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6차산업人] (29) 아버지와 아들이 만들어가는 농촌 ‘낭만부자’ 김평진 대표

제주 농업농촌을 중심으로 한 1차산업 현장과 2·3차산업의 융합을 통한 제주6차산업은 지역경제의 새로운 대안이자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창의와 혁신으로 무장해 변화를 이뤄내고 있는 제주의 농촌융복합 기업가들은 척박한 환경의 지역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메이드인 제주(Made in Jeju)’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주역들입니다. 아직은 영세한 제주6차산업 생태계가 튼튼히 뿌리 내릴수 있도록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기획연재로 전합니다.   [편집자 글] 
ⓒ제주의소리
제주6차산업 인증 사업체 '낭만부자' 내부를 소개하고 있는 김평진 대표. 그는 농촌의 부족한 일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차산업과 관광을 결합한 공정여행 형태의 새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출시했다. 방문객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 숙식과 소정의 임금을 받고 농촌은 부족한 일손을 빌리는 방식이다. ⓒ제주의소리

“천혜의 자연을 가진 제주에 관광차 내려온 방문객은 값비싼 노동력을 제공한 뒤 숙소와 먹거리, 소정의 임금을 받아 지역사회를 위해 사용하고 일손이 늘 부족한 농촌은 이를 통해 노동력을 빌리는 방식의 6차산업으로 상생할 수 있습니다.”

제주 서귀포시 효돈동과 보목동 일대에서 아버지가 시작한 감귤 농사를 2대째 잇고 있는 낭만부자 김평진(54) 대표.

서울에서 학습용 가구를 만들며 감귤 수확 철마다 제주에 내려왔던 그는 2015년 일손이 없어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본격적으로 돕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고향인 서귀포로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와 보니 농촌의 인력난은 제주 감귤농가들이 겪는 공통적인 문제였다. 감귤 수확철이 되면 늘 일손을 빌리기 위해 돌아다녀야 했고 다양한 기관과 단체가 도와준다 해도 역부족인 상황이 잦았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없이 고민하던 김 대표는 ‘공정여행’을 떠올렸고 단순한 경험 대신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농부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제주 농부로 살아보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객들이 일손 취약 농가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체류하는 마을의 문화와 정취를 오롯이 느껴볼 수 있는 여행 상품을 구상한 것.

노동력을 제공하고 현지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다시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공정여행, 6차산업을 통해 건강한 제주의 농업농촌을 꿈꾸는 김 대표를 [제주의소리]가 만났다. 

ⓒ제주의소리
제주 농부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서 귤을 따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낭만부자.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방금 딴 귤을 자리에 앉아 맛보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낭만부자. ⓒ제주의소리

공정여행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린 김 대표는 2017년 ‘10박 11일 제주 농부로 살아보기’ 체험을 출시했다. 제주를 여행하고 싶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감귤 따기 일손을 빌리는 대신 숙소와 식사, 소정의 임금을 제공하는 것. 

김 대표는 농가는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좋고, 여행객은 제주의 문화를 오롯이 느낌과 동시에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으니 서로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행객이 대가로 받은 소정의 임금은 다시 마을에서 사용되니 지역사회 환원까지 이뤄질 수 있겠다 싶었다. 

프로그램은 수확이 가능한 날 참가자들이 귤을 따고, 비가 내리거나 일정상 수확이 불가능할 때는 자유여행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수확하는 날에도 노동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은 여행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었고 기존에 감귤을 수확해온 경험자의 2/3 수준의 노동 강도 덕분에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었다.

이 같은 아이디어를 통해 김 대표는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2018년 클낭 챌린지에서 농촌 고령화와 공정여행을 주제로 최종 선정되기도 했다. 2019년에는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됐으며, 2020년에는 제주 농부로 살아보기 체험 15기 수료를 달성하는 등 성과를 올려왔다.

이렇게 6차산업 방식의 농장 운영을 해온 김 대표는 꿈을 더 키우기 위해 올해 6차산업 인증에 도전했고, 지난 7월 6차산업 인증 사업자가 됐다. 

낭만부자가 성장해 오면서도 김 대표는 참가자들이 마을에서 임금을 소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관광 명소와 가게를 소개하는 등 지역사회를 발전시킬 방법을 구상했다. 마을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다시 마을에 환원해 발전을 돕는 공정여행을 위해서다. 

ⓒ제주의소리
참가자들이 구슬땀 흘려 바구니 가득 귤을 딴 모습. 사진=낭만부자.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참가자들은 귤밭에 있는 숙소에서 머물며 일을 하고 쉬는 날엔 주변 마을을 돌아보는 등 관광을 즐기게 된다. 맑은 날 빨랫줄에 옷을 널며 농부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헤아리기도 한다. 사진=낭만부자. ⓒ제주의소리

코로나19가 강타한 지난해부터는 인근 게스트하우스 업체와 협약을 맺기도 했다.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위기에 놓인 게스트하우스에 체험 참가자가 머물도록 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또 주변 농가에서 재배되는 천혜향, 한라봉, 레드향 등 만감류를 사들여 체험 참가자에게 판매하고 농장과 이어주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직거래에 약한 농가들의 판매 활로를 열어주고 나중에는 스스로 직거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김 대표는 “고령화되는 농가가 지속가능한 농업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농가와 소비자가 문화적 교류를 이어가면서 직거래까지 활성화하는 농촌을 꿈꾸고 있다”며 “농가는 소득을 창출하고, 소비자는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서로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동과 관광을 연계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온라인으로 감귤도 판매하던 그는 어느 날부터 소비자 불만이 늘어나는 것을 느꼈다. 택배로 보낸 감귤이 물러 터지는 비율이 늘었다는 불만이었다. 

문제는 10kg 감귤 상자에 가득 찬 감귤이 서로 부딪히며 생기는 상처 때문이었다. 문제해결 방안을 고민한 그는 십자(十) 모양의 종이 칸막이를 제작해 상자에 넣었고, 칸이 나눠진 귤들은 이전 보다 짓눌림 현상이 덜했다.

하지만 십자 칸막이를 넣으니 기존 상자에는 감귤 10kg 정량을 넣을 수 없다는 새로운 문제가 생겼고 결국 주문제작 방식의 새로운 상자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위기는 곧 기회가 됐다. 직거래하던 농가들이 같은 문제로 고민했던 것이었다. 

김 대표는 직접 제작한 상자와 칸막이를 저렴하게 농가에 보급하기 시작했고, 농가들은 칸막이를 활용해 귤을 망가지지 않게 소비자에게 전달함과 동시에 칸마다 다른 종류 상품을 넣어 판매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을 늘리기 시작했다. 

ⓒ제주의소리
10kg 감귤 상자에 맞게 제작된 칸막이. 김 대표는 칸막이를 설치한 이후 육지로 택배를 보내도 상처가 거의 안 남는 등 온전한 농부의 결실을 전달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농가에서는 사진처럼 칸막이 마다 다른 상품을 넣어 수익을 올리기도 한단다. 사진=낭만부자.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칸막이에 맞게 제작한 상자는 윗 부분 여유가 있어 충격 방지 포장재를 넣거나 눌림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사진=낭만부자.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김 대표가 제작한 상자(사진 오른쪽)와 기존 감귤 상자 실제 높이 차이. ⓒ제주의소리

그는 “상자를 만들어 농가에 공급하기 시작하니 칭찬 일색이었다. 농가들은 중량을 맞추기 위해 기존 상자에 억지로 귤을 넣다 보니 깨지는 등 피해가 많았는데 크기도 커지고 칸막이도 있으니 구슬땀 흘려 거둔 결실을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고 말했다.

농민의 노력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도록 도운 그는 상품을 판매할 때마다 상품 설명과 효돈-보목지역 지도가 담긴 엽서를 함께 보내고 있다. 귤에 대한 상식을 알려줌과 동시에 마을을 소개하는 것. 

지도에는 김 대표가 마을 길을 따라 걸어볼 수 있도록 만든 ‘낭만산책길’ 코스가 담기기도 했다. 더불어 주변 가게 정보를 소개해 지역민들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그는 매주 수요일마다 직원들과 함께 마을 가게에 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후기와 사진을 소개하는 등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6차산업에 대해 물으니 “누구나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라고 대답한 그는 “기존에는 상품을 유통시장에만 보냈다면 이제는 소비자와 교류하며 마음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시장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우리가 시장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직거래를 포함한 이 같은 6차산업을 달성하기 위해 아직까지도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며 “농업과 관광을 결합한 제주 농부로 살아보기 같은 농촌 문제 해결을 위한 산업이 확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서는 “완전한 6차산업을 위해 앞으로 제조업 분야도 키울 생각이다. 비상품 감귤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 더 좋지 않겠나”라고 되물으며 “우리 슬로건이 ‘당신에게 담아주고픈 제주’다. 많은 분이 제주에 와 숨고르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농업회사법인 낭만부자 주식회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리오름로 126-14

ⓒ제주의소리
서귀포시 보목동에 있는 아버지와 아들 '낭만부자' 전경. 낭만부자의 낭만은 나무를 뜻하는 제주어 '낭'과 한자 가득한 '만'자가 합쳐 만들어졌다. 글자 그대로 나무가 가득한 곳이라는 뜻과 감성적이고 이상적이라는 뜻의 단어 낭만을 포함한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아버지와 아들 ⓒ제주의소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