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59) 한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온 도민이 주목한다

학생시절 방학 중 단기 아르바이트를 지원하여 선정된 적이 있었다. 출판사에서 간단한 일을 돕는 사무보조 아르바이트였는데 급여 등 조건이 좋아서 이력서까지 제출하며 나름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사전에 일정과 시간을 조정하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근무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기다린 것은 업무지시가 아니었다. 

“아르바이트 없어도 될 것 같아요. 저희가 필요하지 않아서요. 그래도 이렇게 오셨는데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였다. 청천벽력과 같았다. 함께 일을 하기로 되어있던 처음 보는 알바생도 옆에 있었다. 곁눈질로 슬쩍 보니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우리가 뭘 어쨌다고....”우리는 용기를 내어 항의했지만 개미처럼 작은 목소리였다. 제대로 항의도 못하고 나오는 길에 설명하지 못할 자존감의 상처와 자괴감까지 들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알바 자리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 이러할진대 생계를 위하여 일하던 직장에서 쫓겨나는 노동자의 심경은 어떨까라는 고민을 처음으로 하게 된 경험이었다.

“해고를 당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면서 상담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내담자의 목소리가 떨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 금방 해고통보를 받고 전화를 한 경우인데 이럴 때는 우선 “너무 놀라셨겠어요.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이야기하셔도 됩니다”라면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차근차근 상담을 시작한다. 상담 전화를 끊고 나면 학생 때 경험한 그 기억이 떠오른다. 최근에 다시 그 기억이 소환되었다. 

제주 칼호텔의 매각발표가 있은 후 한 노동자는 호텔의 매각소식을 접한 직후,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손이 떨리고 가슴이 뛰었다고 말했다. 호텔매각은 호텔노동자에게 마치 해고통보와 같았으리라. 

제주 칼호텔 매각 소식을 접한 많은 도민들도 놀랐다. 반백년 가까이 제주의 랜드마크로서의 역사를 가진, 많은 이들의 추억 속에 함께 존재하는 칼호텔의 매각소식에 대하여 본인의 경험을 기억하며 아쉬움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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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내 29개 단체로 구성된 제주 칼호텔 매각 반대 및 규탄 참가단체가 9월 30일 오전 11시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진그룹의 일방적 매각 방침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기업이 경영상의 이유로 사업을 양도하거나 사업을 접는 경우는 많다. 시청에 있는 수많은 식당 등 업체의 간판은 매일같이 바뀐다. 단골 국수집 사장님이 문을 닫는다고 하면 아쉬운 마음에 영업을 계속하시면 안 되냐며 이야기할 순 있지만 결정은 사장님의 몫이다. 사장님 혼자 영업하는 사업체라면 그러하지만 규모가 큰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대기업의 경우 본인기업의 경영원칙에 따라 주주총회 등 의사결정 구조를 통해 결정을 하게 된다. 기업의 변동은 기업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신분상의 변화를 동반하기 때문에 결정과정에서 고용에 대한 계획도 함께 논의된다. 

이번 칼호텔의 사례와 같이 수백 명의 노동자가 대상인 경우에는 더욱 심사숙고하여 그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만약 ㈜한진칼의 결정으로 수백 명의 노동자의 고용이 불안정해진다면, 제주 고용시장과 시장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이 생산 및 영업활동을 하면서 환경경영, 윤리경영, 사회 공헌과 노동자를 비롯한 지역사회 등 사회 전체에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며, 그에 따라 의사 결정 및 활동을 하는 것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 이라 한다. 이미 한진그룹을 비롯하여 국내 대기업은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사회적 책임을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칼호텔 노동자들은 고용보장 없는 매각을 반대하고 있다. 제주 칼호텔의 매각 과정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곳이 부동산 투자자본사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경영상의 이유로 꼭 매각을 해야만 한다면 부동산 투자자본이 아닌 건전하게 호텔업을 유지할 수 있는 업체를 선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작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순환 휴직과 임금 지급 유예에 동의하며 고통 분담을 해온 노동자들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서라도 이들의 목소리를 의사 결정 구조에 반영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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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한진그룹에게 기회는 남아있다. ㈜한진칼이 어떠한 의사 결정 과정을 거칠지 도민 모두가 관심 갖고 주목해야 할 때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의 자원인 지하수를 통해, 제주의 관문인 하늘 길을 통해,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며 성장해온 한진그룹이다. 기업 성장의 역사에 걸 맞는 사회적 책임을 할 수 있길 바란다. 대표이사는 노동조합과의 면담 자리에서 고용 유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아직까지 한진그룹에게 기회는 남아있다. ㈜한진칼이 어떠한 의사 결정 과정을 거칠지 도민 모두가 관심 갖고 주목해야 할 때이다.

#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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