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장기미제, 지금은](中) 보육교사 피살 사건

제주 장기미제 사건 중 하나인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에 대한 재판이 10월부터 진행된다. [제주의소리]는 이 변호사 피살사건 재판을 계기로 제주의 대표적인 장기미제 사건인 2006년 제주시 소주방 여주인 피살사건, 2007년 서귀포시 40대 주부 피살사건, 2009년 어린이집 보육교사 피살사건의 현재 진행상황을 세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경찰의 장기미제 사건 재수사를 통해 체포된 보육교사 피살사건 피고인 박씨.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마치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장면을 떠올리게 했던 12년 전 제주 장기미제 ‘보육교사 피살사건’이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검찰이 상고한 뒤 1년 넘게 법리검토가 이뤄지면서 피해자 가족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보육교사 피살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강간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모(51)씨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늦어지고 있다. 박씨는 앞서 1심과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에 불복한 검찰은 지난해 7월23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남은 대법원 판단에선 검찰과 경찰이 제시한 ‘미세섬유’ 등의 간접 증거로 박씨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느냐가 최대 쟁점인 상황이다. 

숨진 보육교사 이모(당시 27)씨는 지난 2009년 1월31일 집을 나선 후 제주시청 인근에서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 뒤 실종됐다. 가족들은 이틀이 지난 2009년 2월2일 경찰에 실종 신고했다. 

나흘 뒤인 2월6일 오후 3시20분 제주시 아라동에서 이씨의 가방이 발견됐지만,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들에게 비보가 전해졌다. 실종 일주일만인 2월8일 오후 1시50분쯤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부근 배수로에서 숨진 이씨가 발견된 것. 

수사에 나선 경찰은 당시 기후 조건과 사체의 상태 등을 토대로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 2월1일 오전 4시부터 2월2일 사이에 이씨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1월31일 저녁 제주시청 일대에서 술자리를 가진 이씨의 마지막 행적은 2월1일 오전 3시5분쯤 제주시 용담동이다. 당시 이씨의 남자친구가 용담동에 살고 있었고, 이씨가 용담동에서 콜택시를 호출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경찰 수사결과 호출한 콜택시는 결국 오지 않았고, 다른 차량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본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이씨를 태웠을 택시 등 다른 차량을 확인하는데 집중했다. 

피해자 이씨 실종 당시 도내 한 일간지 보도.

이는 이씨가 콜택시를 호출하고 한시간 정도 지난 오전 4시4분 제주시 애월읍 광령초등학교 기지국에서 이씨의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 사실을 토대로 이씨가 차량으로 이동했다는 판단이다.

경찰은 유력 용의자로 택시기사 박씨를 지목해 수사했지만, DNA 등이 일치하지 않았다. 추가적인 과학·객관적 직접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경찰은 박씨를 풀어줬고, 박씨는 2010년 2월 제주를 떠났다.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경찰은 수사에 난항을 겪었고, 2012년 6월 경찰은 보육교사 수사본부를 해체했다. 

2016년 제주경찰청 장기미제사건팀은 재수사에 돌입해 당시 운행한 택시와 도로 CCTV 등을 토대로 용의자를 추렸다. 경찰은 범인이 노란캡이 달린 NF소나타 택시를 몬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도내에 같은 택시는 단 18대뿐이었다.    

경찰은 알리바이가 있는 용의자를 한명씩 제외했고, 단 1명의 용의자가 남았다. 사건 초기부터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으나 이미 풀려난 박씨였다.

실종 당시 이씨는 무스탕을 입고 있었다. 이씨와 박씨의 옷 5곳에서 서로의 섬유 조각이 발견됐다. 서로의 섬유는 교차 전이됐는데, 단순 접촉이 아니라 힘이 들어간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얘기다. 

또 사건 발생 초기 유력 용의자로 수사를 받던 박씨의 택시 뒷좌석과 트렁크에서도 이씨가 입고 있던 무스탕과 같은 섬유 조각이 발견됐다. 

경찰은 미세섬유 등 간접 증거를 토대로 2018년 5월16일 경북 영주에서 박씨를 체포했다. 제주를 떠나 전국 각지에서 생활하던 박씨는 그사이 휴대전화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2015년에는 주민등록까지 말소되는 등 은거 생활을 해왔다. 

이씨가 숨진 채 발견됐을 당시 제주 한 일간지 보도.

검찰과 경찰은 구속영장까지 신청했지만, 법원은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해 기각했다. 박씨는 범행을 전면 부인했고, 2018년 5월19일 다시 풀려났다. 

경찰은 검찰과 함께 계속 수사를 이어갔고, 검찰은 2019년 1월15일 박씨를 구속 기소했다. 

박씨는 2009년 2월1일 새벽 제주시 용담동에서 자신이 운행하는 택시에 탑승한 이씨를 살해하고 애월읍 고내리의 배수로에 사체를 유기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박씨는 일관되게 범행을 부인했고,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제시된 기성복의 ‘미세섬유’를 적합한 증거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추가 증거로 제시된 CCTV 영상 화질도 좋지 않았다. 

형사 처분을 통해 피고인을 교화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하는 재판부로서는 같은 재질로 수백벌 이상 제작되는 기성복 특성에 따라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상황에서 우연히 제3자의 미세섬유가 박씨와 섞였고, 섞인 미세섬유가 우연히 피해자 이씨의 것과 같을 수 있다는 가정에 대해 검.경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아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불복한 검찰은 지난해 7월23일 상고했고, 같은 해 9월 주심대법관과 재판부가 배당됐다. 

2020년 9월3일 시작된 법리검토가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제주 보육교사 피살사건의 실체는 여전히 미궁 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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