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잇속 챙기기에 여야 따로 없는 도의회, 도민들 안중에도 없나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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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케무샤

원희룡 전 지사는 ‘가케무샤(影武者)’ 였던가. 환경파괴의 전선에서 주역으로 앞장섰던 그가 물러나니 안개가 걷히듯 뒤에 숨었던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비자림로 확장 공사가 여러 문제로 기약 없이 지체되는 것에 안달이 났는지, 일부 도의원들이 공사강행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자 도의회 상임위원회가 기다렸다는 듯 ‘빛’의 속도로 가결시켰다. 초안의 일부 문구를 수정하기는 했다. '환경부에서는 눈치 보지 말고 지속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한 거시적인 환경적 가치에 더 큰 고민을 해줄 것을 촉구한다'에서 ‘눈치 보지 말고’의 글귀를 삭제한 정도다. 

남에겐 눈치 보지 말라면서 자신들은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다. 흔히 범죄수사에서 피의자의 최초 진술이 가장 신빙성 있는 발언으로 간주된다. 나중에 화장발로 얼버무린 도의회의 수정안이 아니라 원안의 주문을 보면 풀뿌리민주주의 시대에 지역주민의 대표이자 대리자로 임해야 하는 도의원들의 민낯과 속셈이 그대로 드러난다. “전국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공공사업에 대해 분란과 갈등을 유발하는 반대단체의 조직적 활동에 대한 공동 대책 마련을 제안”한다는 첫 항은 도의회의 존재이유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발언에 가깝다. 

갈등 해소 외면 

비자림로 확장이라는 지역사업에 외지(外地)의 자치단체들의 공적 영향력까지 불러들인 것이다. 도민들의 아까운 혈세를 들여가며 도의회가 설치되고 운영되는 취지가 무엇인가. 아무리 훌륭한 공공사업이라도 도민들 백퍼센트가 찬성하는 경우는 없는 법. 대부분은 상호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기 마련이다. 도의회가 존재하는 것은 이러한 갈등에 대해 소모적이고 파행적인 분란을 방지하고 토론과 합의라는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허나 이번 사안과 관련해 도의회가 반대주민들과 진지한 대화를 하려는 노력은 전혀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타지 공공기관들의 힘을 빌리려고 하다니 도의원들 스스로 지방자치 의회가 존재할 이유를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무능함을 자인한 셈이다. 주문의 둘째 항은 민주적 합의과정을 외면하는 대신,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 외에 도의원들이 생각하는 궁극적인 공동 대책이 무엇인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 공익사업에 대한 반대단체의 조직적 활동에 강력히 대응하여 주민의 권리와 이익을 최우선해야 한다.” 비자림로가 확장되기만 하면 대박이 나는데 장기간 진전이 없는 데다 원 지사까지 없으니 다급해진 것인가. 

전투경찰 

이제 도의원들이 몸소 나서 제주도에 “강력한 대응”까지 요구하는 꼴이다. 문장을 “주민의 권리와 이익을 최우선해야 한다”로 끝냈지만 누가 보더라도 방점은 “반대 단체의 조직적 활동에 강력히 대응”에 찍혀 있다. “반대 단체의 조직적 활동”이란 글귀가 “반대단체의 조폭적 활동”으로 들리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강력 대응이라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군부독재시절 검은 헬멧의 보호철망 사이로 희번덕거리는 눈에선 살기마저 느껴졌던 전투경찰이라도 현재로 소환해 최루탄을 펑펑 쏘아가며 공사를 막아선 도민들을 곤봉과 방패로 찍어 진압하자는 말인가. 

전체 여론을 수렴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민주적인 과정이 없이 반대 의견을 묵살하거나 공권력으로 억누르는 것이 단지 주민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풀뿌리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도로 확장사업이 지체된 것은 반대단체의 조직적 활동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큰 책임은 당초 계획 수립 단계에서 사전에 도민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공사부터 마구잡이로 밀어붙인 원 지사에게 물어야 할 일이다. 만만한 게 도민인 것인가. “도민을 섬기는 머슴이 되겠다”는 약속은 단지 선거용이었나. 

비자림로 확·포장 공사 재개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제주도의회 고용호(사진, 성산) 의원 주도로 여야 의원 25명이 서명해 공동 발의됐다. 
제주도의회는 9월 7일 오후 2시 제398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를 열어 고용호 의원(성산읍, 더불어민주당)이 대표 발의한 ‘비자림로 확·포장사업 조기 개설 촉구 결의안’을 재석의원 35명 중 찬성 26명, 반대 7명, 기권 2명으로 가결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생떼

무지함과 오만함은 “환경부에서는 눈치 보지 말고 지속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한 거시적인 환경적 가치에 더 큰 고민을 해줄 것을 촉구 한다”는 셋째 항에서도 계속된다. 눈치를 보지 말라니, 옛날 군부독재시절엔 지방관청 위에서 상전으로 군림했던 중앙부처에 윽박지르듯 훈계까지 할 정도로 우리 도의원들이 머리가 많이 커지긴 한 모양이다. 이유와 논리가 합당하다면야 도민의 일원으로서 약간의 뿌듯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원안 말미는 환경부의 사업 유보가 반대단체들의 조직적 활동에 굴복한 과도한 환경저감정책의 일환으로 단정한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도의원들의 억지스런 확증편향일 뿐이다. 환경부 조치는 충분히 납득할만하다. 제주도가 2015년에 제출한 ‘비자림로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 내용과 달리 사업대상지역이 애기뿔쇠똥구리와 팔색조 등 세계적 멸종 위기종들의 서식처임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당초 제주도의 환경영향평가서가 엉터리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원 지사는 “중대한 문제가 확인되지 않는 이상 공사를 멈출 수 없다”고 우겨왔던 것이다. 그들에겐 원 지사 시절이 무척 그립지 않을까. 이제는 직접 나서 궁색한 논리를 반대 측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때워야 하니까.  

수박

잇속엔 보수, 진보가 따로 없는 것일까. 흔히 ‘수박’이란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겉은 파랗지만 속은 빨갛기에 말이다. 도지사와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인 도의회 사이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나눠먹기만 있었을 뿐이다. 개발보다 환경보존을 지향한다는 민주당이지만 적어도 우리 도의원들만큼은 황금알에 눈이 멀어 당장 거위의 배를 갈라버리는 데 혈안이 된 꼴이다. 2002년 중앙정부에 의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됐던 자랑스러운 비자림로가 그들에겐 한낱 사업의 걸림돌쯤으로 취급받으니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는 남 얘기가 아니다.  

한밤중에만 운다는 붉은해오라기 소리를 듣기 위해 칠흑같이 어두컴컴한 비자림로 숲속에서 잠도 포기해가며 숱한 밤을 보냈다는 환경단체의 어느 활동가. 그리고 인간들에게 천대받는 동안 수많은 동식물들에겐 최고의 서식지로 묵묵히 자신의 몸을 내주고 있었던 삼나무들의 숲이 불시에 기습당해 전기톱들에 무참하게 잘려나간 나뭇등걸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터뜨렸던 한 도민. 이들을 갈등과 분란만 일으키는 반사회세력쯤으로 여기는 도의원들에게 누구나 한번쯤은 들었을 시 한 구절을 보낸다.

그대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일 년도 채 남지 않은 지방선거가 왜 이리 멀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 김헌범 논설위원, 제주한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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