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 (31) 남원읍 위미리 ‘북타임’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인 고봉선 작가가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글] 

14호 태풍 찬투가 막 지나갔다. 제주시 애월읍 우리 집에서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로 직접 가는 건 처음이다. 어느 길로 가야 하나, 내비게이션에 맡기기로 했다. 제기랄, 하필이면 남편이 다니지 말라고 하는 5.16도로다. 별수 없다. 그냥 갔다. 그런데 아뿔싸! 안개가 자욱하다. 오금이 저리고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손에는 땀이 흥건하다. 그렇게 겨우겨우 찾아간 곳, 책방 북타임은 평화로웠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의 책방 북타임의 상징인 얼룩말이 책을 읽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으로 묶인 인생”

올해 쉰여덟 살의 임기수 책방지기, 그는 국내에서도 꽤 초창기에 생겨난 설문대어린이도서관 2대 관장이었다. 그곳에서 10여 년 정도 일하다가 본인의 몫을 할 만큼 했다고 여겨지자 물러났다. 그리고 2015년, 서귀포에서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다. 

본인이 책방을 하리라는 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을 막 물러날 때, 누군가 서귀포 시내에 매장공간이 있다면서 서점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동안 한 일이라고는 아이들과 놀면서 지내는 것뿐이었다. 더군다나 장사란 해본 적이 없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고민했다. 그 후 책과 함께하는 인생이 시작되었다. 

이때만 해도 제주도에 독립서점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시내에 있던 서점은 어딜 가나 참고서, 소설, 시집 등 양식이나 구조가 거의 같았다. 고객을 위한 배려라기보다는 매출 전략 구조였다. 직원들의 행동도 전형적이었다. 그는 도서관에 있을 때부터 이게 늘 불만이었다. 

설문대어린이도서관에 있을 때, 그에게 가장 강렬했던 건 충북 괴산의 숲속 작은 책방 책방지기 부부와 함께했던 유럽 여행이다. 유럽에서 세 사람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책 마을, 동화 마을, 도서관 등을 찾아 한 달 동안 돌아다녔다. 무척이나 고생했다. 유럽의 책 마을이라는 곳은 대부분 산지이자 오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책방 북타임의 안채다. 이곳엔 제주 코너와 인문사회 코너,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갤러리 전시공간이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 왕국, 헤이온와이”

영국의 리처드 부스(1938.9.12.~2019.8.20)는 책을 좋아하는 꼬마였다. 단골 책방 주인은 그가 크면 헌책방 주인이 될 거라고 하면서 어린 가슴에 불씨 하나를 선물했다. 헌책은 단지 오래된 책이 아니다. 지식 세계와 함께 무한한 상상을 불러온다. 무한한 상상의 세계, 신나는 일이다. 그는 헌책방 주인을 꿈꾸었다.

1961년, 대학을 갓 졸업한 리처드 부스는 고향인 헤이온와이에서 빈 소방서를 사들이고 헌책방을 열었다. 쇠락해가는 마을, 사람들은 그의 책방이 3개월 안에 망한다며 비아냥거렸다. 그래도 그는 휘둘리지 않았다. 그에겐 단순히 책 마을이 아닌, 책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인류를 발전시켜 온 책은 반드시 팔릴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애초에 그가 겨냥했던 건 마을 사람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이다. 그는 책을 수집하면서 영화관, 식료품점 등 마을 건물들을 차례로 사들였다. 그리고 마을의 상징이던 헤이성까지 사들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학자들의 입을 통해 헤이온와이가 회자되기 시작했다. 숙박 시설과 음식점이 생겨나고, 너도나도 헌책방을 개업했다. 1972년부터는 ‘책 마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후 리처드 부스는 늘어가는 책을 정리하기 위해 성벽에 책장을 만들고, 정원에 금고를 배치했다. 그렇게 성벽을 따라 만든 4킬로미터의 야외 책장은 헤이온와이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한때는 파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등 곳곳에서 잇달아 헤이온와이를 본뜬 책 마을이 생기며 위기를 모면했다. 1988년에는 ‘헤이 축제(Hay Festival)’를 시작하며 또 한 차례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 매년 5월 말~6월까지 열흘간 열리는 이 축제는 일 년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다. 헤이온와이는 이제 지구상에서 헌책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리처드 부스는 허물어져 가는 성의 이미지처럼 쇠락하는 마을에서 기어코 책 왕국을 건설했다. 

당시 임기수 씨도 그림책 혹은 제주 관련 책 등을 테마로 한 책 마을을 꿈꾸고 있었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도 상관없다. 꿈을 꾸는 덴 돈이 들지 않는다. 그 사실을 상기하면서 갔던 여행이었다. 책 마을,  책 나라……. 파종된 책 마을 씨앗이 발아를 꿈꾸는 북타임은 유럽과 제주를 아우르는 한 권의 그림책이었다. 

책방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다. 프랑스 몽톨리외 책마을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다. 거기에 다시 눈을 그리고 머리카락을 그려 마무리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아내한테 미안해”

2020년, 이곳은 서점을 시작한 후 세 번째 옮겨온 고향 집이다. 일이라는 게 그렇다. 도서관이나 서점을 꾸려가면서 임대료는 엄청난 부담이다. 그래서 옮기다 보면 느는 건 빚뿐이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가족들 특히 아내를 고생시켰다. 그게 임기수 씨는 가슴 아프다. 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으로 10년 이상 있으면서도 집에는 생활비 한 푼 주지 못했다. 가장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었다. 흔히들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을 관 소속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올시다.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은 순수하게 민간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후원인들과 함께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집에 생활비를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보람이다. 도서관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또라이, 그가 미친 사람이라고 일컫는 영국의 리처드 부스는 아닐지라도 희비가 교차한다. 책과 함께 지낸 세월이 보람이면서도 가족한테는 한없이 미안하다. 또 그만큼 고맙다. 

임기수 씨는 미끄럼틀 서가며 책 읽는 공간까지 확보하는 등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한 새로운 개념의 서점을 서귀포에 만들었다. 기존의 틀을 무너뜨리는 사람에겐 흔히들 미쳤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니체는 세상이 ‘광인’이라 불렀던 자들이 습속을 깨뜨리고 사람들을 구원한다고 했다. “당나귀는 당나귀답게”라는 우화 중 ‘미친 사람들, 탈출하다’ 편에서 저자인 아지즈 네신도 “기득권층이 볼 때 기존의 관습을 깨고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결국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발전하고 더 나온 곳이 되어가고 있다.”라고 메시지를 전한다. 그가 리처드 부스를 또라이라고 했던 것처럼 그 또한 또라이란 말을 듣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여기가 책 파는 곳이냐, 놀이터냐, 도서관이냐. 뭐 하는 곳이냐.” 등등 호기심 반, 궁금증 반인 얼굴로 관심을 보였다. 임기수 씨는 서귀포에 새로운 문화를 심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채 책방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있는 제주 코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선견지명은 없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제주에 동네책방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깜짝 놀랐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쨌든 그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책방이라는 것이 그렇다. 임대료를 감당하기 힘들다. 마침 고향 집이 비어 있었다. 삼대가 살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곳이다. 2~3년 동안 비어 있던 집, 서귀포 서점을 오가며 혼자 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쓰일 데도 없으면서 차마 버릴 수 없는 짐들, 크게는 장롱에서부터 작게는 자신을 업어 키우던 포대기까지 엄부랑(어마어마)했다. 만 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눈물이 흘렀다. 그렇다고 그대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달팽이든 거북이든 굼벵이든 되어야 한다. 그렇게 시작한 공사, 그는 책방을 자신만의 입체그림책으로 만들어냈다. 누가 봐도 책방은 건물이 아니라 입체그림책이다.

임기수 씨는 4남 2녀 중 막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서귀포 쪽에서 막내는 찬밥 신세다. 고향 집이라고 해도 건물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는 뜻이다. 가족이라도 집세는 내야 한다. 그걸 떠나서 비어 있던 집은 자칫 팔렸을 가능성도 있다. 허물 수도 있다. 책 팔자로 어찌어찌 구르고 돌며 여기까지 온 그는 고향 집을 지켜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자신은 그다지 열성적으로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 책 팔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40대와 함께 발 디딘 설문대어린이도서관 이후 내내 임기수 씨는 책과 묶여 있다. 도대체 어떤 계기가 그를 책 팔자로 묶어 놓았을까. 

안채 책방에 들어서면 왼쪽에 자리한 인문사회 코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그림책을 읽는 아빠”

두 아들이 대여섯 살쯤 되었을 때다. 그때 제주에선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자는 의미로 어린이도서연구회라는 자생단체가 만들어졌다. 그 단체에서 1기로 활동하던 아내는 임기수 씨에게 아이들이 잠자기 전 머리맡에서 꼭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그림책을 접했다. 피곤해 죽겠는데, 한마디로 미칠 지경이었다. 

“…하고 …했습니다. Zzzz...” 

탁! 아이들과 나란히 눕고, 그림책을 읽어주던 아빠의 얼굴을 그림책이 덮었다. 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냥 있지 않았다. 아빠의 두 팔을 세우며 기어이 그림책을 읽어주도록 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 시간을 즐겼고 집중했다. 나중에는 아빠가 더 재미있어졌다. 

‘그림책이 어떤 것일까?’ 불현듯 그림책이 궁금해진 임기수 씨는 그림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약 1년 동안 그림책 작가 과정을 밟았다. 그 후 허순영 관장이 기적의 도서관으로 가면서 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책과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떠난 고향, 다시 오게 되리라고는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책과 묶인 인생이 고향 집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잔잔한 행복이 피고 있었다. 

책방 안채엔 갤러리 공간이 있다. 여기에서는 지금 태흥리에 사는 세 아이 엄마의 그림을 모은 ‘강산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그림 앞에 놓인 가구를 보며 바이킹들이 탔던 배 롱십이 떠오른다. 임기수 씨 역시 책 마을을 개척하는 바이킹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잘 왔다, 친구야”

고향의 필수조건은 어릴 적 친구다. 임기수 씨 역시 고향에 40여 명 정도의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임기수 씨가 책방을 한답시고 일 년여 동안 일을 벌여놓자 “저거, 저거. 옛날부터 또라이 짓 하더니 지금도 또라이 짓 한다.”라고 놀려댔다. 시설재배를 하는 그들의 판매 단위는 책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책 한 권 팔아서 얼마나 벌까, 그들이 보기엔 안타까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그게 아니다. 고향에 온 친구를 반기는 역설적인 표현일 뿐이다. 또라이 짓 한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기에 고향의 정겨움은 더 짙어진다.

그런데 더 웃기는 건, 저녁만 되면 그 친구들이 책방으로 몰려온다. “웬일? 미쳤나?” 하는 표정의 부인과 아이들의 눈길을 피하며 슬금슬금 책방으로 몰려드는 친구들, 책을 사이에 두고 그들과 임기수 씨는 곡차 한 잔을 즐긴다. 그 분위기를 따라 고향의 이야기꽃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임기수 씨의 표정이 어찌나 맑던지, 이 역시 한 권의 그림책이자 동화였다.

고향에 와서 가장 좋은 건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이다. 책방도 그렇지만 고향에 왔다는 사실 또한 편안하다. 저녁이면 친구들과 한 잔 술을 나눌 수 있는 고향, 책이 아니었으면 가능했을까? 책방은 옛친구들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끈이다. 책방을 하는 보람이 하나 더 얹어진다. 

바깥채는 원래 쉐막(외양간의 제주어)이었다. 70년대 초, 아버님은 외양간을 개조해서 막내아들에게 독방을 만들어 주셨다. 그는 이곳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따라서 이곳은 그의 체온이자 숨결이 서린 곳이다. 그런데 책방을 하려니 어쩐지 외벽이 밋밋해 보였다. 그는 블록을 뜯어내고 돌을 쌓기로 했다. 어쩌나, 돌이 없다. ‘이보게 친구, 무얼 걱정하는가? 고향 친구들이 있잖은가.’ 친구들은 대가 없이 과수원에 있는 돌을 실어다 주었다. 그렇게 멋스러운 외벽을 입고 그림책 서가는 탄생했다. 

그림책 서가인 이곳은 임기수 씨가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내던 곳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서가를 이곳으로 정했다. 외벽은 고향 친구들이 과수원에서 가져다준 돌을 직접 쌓아 꾸몄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그림책이 가장 좋아”

임기수 씨는 그림책을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그림책 서가는 본인이 중고등학교 시절을 함께한 바깥채로 정했다. 책방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정면으로 보이는 집이다.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임기수 씨 추억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부러 홍보하지 않아도 책방을 다녀간 이들의 블로그나 인스타를 통해 북타임은 알려졌다. 그렇게 알려지면서 손님의 80%는 여행객이 되었다. 지금은 한가한 편이지만 휴가철엔 나름 바쁘다는 뜻이다. 특히 가족 단위로 많이 오는 편인데, 어린아이가 있으면 임기수 씨는 바깥채로 데리고 가서 그림책을 읽어준다. 도서관에 있을 때도 날마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게 임무였던 그다. 그렇게 그림책을 읽어준 뒤 일부러 다시 왔던 가족도 있다. 그림책을 읽어준 아저씨가 보고 싶다는 아이 때문이다. 아마도 임기수 씨에겐 그만의 그림책 읽는 기술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책방 북타임은 가족 단위로 오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책방지기가 전혀 눈치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손님이 가든지 오든지 책방지기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손님은 오직 편안함만 즐기면 된다.

책방은 안채와 바깥채, 그리고 감귤창고로 사용하던 건물까지 한 마당 안에 세 곳이다. 이처럼 외형은 제주 전통가옥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실상은 전혀 전형적이지 않다. 임기수 씨 창의성이 돋보이는 책방 북타임은 위미리를 책 마을로 만들고 말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다.

아이들이 책방에 오면 임기수 씨는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그림책을 읽어준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이제는 고향을 위할 때”

북타임은 일인 출판물이나 독립서점물 보다는 짬봉이다. 책도 많다. 이 모든 건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이다. 가끔은 이게 돈이 되느냐 마느냐 등 염려 아닌 염려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족과 운명으로 산다. 그러므로 이러니저러니 평가도 필요 없다. 열심히 하면 책방도 충분히 돈이 된다. 

여기 와서 가장 좋은 건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출근할 때마다 ‘오늘은 어떤 사람이 올까.’를 생각하며 설렌다. 다양한 층의 이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본인이 주도하고 있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된다. 그들보다 제주 관련 정보를 더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야기의 힘은 묘하다. 어느새 손님들과 부쩍 친해져 있다. 

위미에는 한달살기나 일년살기 손님이 꽤 많다. 그들에게 이곳은 아지트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리물회 얘기가 나오면 잠시 나갔다 오겠다는 메모를 남기고 나간다. 그렇게 한두 시간은 순간이다. 이곳에선 책만 팔지 않는다. 이야기를 나누고 또 책도 읽어주는 공간이다. 이 모든 건 임기수 씨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그는 한 포기 들꽃이었다. 

이런 그에게 많은 이가 한량이며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말한다. 그럴지언정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지금껏 방탕하면서 돌아다닌 게 아니다. 견문을 넓히면서 깨달음을 얻었고, 지금은 고향을 위해 할 일을 찾고 있다. 그래서 강연 요청도 보여주기 사업도 가능한 피하고 있다. 모든 건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그래야 내가 즐겁고 이웃도 즐겁다. 도서관에 근무할 땐 인터뷰도 많이 했고, 기사도 많이 나갔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지역에 맞는  일을 찾는 중이다. 

노인들은 무궁무진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그걸 채록하여 지역의 문화를 간직해야 한다. 이런 일은 지역 사람만이 가능하다. 물론 외지인이라고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역 사람들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노인들은 지역 사람들에겐 하나를 물으면 열을 대답해준다.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온 이웃이기에 형성할 수 있는 공감대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 기다려 주지 않는다. 엊그제 보이던 노인이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고향에 와서 보니 이쪽 분야에 관심도 있는 친구들도 꽤 있다. 이들과 힘을 모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바깥채 굴묵(아궁이) 겸 부엌이던 공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운드북, 보드북, 컬러링북 등이 빛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고망 낚시”

바다를 좋아하는 임기수 씨는 특히 바다의 지명 유래와 놀이에 관심이 많다. 설문대어린이도서관에 있을 때도 주말이면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로 산으로 다녔다. 그때 악당개미탐험대는 유명했다. 악당개미탐험대는 설문대어린이도서관에서 운영하던 프로그램 중 하나다.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고, 4학년 이상의 아이들을 7~10명씩 모집했다. 

악당개미탐험대는 아침 10시~오후 5시까지 임기수 씨가 어릴 때 했던 놀이를 똑같이 한다, 예를 들면 고망 낚시다. 북촌에서 서우봉 숲으로 들어가는 조그만 길엔 일본군 진지가 여럿 있다. 그곳에서 임기수 씨는 아이들에게 고망 낚시를 한다고 했다. 신난 아이들의 기분은 방방 떴다. 우선 대나무를 잘라오라고 한다. 기구를 사용하든 손으로 하든 그건 아이들 순발력에 달렸다. 대나무를 잘라서 오면 임기수 씨는 자신이 옛날 하던 그대로 낚싯대를 만들어 준다. 

이제 바다로 내려가야 하는데 바닥이 미끄럽다. 위험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아이들이 저들끼리 똘똘 뭉치는 것이다. 생존본능이다. 잔소리하면 징징거리는 아이들이 그냥 두면 저들끼리 뭉쳐서 이겨내려고 한다. 자연을 이기지 못해도 적응할 줄은 안다. 어느새 아이들에게 미끄러움 같은 위험은 사라지고 만다. 사고도 나지 않는다. 

고망 낚시란 우럭이나 보들래기(베도라치)를 낚는 것이다. 아이들이 낚시하는 동안 임기수 씨는 지들커(땔감)를 주워 온다. 비가 오면 일본군 진지였던 굴속에서 불 피우고 낚은 것을 구워 먹는다. 때론 산에 들어가서 지네도 잡는다. 요즘 아이들은 알 수조차도 없는 그야말로 오리지널 옛날 탐험이다. 성인이 된 아이들은 그때를 그리워하며 행복하다고 한다.  

아이들의 일기도 달라진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지내는 아이들, 그들에게 특별한 글감은 없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두세 장씩 일기를 쓴다. 정리하자면 임기수 씨는 아이들과 놀 때가 가장 행복하다. 도서관에서 일할 때도 그랬고, 앞으로도 지역의 특색문화를 살려내면서 아이들과 놀고 싶다는 뜻이다. 방치와 자유는 다르다. 자유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놀잇감을 개발하며 더 잘 논다. 이 모든 건 본인의 경험으로 알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고향 집에서 책방을 하게 되었다. 책방에 아이들이 오면 자연스럽게 “내가 저 방에서 책을 읽어줄까? 완전 재미없는 책을 읽어줄게.”라고 농담하면서 아이들의 경직을 풀어낸다. 그렇게 마주 앉아 책을 읽으면 아이들도 좋아하고 자신도 즐겁다. 비록 기진맥진할지라도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책이 있어서,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서 그는 행복하다. 

서귀포 북타임에 있던 곡선 책장이다. 높이가 달라서 활용할 수 없게 되자 고민 끝에 눕혔다. 그랬더니 전혀 다른 세상이 드러난다. 눕힌 책장은 바다를 표류하는 한 척의 배가 된다. 때론 피노키오를 삼킨 고래의 배 속이 되기도 하고, 모험을 나선 신드바드의 무인도가 되기도 한다. 길은 수평으로만 있는 게 아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북타임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되풀이되는 날들, 아이들이 지겨워하지 않는지요? 아이들을 데리고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북타임으로 가보세요. 안채의 책방에서는 제주 속의 제주를 느낄 수 있고, 인문 사회 코너에서는 삶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갤러리 전시공간에서 또 다른 독서를 하며 바깥채에서는 그림책이 주는 감동을 선물 받을 수 있습니다. 종합코너에서는 제페토 할아버지를 그리는 피노키오가 되어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때론 아라비안 나이트의 신드바드가 되어 모험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중앙로 160
블로그 : blog.naver.com/booktime15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explore/locations/1005946940/ 
영업시간 : 화요일~ 일요일 10:00~20:00(월요일 휴무)

# 고봉선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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