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탐나는가치 맵핑(1)] 마을공동목장⑦ / 원수윤 하원목장 조합장-강영식 자원연구회장

무심코 지나쳤던 제주의 숨은 가치를 찾아내고 지속 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해 다양한 지역 문제나 의제를 주민 스스로 발굴해 해결해가는 연대의 걸음이 시작됐다. 지역 주민이 발굴한 의제를 시민사회와 전문가집단이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한 뒤 문제해결까지 이뤄내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젝트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와 함께하는 ‘공동기획 - 탐나는가치 맵핑’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참여라는 측면에서 매우 유의미한 연대가 될 것이다. 이번 도민참여 솔루션이 잊히고 사라지는 제주의 가치를 발굴·공유하고 제주다움을 지켜내는 길이 될 수 있도록 도민의 참여와 관심을 당부드린다.  [편집자 주]
왼쪽부터 원수윤 하원공동목장 조합장, 강영식 제주자원식물연구회 회장. ⓒ제주의소리
왼쪽부터 원수윤 하원공동목장 조합장, 강영식 제주자원식물연구회 회장. ⓒ제주의소리

한라산 중턱 수십만 평에 달하는 초지를 지켜온 원수윤 하원공동목장 조합장. 소와 목축에 대해선 누구보다 자신있는 그다. "태어나고 보니 소를 몰고 있었다"는 우스갯소리를 자연스럽게 하는 그에게선 일평생을 목축업에 종사해 왔다는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목장을 오를때마다 그의 손에 쥐어진 물푸레나무 지팡이는 그의 꼿꼿함을 닮았다. 아무렇게나 꺾어 만든 물푸레나무 지팡이 하나를 두고도 "산에 오를땐 이 놈이 큰아들 보다 낫지"란다. 목장에 있을때만큼은 그의 이야기 보따리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고향땅 하원마을은 그에겐 특별한 곳이었다. 일평생 고향과 함께한 원 조합장은 자연스럽게 20세기 제주 목축문화의 산 증인이 됐다. 최근까지도 한라산에 소떼를 풀어두는 '상산방목'이 행해졌다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제시대 당시 십시일반 땅을 내놓고, 자금을 쾌척한 선조들은 마을의 자랑거리다. 누가 몇 평, 몇 호의 땅을 냈는지에 대한 세밀한 기록들까지 부락에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벌써 5년째에 접어든 조합장 자리가 무엇보다 막중하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히 고향을 사랑한 이들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강영식 제주자원식물연구회 회장이 대표적이다. 하원동에서 나고 자라 객지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제주의 식물, 새, 곤충, 어류, 바다, 오름 등을 연구하고, 그 생태적 가치를 마을과 접목시킨 관광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와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가 함께한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에 동행한 원 조합장과 강 회장은 마을의 역사와 더불어, 오늘날 겪게 된 현실적인 어려움까지 속에 있는 이야기를 가감없이 꺼냈다.

원 조합장은 소를 '인생의 동반자'라고 표현하며 목축의 역사를 소개했다.

그는 "옛날에는 한라산에 소를 방목하며 키웠다. 소는 자신이 지나온 길을 잃는 법이 없다"며 "아랫지대에 풀이 나지 않는 5월 18일, 늦어도 5월 20일 쯤에 산으로 올려보냈다. 한라산은 물도 좋고, 진드기가 없고, 파리도 덜 꼬여 여름을 나기가 좋았다. 그렇게 7월쯤 지나면 소떼가 내려오곤 했다"고 설명했다.

하원마을공동목장 ⓒ제주의소리
원수윤 하원마을공동목장 조합장이 산에 오르자 목장에 우두머리 숫소가 언덕 위에서 탐나는가치맵핑 참가자 일행들을 지켜보고 있다. 원 조합장의 오른손에는 아무렇게나 꺽은듯한 물푸레 나무가 쥐어져 있다. 수년째 그의 손을 떠나지 않는 분신이다. 그는 "산에 오를땐 이 나무가 큰아들 보다 나아"라며 우스갯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제주의소리
하원마을공동목장 ⓒ제주의소리
원수윤 하원마을공동목장 조합장이 목장에 올라올 때 마다 쉬어가는 소나무 아래 걸터앉아 한숨을 돌리고 있다. 원 조합장도 소떼들도 본디 그 자리에 있던 소나무처럼 모두 한 몸의 풍경이다.  ⓒ제주의소리

소 한마리가 길을 잘못 들어 다른 소떼를 따라 제주시 지역으로 내려갔다가 한참 후에 다시 집을 찾아 돌아온 이야기도 소개했다. 수천 마리에 이르렀던 상산방목은 1970년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금지됐다. 제주지역 마을 목장 중 가장 지대가 높은 하원마을은 비교적 최근인 1980년대까지 상산방목을 이어왔다.

현재는 목장을 7개 구역으로 나눠 시기에 따라 풀을 먹이고 있다. 그나마 개량목초로 바뀌며 생산성이 늘었다는 첨언을 곁들이기도 했다.

목장을 관통하는 '수로길'에 대한 역사적 배경도 흥미로웠다. 옛부터 물이 부족했던 하원마을은 논을 일구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1950년대말 한라산 고지대인 영실계곡의 물을 끌어와 저수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계는 커녕 마땅한 장비도 없던 시절이라 모든 작업은 사람 손으로 이뤄졌다. 삽과 곡괭이를 쥔 사람의 힘으로만 달려들어야 했다. 집채만한 바위를 깨는 것부터 물골을 트는 작업까지 상당한 노동력이 투입돼야 했고, 대역사의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일꾼들이 안타깝게 숨지는 사고까지 감내해야 했다.

수 년간의 작업 끝에 장장 10km에 달하는 수로가 만들어졌고, 이 수로길은 자연스럽게 산남지역에서 한라산 백록담으로 오르는 유일한 등산로도 사용됐다. 수로를 따라 오르면 산길을 잃을 일이 없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수로가 만들어진 1960년대 중반부터 국가 사업으로 제주감귤이 집중 육성되면서 수로는 쓰임새를 잃게 됐고, 저수지가 있던 자리는 매립돼 과수원으로 남아있다. 아직 목장 내에는 당시의 수로 흔적이 쉽게 발견된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목장을 운영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강영식 박사(제주자원식물연구회 회장). 강 박사가 쓴 모자 오른쪽에 한라산 백록담 산봉우리가 구름에 살짝 가려있다. 하원마을공동목장은 전통 목축문화인 상산방목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원 조합장은 "우리 세대는 모르겠지만 다음 세대, 젊은 사람들은 토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팔려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는 부동산 승계가 장자 중심으로 하다가 최근에는 동의서를 받은 이들에게 넘겨지는데, 마을에 남아있지 않은 이들도 많다"며 "자식 세대까지 목장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그는 "비료, 사료, 약품 가격도 다 오르는데, 목장 토지세도 내리는 법이 없다. 공시지가가 오르다보니 세금 내기도 벅찰 지경"이라며 "목장 토지를 조금씩 팔아야 유지가 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원 조합장은 "잊을만하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마을 땅을 팔아달라는 전화가 수 없이 온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우스갯소리로) '총회 열기 실어서 안판다'고 거절하는 중"이라며 미소를 보였다. 

목장이 위치한 중산간 일대의 경관이 워낙 빼어나다보니 실제 개발을 위해 토지를 사들이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비교적 최근인 올해 4월까지도 땅을 팔아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물론 일언지하에 거절, 말도 붙이지 못하게 잘랐다. 

원 조합장은 "우리는 이 땅을 지켰지만 그게 언제까지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훗날 조합원 이익을 위해 언젠가는 개발이 될 수도 있다고 보지만, 그렇더라도 적어도 목축문화는 유지되고 계승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서귀포시 하원동 하원공동목장 전경. ⓒ제주의소리
서귀포시 하원동 하원공동목장 전경. 목장 아래로 강정마을 등 서귀포 앞바다가 너르게 펼쳐져 있다. ⓒ제주의소리

강영식 회장도 "지금은 마을 주민들이 직접 소를 기르고 있으니 보존 당위성이 있는데, 후대에 소를 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나. 결속력도 떨어지고, 타지에 나간 사람이 '땅을 남겨두면 뭐할거냐'라고 주장하면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를 필두로 진행되고 있는 생태문화관광 프로그램은 이의 대안으로 나온 계획이다. 강영식 회장은 현재 하원마을 고유의 목축문화와 생태를 결합시킨 관광 프로그램을 계발하고 있다. 

그는 "고향에 돌아온지 20년쯤 됐다. 내려오면서 제주 관광산업을 생태를 살리는 방향으로 전환해야겠다고 생각해 생태문화체험골, 생태문화체험 학습장 등을 만들며 실무를 전공했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해 교육이나 모임이나 아무것도 진행될 수 없는 상황에서 목장을 찾아주고, 생태적·문화적 가치를 발견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코로나 이후에 적극적으로 생태문화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할 계획"이라고 관심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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