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39)

으아리는 천삼(天蓼), 선인초(仙人草)라고도 하며 한의학에서는 으아리의 뿌리를 위령선(威靈仙)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산기슭이나 들에서 요즘 한창 피어나는 덩굴성의 하얀꽃이 바로 으아리입니다.

5.16도로를 타고 제주시나 서귀포시로 넘어갈 때에 비슷한 꽃 사위질빵과 함께 겨루기를 하듯이 피어나는 꽃인데 나무를 타고 올라간 덩굴에서 피는 꽃은 때아닌 계절에 하얀눈을 가득이고 있는 듯한 형상입니다.

으아리꽃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물론 꽃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입니다.

야생화모임에서 남들은 으아리꽃을 잘도 올리는데 눈맞춤을 한적이 없으니 사위질빵이라는 비슷한 꽃이 으아리인 줄 알고 좋아하다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는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절기상으로 입추가 지났지만 여전히 뜨거운 여름날 해안가를 걷다가 거기서 으아리를 만났습니다.

산이나 들에서 만날 것이라고 상상을 했었는데 전혀 이외의 장소에 피어있는 으아리를 보고는 정말 '으아! 기분 좋다!'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바닷가의 척박한 땅.

그 곳에서 자란 으아리는 산이나 들에서 자란 으아리보다 이파리도 꽃잎도 더 강해 보였습니다.

검은 화산석을 의지해서 해안선을 따라 피는 하얀꽃은 바닷가와 어우러지니 하얀 눈이 아니라 하얀 파도가 밀려왔다가 아쉬워 떠나지 못하는 형상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으아리의 여러 다른 이름 중에서 맘에 드는 이름 하나가 선인초(仙人草)입니다.

뭔가 신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꽃을 바다를 배경으로 바라보니 제주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 '이어도'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어도에는 선인들만이 살겠죠?

'이어도'라는 말만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현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으면 이상향 '이어도'로 그 현실의 고단한 삶들을 극복하고자 했을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현실에 안주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 이들은(지금도) 민중들의 고단한 삶과는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일 것입니다.

그저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다 자기의 능력인 것처럼 착각하며, 자기가 누구의 수고를 훔쳐 먹고 사는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현실이 족한데 그들에게 '이어도'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늘 땀흘려 일하는 이들, 그렇게 땀흘려 일해도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에게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어도'에 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으아리를 만난지 이틀이 지난 오늘은 태풍 '메기'가 바람을 몰고와 팽나무를 흔들어 대고, 미친 듯이 창틈으로 파고 들어옵니다.

태풍 '메기'가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는 이들에게 아픔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 태풍에 해안가의 으아리는 어떻게 지낼까요?

흔들리고 파도에 휩쓸리기도 하겠죠.

그 몸이 갈갈이 찢어 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분명히 태풍이 지나간 그 자리에 넉넉하게 피어있을 것입니다.

그 믿음이 어디서 오는지 나는 모릅니다.

나도 모를 그 믿음을 제주의 들꽃들, 흔하디 흔하게 피어있는 길가의 꽃들을 통해서 얻습니다.

   

※ 김민수님은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는 것을 즐겨 합니다. 자연산문집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 '을 방문하면 볼 수 있습니다. 자연산문집 '꽃을 찾아 떠난 여행 1,2권' 출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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