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학연구센터 10년 학술대회] 안병우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안병우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7일 제주학연구센터 출범 10년 학술대회에서 기조발표를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안병우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7일 제주학연구센터 출범 10년 학술대회에서 기조발표를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올해로 출범 10년을 맞는 제주학연구센터. 독자 기관인 (가칭)제주학진흥원 설립을 추진 중인 가운데, “제주학의 생명은 다른 지방·지역과 연대하면서 보편성을 확장하는지 여부에 달렸다”는 조언이다.

7일 제주칼호텔에서 열린 학술대회 ‘제주학연구센터 10주년, (가)제주학진흥원 설립과 제주학의 미래’에서 안병우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이 기조강연을 맡았다.

안 원장은 조동일 교수의 분석을 빌려, 공간을 기준으로 학문을 구분하는 경우를 ▲지방학 ▲한국학 ▲(동아시아)지역학 ▲지구학의 네 층위로 구분했다. 제주학은 이 가운데 지방학에 해당한다.

안 원장은 한국에서 지방학이 발전하기 어려웠던 이유를 두 가지로 꼽았다. 중앙집권적 정치·사회 체제,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형성된 민족·국가 중심의 가치관이다. 때문에 “한반도에서 의미 있는 실체는 민족과 국가 밖에 없게 됐고, 지방민과 지방문화의 다양성은 존중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학과 지방학은 일정한 공간과 그 공간에서 생활한 사람들이 남긴 것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가치를 부여했다.

안 원장은 국내 지방학의 시작을 16세기 각 지방에서 자발적으로 진행한 읍치 편찬으로 봤다. 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이 편찬한 ‘탐라지’는 “탐라지의 내용은 제주의 모든 것에 관한한 정보의 기준 역할을 했으며, 이후 출간되는 제주 읍지들의 전형이 됐다”고 평했다.

삼성설화, 탐라국, 고려 편입, 유배지, 태평양전쟁 당시 기지 건설, 4.3까지. 안 원장은 제주의 역사를 두고 “한국사의 일부이면서 때로 한국사의 큰 줄기와 갈등하고, 때로 그에 희생되는 관계에 있었다”면서 “이런 경험은 다른 지역과는 차원이 다른 다양한 기억을 제주에 남겼으며, 특히 현재의 특수성은 제주학의 존립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가치를 높여주는 자산”이라고 바라봤다.

안 원장은 제주에 대해 “오랫동안 기억과 역사 전쟁의 중심지였다”고 의미 있는 평가를 내렸다. 4.3특별법 제정, 중앙위원회 설치, 평화재단과 4.3평화공원 조성, 대통령의 공식 사과, 4.3희생자추념일 국가기념일 제정, 4.3연구소 설립·활동, 국제교류, 연구서 발간 등 4.3에 대한 치열한 역사 전쟁에 있어 “놀라울 정도의 정치적 학문적 성과를 거뒀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제주학이 한국을 넘어 다른 지역, 예컨대 오키나와나 대만처럼 유사한 경험을 가진 지역과 소통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줬다”고 제주학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안병우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7일 제주학연구센터 출범 10년 학술대회에서 기조발표를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안병우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7일 제주학연구센터 출범 10년 학술대회에서 기조발표를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안 원장은 “제주의 특수한 경험으로 볼 때, 제주학은 한국학의 내부에 위치하면서도 한국학과 평행으로 걸어갈 수 있고, 동아시아 속의 제주학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제주학의 생명은 제주의 고유성과 그 안에 있는 보편성을 얼마나 잘 발견해 재기억화하는가, 그리고 다른 지방·지역과 연대해 보편성을 확장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피력했다.

구체적인 방향으로는 ▲지방주의 함몰 위험성 경계 ▲사건을 기억의 틀 안에서 바라보기(재기억화) ▲냉전적 시각에서 벗어나기 ▲제주학의 개방화 등을 꼽았다.

안 원장은 백영서의 평가를 빌려 “4.3사건이나 몽골의 침입 같은 개별 사례들을 국가 폭력이나 침략 전쟁과 그에 대한 저항이라는 추상적 범주로 바꿔 읽는 ‘보편적 독해’가 요구된다”면서 “민족주의 없는 민족(사)처럼 지방주의 없는 지방학을 만드는 것이 널리 공감을 얻고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더불어 현실적인 과제로 기록과 기억의 수집과 관리, 연구자 양성, 재정 확보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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