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레아트센터 연극 ‘백조의 노래’

ⓒ제주의소리
3일부터 12일까지 '백조의 노래'에 출연한 강상훈 배우. ⓒ제주의소리

묘한 여운이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뻣뻣한 동작에 맛깔 나는 대사 처리도 아니었음에도, 무대에 홀로 서 있던 늙은 배우의 잔상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러시아 대문호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단막극 <백조의 노래>. 전집 기준으로 5장 반 밖에 안 되는 짧은 작품이다. 어느 지방 극장 무대에서 만취 후 잠이 깬 68세 연극 배우의 인생 회상을 담았다.

친척도, 마누라도, 자식도 없이 연극 배우라는 삶을 홀로 걸어가는 바실리. 그러면 관객은 그를 기억할까. “관객은 극장을 나가 잠들면 광대에 대해서는 잊어버린다”며 고독함에 몸부림친다.

예술은 그를 윤택하게 만들어주지 않았지만, 예술은 계속 그를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이다. 고전의 고전,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 <햄릿>, <오셀로> 등을 연달아 연기하며 쓸쓸한 독거노인은 다시 생기를 얻는다.

제주 연극인 강상훈이 보여준 바실리의 잔상은 단순 연기력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작품 속 인물과 실제 배우의 삶이 맞닿은 일치감에 가까웠다.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견디며, 때로는 생존을 위해 자존심을 구길지라도 소극장과 연극을 포기하지 않은 연극 인생 40년. 귀족 집안으로 멋진 군인이었던 바실리처럼, 무대가 아닌 평범한 길을 선택했다면 그는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을까.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남아있지 않고 예술만이 자기를 지탱하는 바실리와 강상훈은 교집합을 가진다.

현재 진행형으로서 변화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번 공연은 전하는 바가 있다. 무대 안이나 밖이나 함께 했던 2009년 <백조의 노래>였다면, 12년 뒤 같은 작품은 비교적 쓸쓸함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배우의 나이(60세)가 원작 나이(68세)와 가까워질수록 강상훈의 <백조의 노래>는 더욱 반짝이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열정, 좌절, 포기, 희망…. 세월 지나 여러 감정이 뒤섞이는 동안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으며, 내면은 더욱 깊어진다. 한결 넓어진 품에서 빚어낸 바실리는 진한 맛을 선사하리라.

운영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인터뷰가 있었다. 무대를 꿈꾸는 새싹들은 꾸준히 피어나고, 세대 교체는 애석하지만 순환하는 계절과도 같다. 더욱이 한 차례 넘어졌다가 재기하는 경우라면 더욱 힘이 들겠다. 

연극 대사처럼 보통 관객은 공연장을 나서면 배우와 멀어진다. 기자 역시 때마다 표를 사서 지켜보고 기사를 끼적이는 정도에 불과하다. 부디 연말까지 이어질 연극 인생 40주년 기획 공연을 통해, 두 사람이 계속 써내려 갈 밑그림을 마련하길 바란다. 두 사람 만이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더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직 남아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서 세상을 떠돌며 찾으러 가리다.
모욕 받은 감정이 쉴 수 있는 작은 모퉁이를!
마차, 마차를!

- 안톤 체호프, ‘백조의 노래’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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