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중섭의 메모리’ 윤정인 작가, 정유라·김재은 배우

추석 연휴를 앞둔 16일부터 18일까지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는 창작 뮤지컬 ‘이중섭의 메모리’가 공연됐다. 때마침 이중섭 원화 기증전과 시기가 맞물렸는데, 이 공연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중섭의 메모리’ 극작·작곡을 맡은 윤정인 맥 시어터(Mac Theatre) 대표는 제주가 고향이다. 여기에 주연 마사코 역을 맡은 정유라 배우와 단역 김재은 배우 역시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국내 뮤지컬계에서 활동하는 제주 인재들이 전면에 나서서 작품을 만들었다.

지난 2019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을 통해 처음 소개된 ‘이중섭의 메모리’는 화가 이중섭이 일본 유학 당시 마사코를 만나는 시점부터, 서대문 적십자병원에서 홀로 눈감는 순간까지 주요 일생을 다룬다. 

왼쪽부터 김재은 배우, 윤정인 대표, 정유라 배우. ⓒ제주의소리
왼쪽부터 김재은 배우, 윤정인 대표, 정유라 배우. ⓒ제주의소리

출연진은 13명으로 적은 편에 속하고 무대 세트도 소박하지만, 31곡에 달하는 노래와 적재적소마다 다양하게 활용한 조명 덕분에 꽉 찬 무대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줄거리 마다 어울리는 특수효과로 움직이는 이중섭 원화를 화면에 띄우면서 감동을 배가시켰다. 

작품은 아내와 아이를 세상 무엇보다 사랑했지만 그들과 떨어져 혼자 지내야만 했던 외로운 예술가의 마음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것이 사랑”이라고 외치는 노래는 이중섭 개인과 그의 예술이 결국 ‘사랑’으로 귀결된다고 말해준다. 제목 부제처럼 ‘국경을 초월한 사랑’과 ‘인간 이중섭’의 이야기를 2시간 안에 잘 담아냈다.

윤정인 대표는 한경면 고산리 출신으로 오현고등학교(42회) 관악부에서 활동하며 음악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대구예술대학교 작곡과에 진학한 이후 지금까지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구는 서울 다음으로 전국에서 공연 예술이 활발한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윤정인 대표는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공연 제작에 뛰어들었는데 극작, 작·편곡, 음악감독, 연출 등을 아우른다. 참여한 주요 작품은 ▲뮤지컬 ‘로미오&줄리엣’(2006) ▲뮤지컬 ‘만화방 미숙이’(2008) ▲연극 ‘the bag’(2011) ▲뮤지컬 ‘사랑 꽃’(2014) ▲뮤지컬 ‘패션 꼬레아’(2017) ▲뮤지컬 ‘이중섭의 메모리’(2019) 등이 있다. 그가 운영하는 맥 시어터는 올해 대구학생문화센터 공연장 상주단체로 선정되며 역량을 인정받았다.

정유라 배우는 서귀포 동홍동 출신으로 삼성여자고등학교 연극동아리를 계기로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계명대학교 연극예술학과를 졸업한 2010년부터 매년 뮤지컬 무대에 서며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김재은 배우는 일찌감치 무대의 꿈을 키우며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뮤지컬에 뛰어들었다. 두 배우 모두 맥 시어터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17일 오후 2시 공연 일정을 마치고 [제주의소리]와 만난 세 사람은 고향에서 가지는 공연이라 더욱 설레고 떨린다고 입을 모았다. 작품을 쓴 윤정인 대표는 이 작품을 통해 “계속 그리워하는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세 사람은 고향 제주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유창한 제주어를 뽐낸 윤정인 대표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과 계속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한때 제주에서 극단 창단을 고민하고, 최근에는 ‘고양부’ 이야기를 작품으로 쓸 정도로 고향 사랑이 각별하다. 정유라, 김재은 배우는 “제주에서 뮤지컬, 연기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공연 관람 기회가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 기초 교육도 마련된다면 꿈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조언을 남겼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Q, 고향 제주에서 공연을 하는데 소감을 듣고 싶다.

윤정인 대표.

A. 윤정인 
- 맥 시어터는 지난 2015년 뮤지컬 ‘사랑 꽃’으로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처음 공연한 적이 있다. ‘이중섭의 메모리’로 이번에 초청받아 두 번째로 서귀포에 왔다. 19세까지 제주에서 살다가 육지에서 뮤지컬을 만들며 살고 있는데, 언제나 고향에 오면 기쁘고 반갑다. ‘이중섭의 메모리’ 공연에는 부모님도 공연장에 오셔서 더욱 뿌듯하다.

정유라
- 나도 2015년 ‘사랑 꽃’에 출연해서 공연 목적으로는 두 번째 제주 방문이다. 6년 전을 돌이켜보면 성인이 돼서 프로로 고향 무대에 선다는 경험이 영광스럽고 뿌듯했다. 다시 고향에서 공연할 기회가 생겨 기쁘다. 대구에서 ‘이중섭의 메모리’를 3주 가량 공연하고 제주로 왔는데, 더 긴장되고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아무래도 고향 무대이면서 지인들도 보러 와줘서 그런 듯싶다. 더 기운이 나기도 한다. 행복하게 일정을 마무리하고 싶다.

김재은 
- 나는 제주도 공연이 처음이다. 설레는 마음도 있지만 다른 공연과 비교하면 무척 긴장됐고 부담도 컸다. 가족들도 방문하고 친구, 지인도 많이 보러 와줘서 기분은 좋다.

Q. ‘이중섭의 메모리’는 어떤 작품인가. 작품을 쓰게 된 계기나 인물에 대해 설명해 달라.

A. 윤정인
- 이중섭은 피난 시절 제주에서 살았는데, 대구에도 이중섭의 흔적들이 제법 남아있다. 위대한 예술가를 찾아보자는 마음에 이중섭을 선택하게 됐다. 실제 이중섭에게 가장 행복하고 좋았던 시기가 서귀포라고 알고 있다. 작품에서도 이중섭에게 서귀포는 특별한 공간이다. 저승으로 향하는 강을 넘을 때, 가족과의 추억이 영원히 남아있을 서귀포를 그리워한다. ‘이중섭의 메모리’의 핵심은 사랑이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삽입곡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서로가 계속 그리워하는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는 이중섭이 패배자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예술가로서 아내와 가족을 각별하게 사랑하는 마음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전쟁통에서도 은박지를 구해서 그림을 그린 열정 역시 인상적이었다. 2019년 초연을 준비하면서 일본에 계신 마사코 여사를 직접 만나고, 공연 연습도 영상통화로 보여줬다. 그때 공연 포스터를 들고 일본으로 갔는데, 마사코 여사가 포스터를 쓰다듬는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A. 정유라
- 극 중에서 마사코는 소녀 같지만 강한 면이 있다.  일본 유학 중에 이중섭과 이별하는 장면에서는 전쟁으로 어쩔 수 없이 헤어지지만, 어떻게든 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조선으로 보내고 내가 따라가겠다는 강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런 부분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이중섭과 마사코는 서로 떨어져 지냈기에 늘 궁금하고 기다렸지만 한결 같은 사랑을 간직한다. 
 
Q. 두 배우에게 질문 드린다. 제주에서 어떻게 배우의 꿈을 키웠나?

정유라 배우.

A. 정유라
- 삼성여자고등학교를 다닐 때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그 당시 청소년 연극대회에 참여해 상도 받았으면서 무대의 매력을 처음 느꼈다. 그래서 대학 진학을 연기 쪽으로 정했다. 당시만 해도 제주에는 연기학원이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으며 혼자 연습했는데, 다행히 계명대학교 연극예술학과에 입학했다. 그때 학과 교수님이 바로 윤 대표님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연기학원 강사로 일했는데 대표님에게 출연 제의를 받아 2010년부터 뮤지컬 배우로 전념하고 있다. 맥 시어터 작품은 전부 출연했다.

A. 김재은 
- 어릴 때부터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 제주도 사투리 말하기 대회에 나가서 당시 유행하던 원더걸스의 ‘텔미’를 사투리로 바꿔 불러 상도 받았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무대 위를 누빌 때 희열을 느꼈다. 고등학생 때는 댄스팀 ‘에피소드’ 일원으로 활동했는데 야간자율학습보다 연습실에 더 오래 있었다.(웃음) 왕벚꽃축제라던지 다양한 행사에도 참여하다가 우연히 제주아트센터에서 공연한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고, 저 자리에 서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 그래서 제주시 창작뮤지컬 ‘만덕’ 초연 때 안무팀으로 참여했다. 아버지는 뮤지컬 배우를 반대하셨다. 댄스팀도 몰래 활동했었다. 결국 입시는 내가 모은 돈으로 몰래 준비해서 대학에 합격했다. 집을 나와 육지에서 혼자 생활하며 대학 생활을 마쳤고 2년 전부터 대구에 터전을 잡고 뮤지컬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Q. 본인 경험에 비춰 볼 때, 연극·뮤지컬을 꿈꾸는 고향 후배들을 위해 제주에 어떤 과정·시스템 등이 있으면 좋을지 말해 달라.

A. 정유라
- 우선 공연장에서 작품을 보고 느끼는 경험이 필요하다. 제주에서 뮤지컬 공연이 더 많이 열린다면 이 길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본다. 대구에서 산 지 15년이 됐다. 대구에는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뮤지컬을 경험하는 워크숍이 잘 갖춰져 있다. 제주에도 이런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무대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김재은 배우.

A. 김재은
- 나도 공연을 많이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특히 학생들을 위한 초청 공연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예매하고 공연장을 찾아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학교나 교육청 차원에서 행정적으로 마련한다면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A. 윤정인
- 한때 제주에서 극단을 만들어볼까 생각해봤다. 그런데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실천까지는 옮기지 못했다. 27년 간 터전을 잡고 길을 닦은 곳이 대구이기에 이곳에서 계속 활동하지만, 가능하면 제주에서 공연을 많이 하자는 마음은 늘 품고 있다. 여전히 제주 사투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타 지역에서 오래 살면 타지사람이 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제주에 살지 않으면 여러모로 어색해지고 외면하는 정서 대신, 고향에 와서 당당하게 활동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이중섭의 메모리’는 제주에서 지역 배우들을 선발해 상설 공연도 가능한 작품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좋지만 직접 무대에 서는 경험이 가장 큰 공부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