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16) 히토 슈타이얼, 면세 미술: 지구 내전 시대의 미술, 문혜진-김홍기 역, 워크룸프레스, 2021

 히토 슈타이얼, 면세 미술: 지구 내전 시대의 미술, 문혜진-김홍기 역, 워크룸프레스, 2021. 사진=알라딘.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1966~)은 영상작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매체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무빙이미지 아티스트일뿐만 아니라 저자와 교육자로서도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포스트 재현(Post-representation)'이나 '포스트 진실(Post-truth)', '포스트 인터넷(Post-internet)' 등과 같은 개념을 작업과 저술을 통해 표현해온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예술가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곤 한다. 그는 베를린비엔날레, 상하이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베니스비엔날레 상파울로비엔날레 등 유수의 국제미술행사에서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로서 한국에서도 광주비엔날레나 출품, 양현미술상 수상 등을 통하여 잘 알려진 예술가이다. 

‘사랑스러운 안드레아, 적색 경보, 보이지 않는 방법-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 MOV 파일, 미술관은 전쟁터인가?, 태양의 공장, 유동성 주식회사(Liquidity, Inc, 파워 플랜트, 소셜 심(Social Sim, 가상 레오나르도의 잠수함’. 히토의 비디오 에세이 제목들이다. ‘미술관의 전시후원자가 무기 제조업자임을 이야기하며 역사적으로 미술관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지배를 위한 싸움이 벌어지는 장소라는 점을 드러낸 <미술관은 전쟁터인가?>(2013)과 같은 작품에서 보듯이 예술과 사회, 정치의 관계를 파헤치는 비판적 다큐 성격의 작품들이 많다. ‘몰입형 비디오 설치물로 모션캡쳐 스튜디오에 설정된 가상의 비디오게임에 투입되는’ <태양의 공장>(2015)도 시각이미지와 노동조건에 관해 심란하게 리얼다큐를 예술로 재생산한다. 

히토의 지적 성취를 가늠해보기 위해 그의 책 제목을 보면, ‘문화와 범죄, 진실의 색: 미술분야의 타큐멘터리즘, 사물의 언어 : 다큐멘터리 실천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 감각의 제국, 가난한 이미지를 위한 변호, 박물관은 공장인가?, 자유 추락, 스크린의 추방자들, 빵이 없다면 예술을 먹어라!’ 등과 같이 논쟁적이며, 전지구적이면서 동시에 지역적이고, 예술의 범주를 넘어서는 세계적인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행동가로서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문화와 예술, 언어와 감각, 평화와 생태 등 다방면의 사회-정치적 의제들을 다루는 그의 비판정신은 미술관이나 비엔날레와 같은 예술적 소통의 제도들 만이 아니라 출판과 같은 문자기반의 소통채널을 통해서도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 책의 제목, <면세 미술: 지구 내전 시대의 미술>은 이 책 속에 들어있는 같은 제목의 에세이에서 따온 것이다. 이 에세이는 전지구적인 대립과 갈등의 시대에 미술 시장과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을 담은 글이다. 이처럼 미술 시장문제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죽이는 방법’과 같이 디자인을 다루거나, ‘대리 정치: 신호와 잡음’과 같이 기호학적 관점의 분석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지적 호기심이 얼마나 넓은지르 알 수 있다. 데이터, 미디어, 이미지, 디지털, 인터넷, 게임, 노동, 파시즘, 현실 등 무수한 의제들을 다루고 있는 그는 예술과 사회학, 정치학, 철학 등을 종횡무진하는 르네상스형 인간이다. 

‘면세 미술’(duty free art)이라는 용어는 세금을 물지 않는 미술이라는 뜻인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 면세 제도와 맞물려 돌아가는 미술시장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금이 면제되는 미술은 전지구적으로 편재한 자유항 수장고 속의 미술품들은 언제나 이동을 전제하고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항상 유동할 상황에 있다는 이유로 세금을 면하는 조세 피난처로 활용되고 있다. 항구적인 이동 상태의 세금 면제 구역인 자유항의 미술품들은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운 동시대 미술 기관의 모델이다. 한편, 내전 지대의 미술관은 난민대피소로 활용된다. 의무가 없는 미술, 사회적 가치 수행으로부터 자유로운 미술 등 자율적인 예술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그의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비판은 예술의 사회-정치적 위치를 들여다보는 자기모순의 비판서이다. 

그렇다고 해서 히토가 사회학자나 비평가처럼 글쓰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계몽적 서사나 유토피아 또는 디스토피아 관점의 목적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파고들어서 우리앞에 닥칠 파국의 면면을 먼저 들여다보는 사람으로서 자리하고 있다. “나는 이 모순을 풀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모순을 강화시키고 싶다.”는 히토 말 속에서 우리는 행동주의예술가의 날카로운 전술행동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히토의 예술과 저술은 새로운 윤리학의 제안에 가깝다. 디지털과 인터넷 문명에 의해 새롭게 재편하는 21세기 현실을 마주한 동시대인에게 새로운 문명에 걸맞은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히토의 실험과 도전을 통하여 갈파한다면, 그것이 히토의 전술행동에 가장 부합하는 히토 읽기일 것이다. 

“미술품과 그 이동을 상상해 보자. 미술품은 면세 구역망 내를 여행하며, 창고 공간들 자체 안에서도 여행한다. 아마도 그럴 때면 운송 상자는 열린 적이 없을 것이다. 한 보관 창고에서 다음 보관 창고로 노출되지 않고 이동할 것이다. 반군, 마약, 파생 금융 상품, 그리고 여타의 소위 투자 상품들처럼 미술품은 최소한의 추적이나 등록으로 상자 안에 머물면서 국토 밖을 여행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운송 상자는 심지어 비어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은 인터넷 시대의 미술관이지만, 이동이 은폐되고 데이터 공간이 클라우드화된 다크넷의 미술관이다.”

이처럼 히토는 예술 창작을 자신의 주관적 감성 내부의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예술계의 객관적 구조 속에서 비판적 성찰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여느 예술가들과 확연하게 차별화한다. 구조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할 줄 아는 예술가는 그 구조 안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아는 예술가이다. 그것이 예술 지형도를 그려보고 그 지형도를 타고 넘나드는 행동주의예술가의 전략이자 전술이며, 나아가 지형도 바깥으로 탐험할 수 있는 도전과 모험의 씨앗이다. 그런 점에서 히토는 21세기의 정치, 사회, 문화 등 제반 영역을 꿰뚫어 보는 예술적 비판과 실천의 최전선에 서 있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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