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탐나는가치 맵핑(1)] 마을공동목장⑥ / 상산방목 목축문화 지켜온 하원공동목장

무심코 지나쳤던 제주의 숨은 가치를 찾아내고 지속 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해 다양한 지역 문제나 의제를 주민 스스로 발굴해 해결해가는 연대의 걸음이 시작됐다. 지역 주민이 발굴한 의제를 시민사회와 전문가집단이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한 뒤 문제해결까지 이뤄내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젝트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와 함께하는 ‘공동기획 - 탐나는가치 맵핑’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참여라는 측면에서 매우 유의미한 연대가 될 것이다. 이번 도민참여 솔루션이 잊히고 사라지는 제주의 가치를 발굴·공유하고 제주다움을 지켜내는 길이 될 수 있도록 도민의 참여와 관심을 당부드린다.  [편집자 주]
서귀포시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서귀포시 하원동 하원공동목장. ⓒ제주의소리

"마을에서 '소를 키우는 것보다 사람 키우는게 낫다'고 해서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아 헐값에 토지를 팔았죠. 산남지역에 대학이 없고 해서, 대학을 잘 운영할 줄 알았는데......우리 조합원들은 그 점을 아주 억울해하고 상당히 후회하고 있어요. 주민들이 속은거지, 속았지 속았어."

서귀포시 하원동에 위치한 하원마을공동목장은 산남지역의 역사를 함께한 곳이다. 산남지역의 유일한 한라산 등반로가 있었던 곳이었고, 옛부터 상산방목(上山放牧)이 행해졌다는 점에서 고유의 목축문화를 간직한 역사적 의미를 지녔다. 수 백여 마리의 소가 누비는 목장 곳곳에는 다양한 멸종위기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상산'(上山) 방목은 산 위, 즉 아고산대 지역인 한라산 고산 초원지대에서 여름철에 마을공동목장의 우마들을 진드기와 더위를 피해 산으로 올려보내 키웠던 전통 목축 방식이다. 

하원마을공동목장은 주민들이 십시일반 자신의 땅을 내놓고, 재화를 쾌척하며 마을 명의의 공동목장을 만들어 대대손손 귀중한 자원으로 전해져 왔다.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조합원 소유의 공동목장은 제주에도 몇 남지 않은 자랑거리다. 마을주민들은 1995년에는 열악한 산남지역 교육 발전을 위해 약 30만㎡에 달하는 광활한 토지를 탐라대학 부지로 헐값에 내주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적지 않은 위기를 맞고 있다. 천혜의 절경을 유지하고 있는 이 곳은 개발자본의 유혹에 끊임없이 직면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점차 떠나며 이제는 외지에 터를 잡은 이들이 더 많아질 수준까지 몰렸다.

산남 고등교육의 산실이 되어 줄 것으로 기대했던 탐라대학 부지는 지금은 폐허로 변했다. 부실대학으로 낙인 찍힌 법인은 주민들이 내어준 토지를 결국 제주도에 되팔며 손을 털었다. 언제쯤이면 정상화 될지도 묘연한 상황이다. 마을은 헐값에 대규모 토지를 대학부지로 내놓았지만 결국 대학 재단은 수십배의 차액을 남기고 400억원 대에 제주도에 팔아 넘겼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땅을 치고 후회한다. "소 키우는 것 보다 사람 키우겠다고 땅을 내줬더니, 주민들이 속았다"는 볼멘소리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11일 오전 10시 서귀포시 하원동 하원공동목장에서 진행된 '탐나는 가치 맵핑' 프로젝트. ⓒ제주의소리
지난 11일 오전, 본격적인 탐방에 앞서 하원마을 제주4.3 희생자 위령비에서 '탐나는가치맵핑'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추모의 묵념을 올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의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 세번째 방문지는 하원마을공동목장이었다.

지난 11일 오전 10시 하원공동목장 앞 하원마을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비에서 시작된 이날 탐방에는 원수윤 하원공동목장 조합장과 하원마을 태생이고 생태교육장 운영을 담당하는 강영식 박사(제주자원식물연구회 회장)가 동행해 마을목장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하원공동목장은 약 148만㎡ 규모로 도유지와 기상청으로부터 임차한 부지, 하원동마을회 소유지 등으로 구성돼 있다. 부지는 대부분 지목상 목장용지와 임야다. 해발 600m에 위치해 있어 제주지역 공동목장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하원공동목장은 제주도내 마을공동목장이 집중적으로 설립되던 때인 일제강점기 당시 1936년에 설립 인가를 받았다. 제주연구원 '제주지역 마을공동목장 관리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하원공동목장조합 조합원 수는 240여명으로, 서귀포시 하원동 출신과 그 후손으로 구성돼 있다.

목장 내에는 현재까지도 많은 소가 방목되고 있다. 옛부터 '상산(上山)' 방목이 행해진 이 곳은 여름이면 해발 1400m 이상의 한라산 고산지대로 소를 방목하고 날이 추워지면 목장 내에서 소를 키워왔다. 최근에는 목장을 7개 구역으로 나눠  방목초지를 번갈아 관리하는 방식으로 200여마리의 소를 사육중이다.

하원공동목장 내에는 도순천의 최상류가 있다. 강정천이라고도 불리는 도순천은 한라산국립공원 안의 영실에서 발원한다. 영실에서 시작하여 하원공동목장을 통하여 강정천 그리고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다.

목장을 관통하는 하천은 강정천으로도 불리우는 도순천의 최상류다. 한라산국립공원의 영실계곡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도순천을 타고 내려가 강정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이 같은 환경에 의해 울창한 계곡림을 형성하고 있고, 초지 곳곳에 상록활엽수림도 분포하고 있다. 분지 안에는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 등의 노거수가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울창한 곶자왈을 연상시킨다. 한눈에 보기에도 건강한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있었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이 지난해 도내 마을공동목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태조사 결과에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동 1급인 비바리뱀을 비롯해 2급인 두점박이사슴벌레, 긴꼬리딱새, 맹꽁이, 팔색조 등이 발견됐다. 이날 탐방중에는 멸종위기종 2급인 애기뿔쇠똥구리의 흔적도 눈에 띄었다.

11일 오전 10시 서귀포시 하원동 하원공동목장에서 진행된 '탐나는 가치 맵핑' 프로젝트. ⓒ제주의소리
11일 오전 10시 서귀포시 하원동 하원공동목장에서 진행된 '탐나는 가치 맵핑' 프로젝트. ⓒ제주의소리

무엇보다 목장 중턱에 올라서면 마주하게 되는 서귀포시 전경은 찾아온 이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우측 끝으로는 안덕면, 좌측 끝으로는 남원읍이 보여 산남의 모든 지역이 한 눈에 들어왔다. 힘겹게 언덕에 오른 참가자들도 "아직까지 이 정도 경치를 지닌 곳이 보존되고 있다는게 경이로울 정도"라며 저마다 감탄사를 터뜨리기에 바빴다.

언제까지고 마을의 자랑으로만 남아있었을 목장의 일부를 교육용 부지(탐라대학)로 매각한 것은 결과적으로 옥의 티가 됐다. 주민들은 지난 1994년 목장용지 중 31만2217㎡ 규모의 토지를 학교법인 동원교육학원에 대학 부지로 넘겨줬다. 당시 시세에 절반 수준인 21억원 정도였다.

그러나,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설립된 탐라대학교는 '부실대학'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문을 닫았고, 현재까지 폐허로 남아있다. 학교법인은 2016년 재정난을 이유로 토지와 대학 본관 건물 등을 415억원에 제주도로 매각하기도 했다.

원수윤 마을목장조합장은 "우리 조합원들과 주민들은 목장 일부를 대학 부지로 판매한 것을 당을 치고 후회하고 있다. 조합원 총회에서 '소 키우는 것보다 사람을 키우는게 낫지 않겠나' 해서 시세보다 헐값에 땅을 팔아주기로 결의했고, 평당 2만2000원에 판매했는데, 얼마가지도 않아 부실 대학이 됐고 폐교됐다. 섭섭한 점이 너무 많다. 섭섭한 정도가 아니라 주민들이 속은거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그 당시 김 모 동원학원 법인 이사장은 20년을 내다보고, 만일 대학운영이 잘 안되더라도 땅을 팔면 걱정이 없을 것으로 미리 계산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입장에서는 아주 억울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목장을 언제까지 지켜낼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도 다소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원 조합장은 "우리 세대까지는 (목장을)지켜내려 하고 있지만, 아마 다음 세대까지는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겠다"며 "젊은 사람들 중심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우려의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까지도 목장을 팔아달라는 제안이 여럿 들어왔다고도 했다. 원 조합장은 "어떻게 알고 전화를 하는지, 목장 땅을 판매하라는 연락이 자주 걸려온다. 최근에는 지난 4월까지도 목장 땅을 팔아달라는 전화를 받았다"며 "다음 세대에서 조합원 이익을 위해 언젠가 개발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일부는 개발하되, 마을목장의 전통적인 목축문화도 유지되고 계승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원수윤 하원마을공동목장 조합장, 강영식 제주자원식물연구회 회장. ⓒ제주의소리
하원마을공동목장 ⓒ제주의소리
전통적인 상산방목의 목축문화를 지켜오고 있는 하원마을공동목장. 한눈에 보기에도 소들도 목장도 건강하다.  ⓒ제주의소리

강영식 박사도 "지금은 주민들이 직접 소를 기르는 터전이라는 점에서 보존 당위성이 있는데, 소를 기르지 않는 후대에 가면 결속력도 떨어지고, 어떻게 할지 고민할 날이 올 것이다. 30년 후면 조합원 중에는 외지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실적인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현재 마을 내부적으로는 목장과 생태관광을 접목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강 박사는 "하원마을이 지켜온 목축·농촌문화에 더해 생태를 접목시킨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목장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생태적·문화적 가치를 지켜내는 과정"이라며 "코로나19 때문에 멈춰섰지만, 내년 정도면 적극적으로 알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은 지속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해 지역의 다양한 의제를 주민 스스로 발굴하고 발견된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한 뒤 해결까지 모색하는 도민참여 프로젝트다.

첫 번째 주민발굴 의제로 '마을공동목장'을 택한 프로젝트팀은 지난 8월 14일 금당목장과 8월 28일 남원한남공동목장(머체왓숲길)에 이어 세번째로 이날 하원공동목장을 찾았다.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그램은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제주 곳곳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 구글 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mapplerk3’를 내려받아 회원 가입한 뒤 커뮤니티 검색에서 ‘Save Jeju’를 검색, 가입하면 된다.

이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곳곳의 가치들을 영상과 글, 사진 등을 통해 기록하면 된다. 회원 가입을 하지 않더라도 홈페이지(mapplerone.net/savejeju)에서 공유된 가치들을 살펴볼 수 있다.

하원마을공동목장 ⓒ제주의소리
하원마을공동목장에서 내려다본 서귀포 앞바다 풍경. 좌측으로 남원읍에서 우측으로 대정읍과 안덕면까지 산남지역이 모두 한눈에 조망되는 절경은 넋을 놓기에 충분했다.  ⓒ제주의소리
하원마을공동목장 ⓒ제주의소리
하원마을공동목장에 방목되는 소떼들은 영실계곡에서 직접 끌어온 천연수를 먹고 자라고 있었다. 원수윤 조합장과 강영식 박사는 "전세계에서 최고인 마을의 보물이 바로 이 물"이라며 상산방목 중인 소들의 건강 비결을 이 물에서 꼽았다.  ⓒ제주의소리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