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뜨르, 이제 평화대공원으로] (하) ‘무상사용’ 국방부와 논의, 주민 협의 등 관건

제주 알뜨르비행장 부지에 평화대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이 나온 지도 16년이 지났다. 쉽게 땅을 내놓을 수 없다는 국방부와의 밀고 당기기 속에 최근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무상사용 허가’ 근거를 담은 관련 법 개정 추진에 이어, 국방부·제주도·대정주민 등이 참여하는 실무협의체도 곧 추진될 예정이다. [제주의소리]는 알뜨르비행장, 그리고 제주평화대공원의 지난 과정과 향후 과제를 두 차례로 나눠 다뤄본다. [편집자 주]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선포하고, 이를 뒷받침할 17가지 평화실천 사업이 정해졌다. 모슬포 전적지 공원 조성, 일명 ‘제주평화대공원’은 17대 사업 가운데 하나다.

평화대공원의 구체적인 밑그림이 그려진 건 2008년이다. 당시 마무리된 평화대공원 기본계획 용역에 따르면 서귀포시 대정읍 상·하모리 일대 185만㎡에 총 746억6800만원을 투입한다. 비용은 국비, 지방비를 285억원5000만원씩 부담하고 민자 유치도 177억원을 추진한다.

사업 내용은 부지 확보·사유지 매입을 시작으로 비행장 시설, 격납고, 대공포 진지, 지하 벙커, 방공호 같은 전적지를 복원·정비한다. 그리고 전시관, 전망대, 회의시설, 청소년 수련시설 등을 설치한다. 매입부터 정비·시설 조성까지 단계 별 추진으로 계획했다.

사진=최진성. ⓒ제주의소리
알뜨르비행장 전경. 사진=최진성. ⓒ제주의소리

제주평화대공원의 관건은 부지 확보다. 185만㎡ 가운데 91.3%에 해당하는 168만9000㎡가 국방부 소유 재산이다. 국방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사업이 불가능하다.

2011년 5월 ‘국유재산 중 일부를 제주자치도와 협의하여 무상 또는 대체재산 제공을 조건으로 제주자치도에 양여할 수 있다’는 규정을 새로 담은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를 근거로 제주도는 평화대공원 조성을 위한 알뜨르비행장 부지를 무상 양여해달라고 국방부에 요청한다.

그러나 국방부는 ‘대체 부지 제공’을 강조하며 무상 양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12년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에 따른 지역발전계획에 ‘평화대공원’ 조성이 포함되고, 2017년 문재인 정부 제주 공약에도 포함됐지만 국방부 입장은 크게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2019년에는 평화대공원이 관광미항 지역발전계획에서 유보 사업으로 지정돼 힘이 빠졌다.

2007년 5월 시민사회단체가 공개한 제주도와 국방부가 체결하려 했던 제주해군기지 관련 양해각서(안).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07년 5월 시민사회단체가 공개한 제주도와 국방부가 체결하려 했던 제주해군기지 관련 양해각서(안).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런 와중에 위성곤 국회의원은 지난 5월 21일 기존 무상 양여에 덧붙여 ‘무상사용’ 근거 조항을 신설하는 제주특별법·국유재산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무상사용 허가 기간을 50년 이내로 설정하고 갱신 조건도 추가했다. 여기에 평화대공원 조성을 위해 국방부, 제주도, 대정읍 주민대표 등이 참여하는 실무협의체가 10월 출범할 예정이어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중국 난징의 무수한 인명을 살상한 일본군 폭격기가 뜨고 내렸고, 4.3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됐으며, 억울하게 땅을 빼앗긴 주민들의 설움이 지금도 남아있는 땅. '아래쪽 뜰' 알뜨르의 지난 역사는 평화의 중요성을 왜 알려야 하는지 몸소 말해준다.

박찬식 소장(제주와미래연구원 제주역사연구소)은 8월 3일 제주도의회에서 열린 ‘알뜨르·송악산 일대 평화벨트 조성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평화대공원을 위한 네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과거 역사 회복과 보존의 원칙 ▲현재 주민들을 위한 실용의 원칙 ▲부지 활용에 대한 주민 자결의 원칙 ▲미래 후세대를 위한 평화 비전의 원칙이다.

여기서 첫 번째와 네 번째가 가치적인 부분에 집중한다면, 두 번째와 세 번째 원칙인 실용·주민 자결의 원칙은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다. 

사진=최진성. ⓒ제주의소리
알뜨르비행장 주차장에 설치됐던 최평곤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 '파랑새'. 2017년 제주국제비엔날레 당시 설치된 이후 알뜨르비행장을 중심으로 한 제주 다크투어의 상징물로 주목 받아 왔지만 아쉽게도 유지 관리에 따른 제반 문제로 지난 7월 철거됐다. 사진=최진성. ⓒ제주의소리

박 소장은 “과거 일제에 빼앗긴 토지에 대한 현실적 활용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알뜨르비행장 국유지에 대한 장기 무상사용 혹은 일부 무상양여를 위한 입법 노력과 대정부 절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주민 288명이 국방부와 토지 임대 계약을 맺고 알뜨르비행장 부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박 소장은 “알뜨르비행장은 역사적으로 지역 주민들이 되찾아야 할 땅이기 때문에 그 처리의 주권은 주민들이 직접 행사해야 한다”면서 “알뜨르비행장 국유지 처리에 대한 주민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초 평화대공원 계획 구상 단계에서는 회의시설, 청소년 수련시설 같은 인프라 비중이 컸다. 사업비 746억6800만원 가운데 20% 이상(177억원)을 민자 유치로 해결한다는 구상은 이를 뒷받침 한다. 

지난 2010년 알뜨르비행장 격납고에서 개인전을 가지며 일찌감치 해당 지역의 역사성에 주목한 박경훈 작가는 “평화대공원은 이미 완성이 됐다”고 강조한다.

그는 최근 [제주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전쟁과 폭력, 죽음으로 얼룩진 알뜨르 땅이 어느덧 사람을 먹이고 살리는 농경지로 바뀌었다. 두 개의 가치가 하나의 경관에서 나란히 공존하는 지금이 바로 제주평화대공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평화대공원 첫 구상 단계에서 포함된 건축이나 시설들 상당수는 오히려 고유한 경관과 의미를 해치는 과유불급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전적지와 농경지가 알맞게 공존할 수 있도록 최소만 정비하고, 이미 포장이 완료된 주차장 같은 부지에 지난 역사를 설명하는 센터 정도 마련한다면 인프라는 개인적으로 충분하다고 본다”며 “중요한 것은 향후 활용과 주민 의사다. 특히 현지 주민들과 함께 평화의 메시지를 만들어가는 합의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끝]

사진=최진성. ⓒ제주의소리
지금까지 전쟁과 폭력, 죽음으로 얼룩진 알뜨르 땅이 어느덧 사람을 먹이고 살리는 농경지로 바뀌었다. 두 개의 가치가 하나의 경관에서 나란히 공존하는 지금이 바로 제주평화대공원이다. 사진=최진성. ⓒ제주의소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