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오페라 ‘순이삼촌’

사진=유튜브 갈무리. ⓒ제주의소리
오페라 '순이삼촌' 출연진, 제작진이 18일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갈무리. ⓒ제주의소리

지난해 성공적인 초연을 마친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이 올해 두 번째 무대를 올렸다. 

비극을 강조한 원작 소설 분위기는 변함없이 잘 드러냈다. 동시에 여러 면에서 관객과 보다 가까워지고, 보다 완성도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한 고민이 묻어났다.

2021년 ‘순이삼촌’은 초연과 동일한 총 4막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소설에서 화자인 상수가 모처럼 고향을 찾은 1979년으로 시작해, 1948년 북촌리 학살 현장으로 이동한 뒤 순이삼촌이 생을 마감하는 1979년으로 돌아온다.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과 가해자의 시선(1막), 이승과 저승이 맞닿은 학살 현장(2막),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현실의 시작(3막), 비로소 눈 감은 순이삼촌과 기억해야 할 이름들(4막)까지. 오페라 ‘순이삼촌’은 침울하고 무거운 감정으로 4.3의 고통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두 번째 ‘순이삼촌’은 보다 자연스러운 진행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음악적·극적 변화도 시도했다. 지난해 공연 시간은 중간 쉬는 시간을 포함해 2시간 50분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2시간 25분 정도다. 4.3유족 인터뷰 영상과 2막 장교 아리아, 3막 합창 가운데 젊은 큰아버지 독창 부분이 삭제되는 등 일부분 조정이 이뤄졌다.

빠진 자리는 1막 작은 당숙의 새로운 독백, 3막 학살 이후 순이삼촌과 해녀 만남, 그리고 순이삼촌의 밭일 장면이 새로 채웠다. 김병택 배우가 연기한 작은 당숙의 독백은 1954년 북촌에서 실제 있었던 안타까운 사연이다. 당시 북촌초등학교 교정에는 한국전쟁 전사자 김석태의 고별식이 열렸다. 행사 과정에서 6년 전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며 묵념을 가졌는데, 일부 주민의 대성통곡을 경찰이 ‘집단행동’으로 인지하고 각서를 요구했다는 서글픈 역사다. 이 대목은 3막 말미에 자막으로도 소개됐다.

초연에서는 살아남은 순이삼촌이 식탐에 몰두하는 모습과 두 자녀를 묻은 옴팡밭 돌무덤에서의 오열이 나온다. 이번에는 순이삼촌이 갓난아이를 들고 옴팡밭에서 밭일을 하는 장면으로 교체됐다. 자녀가 잠든 밭에서 노동하는 순이삼촌, 그런 모습을 섬뜩해 하면서 동시에 안타깝게 여기는 해녀들(강정임·신재연 배우). 생존의 의지를 부각하면서 그렇기에 더더욱 비통한 현실을 비춘다. 초연은 옴팡밭 돌무덤에서의 오열(3막)과 4막이 상당부분 겹쳤는데, 구덕을 보며 검질 매는 모습은 개연성 뿐만 아니라 감정을 다양하게 느끼게 해주는 효과적인 변화였다고 본다.

음악에서는 2막 ‘광란의 아리아’가 제일 주목을 끈다. 시체 더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순이삼촌이 싸늘하게 식은 두 어린 자녀를 발견하고, 현실을 감당하지 못해 정신 착란을 겪는 장면이다. 초연에서는 연기만으로 진행했다면, 이번에는 가사 없는 보칼리즈(vocalization, 모음창법)를 추가했다. 짧은 시간 동안 매우 격정적인 분위기 속에 감정, 연기, 대사, 노래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균형 있게 소화해야 하는 상당히 어려운 장면으로 다가왔다. 

순이삼촌 역은 첫 날 김지현, 둘째 날 오능희 성악가를 섭외했다. 김지현은 고음 소화 능력에 있어 강점을 발휘했다면, 오능희는 캐릭터 해석이 돋보이는 등 전반적으로 각기 다른 매력을 보였다. ‘광란의 아리아’는 그런 매력이 더더욱 도드라지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극 연출에서도 여러 변화가 있었는데, 배우 비중이 강화되는 동시에 배역도 달라졌다. 국민학교 학살을 지시한 장교는 성악가 대신 이창익 배우가 맡았다. 이창익 배우는 초연에서 이장 강씨를 연기한 바 있다. 이장 강씨는 이상용 협력연출이 직접 나섰는데 군인들에게 당하는 연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큰당숙 역의 이병훈, 현모형 역의 이승준 배우는 국민학교 학살 장면에서 마을사람으로 투입됐다. 이병훈·이승준 배우가 1막에 이어 다시 등장한 것은, 합창단과 배우진이 섞인 상황에서 전문 배우 비중을 높여 극 연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고민의 일환이겠다.

‘젊은 피’ 고훈민·강지훈 배우는 각각 젊은 큰 당숙에서 군인, 마을사람에서 젊은 큰 아버지로 비중이 높아졌다. 새로 투입된 김민건 배우는 젊은 큰 당숙으로 캐스팅됐다.

2막 1장 초연은 학교 운동장에서 군인들이 주민들을 구타하면서 옴팡밭 학살로 넘어가는데, 이번에는 운동장에서 직접 총격을 가한다. 원작에서 없는 창작 영역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해는 2막 시작에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헝겊공을 던지며 노는 장면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해 곧장 갈등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다소 갑작스러웠다면, 이번에 다행히 애초 의도대로 진행했다. 

순이삼촌이 저승으로 향하는 과정을 보다 부각시키고자 무구 ‘기메’를 새로 등장시켰고, 무용가 박연술의 위무 역시 소품을 더해 시각적으로 강조했다. 마지막 합  창곡 ‘이름 없는 이의 노래’는 희생자 명단 영상으로 비추면서 그대로 노래를 부르며 보다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이처럼 올해 ‘순이삼촌’은 관객들의 이해를 돕고 메시지 전달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이뤄졌다. 물론 숙제 역시 남아있어 보인다.

사진=유튜브 갈무리. ⓒ제주의소리
오페라 '순이삼촌' 출연진, 제작진이 17일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갈무리. ⓒ제주의소리

순이삼촌이 죽음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3막 부분에서는 밀물현대무용단과 함께 한다. 문제의 장면은 순이삼촌이 무용단원 위에 올라 뒤로 쓰러지는 순서다. 깔끔하게 소화한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균형을 잡는데 신경을 쓰다가 어정쩡하게 쓰러진다면 본래 취지를 무색케 만든다. 아쉽지만 첫 날과 둘째 날 모두 매끄럽지 않았다.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확실한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감수해야 할 부담이 커 보인다. 

순이삼촌이 살아남은 ‘광란의 아리아’ 장면은 보다 깔끔한 과정으로 옷에 피를 묻혀서, 본 연기에 집중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학교 운동장이 배경인 2막 1장은 지난해보다 상당부분 개선이 이뤄졌다. 전문 배우를 추가 투입하고. 이병훈·고훈민이 합을 맞춘 연기와 약속된 동선도 추가했다. 하지만 영배 각시가 끌려간 이후는 다소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군인이 교문 쪽으로 줄을 서라고 명령했지만, 줄을 서지도 않고 모여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장면만 끝까지 반복됐다. 

“교문 밖에 맞바로 잇닿은 일주도로에 내몰린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며불려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군인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는 할머니들, 총부리에 등을 찔려 앞으로 곤두박질치는 아낙네들, 군인들은 총구로 찌르고 개머리판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사람들은 휘둘러대는 개머리판이 무서워 엉금엉금 기어갔다. … 뒤처지는 사람들에게는 뒤꿈치에다 대고 총을 쏘아댔다.”

- 소설 ‘순이삼촌’ 가운데

원작에 등장하는 모습을 잘 분석해도 충분히 ‘정교한 혼돈’ 상황을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다못해 원작처럼 주민 무리 한쪽을 주저앉아 애걸하는 모습으로 만들고, 그 뒤에 공포에 질린 주민들을 이어놓으면 발만 동동 구르는 현재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빌고, 앉고, 무릎 꿇고, 쓰러지고, 기어가고, 구르고 보다 다양한 동작과 감정 역시 필요해보인다.  

물론 성악가와 배우가 혼재돼 있고 장비 착용 같은 조건과 가용할 수 있는 자원도 감안해야 한다. 노래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장르적 특성상, 연기는 연극만큼 100%를 요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녹록치 않은 여건이지만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단순하고 어설픈 재현 보다는 정교하고 현실적인 설정 위에서 느끼는 감정이 더 큰 공감대를 이룬다. 내리치는 몽둥이에 반응하고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소할지도 모르는 동작들이 제대로 쌓이고 쌓일 때 관객은 더욱 몰입한다. 

이번 공연도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제한된 무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생중계로 작품을 관람했다. 초연 생중계에서는 곡 제목과 작사·작곡, 부르는 이 정보만 제공했다면, 올해는 가사만 보여줬다. 다음 공연에는 곡 정보와 가사 모두 보여주길 바란다. 

옴팡밭 학살 격발 순간에 첫 날 공연은 군인을 비추고 두 번째 날 공연은 전경을 잡는다. 밭으로 향하는 순이삼촌과 해녀와의 대화는 첫 날 공연은 멀리, 두 번째 날은 근접해서 보여준다. 이 밖에도 같은 장면이지만 공연 일에 따라 송출되는 화면이 다른 경우가 제법 있었다. 달라진 출연진에 맞게 화면도 조정되는 것이라면 일부 이해가 되나, 출연진 변동도 없는데 하루만에 바뀌는 중계는 의아하다.

북촌리 학살 장면을 설명하는 자막은 첫 날 흐릿한 공연장 화면만 비춰서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다음 날은 자막을 마련해 시청 화면에 띄웠다. 공연 막바지 아빠와 송자 혼백의 대화, 김수열 시인의 시 구절, 4.3 정명에 대한 당부 역시 둘째 날에야 자막이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첫 날 공연 영상은 최대 화질이 720p인 반면, 둘째 날 공연은 1080p까지 가능하다. 

지난해는 둘째 날 공연 영상이 등록됐다 사라지는 경우가 발생했는데 이번에도 일부 아쉬운 점이 발견됐다. 현장 관객 이상으로 시청자들이 ‘순이삼촌’을 관람하고 있는 만큼 더욱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영화나 드라마와 다르게, 연극·뮤지컬·오페라 같은 무대 예술은 횟수가 거듭될수록 변화·발전하며 매력이 빛난다고 말한다. 오페라 ‘순이삼촌’ 역시 1년 만에 제법 여러 면에서 변화를 시도했다. 그만큼 작품을 대해 제작진들 애착을 가진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총연출을 포함해 다역을 맡은 강혜명은 ‘순이삼촌’을 미국 무대에 세우는 날까지 계속 달려가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초연 당시 배경 화면에 ‘4.3특별법 개정안’을 촉구한 바 있는데, 올해는 개정안 촉구를 넘어 ‘4.3정명’이란 화두를 띄웠다. 그러면서 ‘제주4.3이 여전히 사건으로 불리는 한 제주4.3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문구를 남겼다. 4.3의 정명을 찾는 그날까지, 오페라 ‘순이삼촌’ 역시 원작·음악이란 탄탄한 기초 위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지속하며 4.3을 널리 알리리라 믿는다. 

오페라 '순이삼촌'은 17~18일 제주 공연을 마치고 12월 30일 경기아트센터에서 한 번 더 공연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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