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제례가 아닌 사람이 중심 되고 사람을 기억하는 추석 되길...”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 연재를 통해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떡 ᄒᆞ는 날! 할아버지는 어디서 술 한 잔하고 오셨다. 아버지도 여기저기 삼촌덜 만나고 다니느라 바쁘다. 할머니와 어머니도 부엌에서 이리저리 음식을 장만하느라 정신이 없다. 어린 아이들은 밖에서 놀고 싶은데 어머니의 잔심부름을 해야 되서 집에 얽매여 있다. 할아버지는 준비된 음식을 휘휘 훑어보고는 마루 가운데 자리 잡고 앉으셨다. 이것저것 할머니에게 물어보고는 투덜대신다. 고기가 어떻다는 둥, 준비가 덜 되었다는 둥, 할머니와 어머니는 억울함과 불만이 가득하지만, 투덜대는 가장을 달래고 달래 겨우 고기 산적을 굽게 만드신다. 예전 제사 음식을 장만할 때 불을 사용하는 부분은 꼭 남자가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할아버지나 아버지만이 생선과 고기를 직접 구웠다. 전해 듣기로는 아주 오래전에는 제사 음식 관련 불은 남자만 다룬다고 했다. 

명절날이 되었다. 괸당 집집마다 제를 지내는데, 순번대로 모두가 돌아가면 제를 지낸다. 하루에 10곳이 넘는 괸당 집들을 돌아다니며 매번 제를 지냈다. 이리저리 돌아다는 것이야 괜찮았지만, 매번 의미도 모른 채 어른들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큰 절을 올려야 하는 절차는 참으로 지루하고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여자들은 매번 음식을 차리고, 반을 태우고(음식 나눔), 뒷정리를 하느라 부산했다. 명절은 제일 큰 집에서 어른들의 큰소리로 마무리되곤 했다. 간만에 만나서 집안의 대소사를 순탄하게 정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별 큰소리 없이 지나간 명절 기억이 거의 없다. 그리고 그 밥상머리에 여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어머니나 여편삼촌네는 끝까지 부엌에서 나오지 않았다. 

대략 30~40년이 흘렀다. 여전히 추석 명절 시기에 관습과 제례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여전히 여자들은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음식을 나른다. 여전히 남자들이 제사상에 음식을 올리고, 여전히 집안내 서열대로 절한다. 여전히 각자의 영역이 있고, 여전히 각자의 역할이 주어진다. 그리고 여전히 모두에게 넘어서기 힘든 경계의 선이 있다. 그것을 여전히 예의라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팔월 한가위에 달이 뜨면 손을 맞잡아 원을 그리며 도는 민속놀이 '강강술래'.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팔월 한가위에 달이 뜨면 손을 맞잡아 원을 그리며 도는 민속놀이 '강강술래'.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얼마 전 한 동네에서 노인인권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1991년 12월 16일 유엔총회에서는 ‘노인을 위한 유엔 원칙(UN Principles for Older Persons, 1991, 결의 46/91)’을 의결했다. 이 원칙은 ‘독립, 참여, 돌봄, 자아실현, 존엄’이라는 5개 군 18개 항으로 이뤄졌다. 강의는 각각의 원칙들에 대한 현실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노인 인권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그 강의에 참여하신 어르신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원칙은 ‘존엄’이었다. 어르신들은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며 건강해지기 위한 다양한 자신들의 노력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그런데 그 건강은 삶을 오랫동안 유지 하려는 목적보다 건강한 마지막을 위한 것이었다. 인생을 마무리해야하는 시점에서 어른들의 소망은 건강한 마무리, 존엄한 죽음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기억이었다. 존엄한 당신들의 삶을 후손들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것이었다. 어르신들의 사람다운 삶의 마지막 정점은 기억이었다. 우리에게 추석은 그 기억을 지속 시켜주는 명절이다. 

추석은 우리나라의 큰 명절이다. 온갖 곡식과 과일이 풍부한 시기이다.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고 조상님들의 은덕을 기억하고 기리는 날이다. 이러한 의미 있는 날에 가족의 구성원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앉기가 쉽지 않다. 추석 음식 준비하는 자리에 아들의 자리는 과거의 관습에 많이 머물러 있는 어르신들의 오랜 관행 탓에 쉽사리 마련되지 않는다. 제를 마친 후 마련된 밥상머리에도 음식상을 차려야 하는 어머니들의 부산함이 있어 그저 마음 편히 앉아 즐기는 가족 식사 자리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명절까지 무슨 인권적 시각으로 비판 하느냐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족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 자신들의 역할만 수행하고, 형식적 제례에만 매몰되기도 한다면 한가위 풍성한 추석은 현실과 괴리가 있는 말이 되지 않을까?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명절 시기 가족들 간의 경계선이 있다. 그렇다면 조금은 행복하고 풍성한 추석을 위해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가족들이 다 모다드렁 음식을 준비하면 어떨까? 어느 누구에 주어진 일이 아닌 남녀노소 모두가 다함께 준비하는 제사 음식은 조상님의 은덕을 기리는 거룩한 제례를 보다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남녀를 가르고, 서열을 가르면서 가부장적 사회질서를 후손들의 미래에 새겨 넣는 것보다 모두가 다 힘든 일을 힘 모아 함께 해나간다면 추석의 힘겨움이 한결 덜 해지지 않을까? 함께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들은 서로의 오해를 풀고, 서로를 배려하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자연스레 집안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고 조정이 되면 밥상머리 가족 이야기는 서로에 대한 감사와 격려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모두가 모여 있는 그 곳에서 전해 듣는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뿌리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조상님들의 존엄한 삶을 더 잘 기억하게 하지 않을까? 추석이 더 풍성해지려면 모든 가족이 함께 만나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삶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 어린 사람부터 나이 많은 어르신까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이 서로 공유되고 서로 존중하며, 더 나아가 이승으로 떠난 우리 조상님들의 삶조차도 존중할 수 있는 추석이 된다면, 그러한 명절이야말로 본래적인 의미에서 풍성한 한가위일 것이다. 공경과 존중의 형식을 갖

신강협 상임활동가.
신강협 인권왓 상임활동가.

추는 것은 추석 명절을 보다 더 예의롭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제례 ‘형식’이 ‘사람’보다도 더 과도하게 중심이 되는 것은 오히려 추석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 추석 명절에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갖는 사람들이 한 공동체로 모여든다. 그 다양한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다 모아내고 다 풀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다양하지만 한 가족 공동체가 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추석의 중심이 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한 밥상머리에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는 추석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 모다드렁 풍성한 한가위 맞이하길...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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