포 바닷가에서 짧지만 행복한 추억을 만든다.

이건희 컬렉션 이중섭 특별전
- 70년 만의 서귀포 귀향(歸鄕)

작가미술관(Single artist museum)이란 한 개인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미술관을 말한다. 그러므로 미술관의 성격 또한 해당 작가의 작품과 삶에 대한 다양한 흔적을 수집·보관·연구하는 특성을 가지며, 이런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전시와 교육 등을 행하게 된다.

세계적인 작가미술관 건립 사례는 작가의 고향, 혹은 작업실이 있었던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몬카타 거리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은 1963년 개관하였다. 그런데 프랑스의 작은 마을 앙티브에도 1966년 피카소 미술관이 들어섰다. 앙티브는 피카소가 스페인 출신이지만,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이다. 프랑스 출신인 로댕의 작품 애호가의 컬렉션에 의해 미국 필라델피아에도 로댕미술관이 세워졌다.

이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유명 작가미술관의 건립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어느 지역이나 특정 국가의 출신 작가가 아닐지라도 한때 작업을 했던 곳이나 수집된 작품이 좋으면 작가미술관을 건립하여 해당 지역의 문화 자산으로 삼았다.

이중섭.

작가미술관으로서 이중섭미술관은 국내에서 가장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미술관 중 하나이다. 이중섭미술관은 1951년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서귀포에서 1년간 작품 활동을 했던 역사성에 근거하여 2002년 전시관으로 개관을 했고, 기증에 의해 2003년 미술관으로 등록된 이후 관람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져 연간 약 27만 명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이중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라는 시대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나 우리 민족의 수난 시대의 중심에서 활약했던 화가이다. 자신의 삶과 죽음에 드리워진 비극성에도 불구하고 이중섭은 가족 사랑이라는 인륜의 가치를 끝까지 품었던 위대한 화가이기 때문에 코로나19로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도 마음의 위안을 주고 있다.

그런데 미술관이 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좋은 소장품이 있어야 한다. 소장품 확보의 길은 구입과 기증이 있는데, 기증은 개인의 소유권을 공공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일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올해 4월, 아직 기증문화의 기반이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 삼성가(家) 유족의 고(故) 이건희 컬렉션 사회 환원 소식은 세상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주었으며, 예술작품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미술관 또한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국민화가 이중섭의 주옥같은 작품 12점을 기증받았다. 이번 기증 작품들은 이중섭의 짧은 생애에서 피난 이후 가족과 함께 가장 행복했던 서귀포 시절의 추억을 담은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동안 서귀포는 이중섭을 문화도시의 중점 문화 자산으로 인식하고 이중섭 원화 작품 확보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이중섭의 작품은 귀하기도 하지만 작품가 또한 만만치 않아서 미술관 예산으로는 작품 구입에 한계가 있었다. 이번 삼성가의 이중섭 원화 작품 기증으로 이중섭미술관은 관람 서비스 향상뿐만 아니라 이중섭 예술 세계의 교육 범위를 더욱 넓힐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중섭의 서귀포 관련 작품들을 기증받음으로써 이중섭의 서귀포시대 연구의 기반이 어느 정도 갖추어졌으며, 미술관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제시해야 할 시점에 서게 되었다.

이번 기증을 계기로 이중섭미술관은 인근 부지를 활용하여 미술관 시설 확충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이중섭의 대표 작품을 확보하는데 주력하여 2022년 개관 20주년을 21세기 새로운 미술관 탄생의 원년으로 삼아 명실공히 세계적인 작가미술관으로 발돋음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지려고 한다.

이번 기증 작품들은 이중섭미술관에서‘이건희 컬렉션 이중섭 특별전 <70년 만의 서귀포 귀향>’展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하여 소중한 문화유산을 국민에게 환원해주신 고인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자 한다. 기증 전시는 9월 5일부터 2022년 3월 6일까지 진행된다.

기증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이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다. 이 작품은 1951년 이중섭이 한국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데리고 서귀포로 피난 왔을 때 그린 작품이다. 약간 부감법이 적용된 평원시의 구도로 그려진 작품으로, 전체적인 색조를 황톳빛으로 처리하여 전쟁의 참화를 겪었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운 서귀포 마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초가집 사이로 눌(낟가리)과 전봇대, 나목을 지나 섶섬으로 시선이 이어져 한가로운 남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그림이다.

<해변의 가족>은 짙은 초록색 바다를 배경으로 새들과 가족이 하나가 되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작품으로, 이중섭의 속도감 있는 터치로 인하여 생동감이 넘쳐난다. 사람과 새와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져 자연과 인간을 대하는 이중섭의 심경이 그대로 투영된 작품이다. 짙은 바다색과 흰 새와 살색의 삼색 대비를 통해 각 화면이 강조되면서 생명의 경쾌함을 더해준다. <아이들과 끈>은 이중섭 그림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아이들의 천진무구한 모습을 그린 것으로, 아이들이 서로 끈과 신체 일부로 연결된 리드미컬한 구조를 통해 아이들 간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은 1955년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아들에게 그려 보낸 것이다.

전은자 큐레이터.

그 밖의 기증 작품들로는 이중섭 가족과 서귀포 시절의 연결고리와도 같은‘게(蟹:깅이)’ 그림이 나오는 <은지화>와 이중섭 작품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1940년대의 <엽서화>가 포함되어 있다. 또 서귀포 바닷가의 추억을 담은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해맑은 아이들과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담은 <비둘기와 아이들>, 1954년 아들에게 그려 보낸 <물고기와 두 어린이>, 그리운 가족과의 재회의 꿈을 실은 <현해탄> 등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와도 같은 소중한 작품들이다. / 전은자(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 이 글은 월간미술 9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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