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일률적 금액 배상 판결...유족들 “개별사례 인정 않은 잘못된 판결” 항소 고심

왼쪽부터 재판 요지 설명을 듣고 표정이 굳은 생존수형인 양일화·부원휴·현우룡·오영종 할아버지와 오희춘 할머니. ⓒ제주의소리
왼쪽부터 재판 요지 설명을 듣고 표정이 굳은 생존수형인 양일화·부원휴·현우룡·오영종 할아버지와 오희춘 할머니. ⓒ제주의소리

“힘들게 살았던 삶을 몰라주나, 묵살당한 기분이다, 법원에 왜 왔나 싶다”

아흔살이 넘는 고령의 몸을 이끌고 손해배상 선고를 직접 들은 제주4.3 생존수형인 양일화 할아버지의 굳은 표정으로 취재진에게 전한 말이다. 고령의 생존수형인들 사이에선 깊은 한숨과 침묵이 흘렀다. 

7일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류호중 부장판사)는 생존수형인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124억원 규모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의 주장 일부만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구금 등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가 손해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원고 개인별 주장 대부분은 받아들이지 않고 일률적인 금액을 배상토록 했다.

재판부는 4.3으로 인한 피해자가 많아 형평성을 고려해야 된다는 이유를 들어 피해 당사자에게는 1억원, 구금 당시 배우자에게는 5000만원, 구금 당시 출생 자녀에게는 10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책정했다. 

또 이미 불법 구금 등에 따른 형사보상금을 받은 원고와 관련, 지급 예정된 손해배상금보다 형사보상금을 적게 받은 사람에게 차액만 지급하도록 했다.  

재판부의 판단 취지와 각 원고별 배상금 등 세부적인 내용은 추후 판결문 송달이 이뤄져야 확인될 전망이다. 

이날 재판에는 4.3 생존수형인 양일화(1929년생)·부원휴(1929년생)·현우룡(1925년생)·오영종(1930년생) 할아버지와 오희춘(1933년생) 할머니가 직접 참석했다. 

재판이 끝난 뒤 원고의 법률대리인 임재성(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고령의 생존수형인과 유족에게 판결의 요지를 어렵게 설명해 나갔다. 

설명이 계속될수록 생존수형인과 유족 등 원고들의 표정은 굳어만 갔다.

일부 승소를 이끌어냈으나 재판부가 원고의 주장 상당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원고 입장에서는 사실상 패소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임재성 변호사(가장 왼쪽)가 판결 요지를 4.3 생존수형인과 유족 등에게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임재성 변호사(가장 왼쪽)가 판결 요지를 4.3 생존수형인과 유족 등에게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양일화 할아버지는 “4.3때 전국 여기저기로 끌려 다니며 살다가 제주로 돌아왔다. 제주에 와서도 힘든 삶을 살아왔는데, 법원이 다 묵살했다. 왜 이곳(법원)까지 왔나 싶다”고 고개를 숙였다. 

부원휴 할아버지는 “4.3때 형무소로 끌려가면서 다니던 학교 졸업도 하지 못해 학업도 중단됐는데,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오계춘(1925년생) 할머니를 대신해 법정을 찾은 아들 강은호(65)씨도 억울함을 토로했다. 

오계춘 할머니는 생후 10개월의 아들과 함께 형무소로 끌려가다 아들을 잃었다. 형무소로 끌려가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젖이 나오지 않았고, 덩달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생후 10개월 아들은 굶어 죽었다. 

이번 소송에서 오계춘 할머니는 불법 구금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를 잃은 부분 등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가족을 잃은 오계춘 할머니의 개별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은호씨는 “어머니는 어린 아이들만 보면 당시 굶어죽은 아들이 생각나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신다”고 전했다. 

법률대리인 임재성 변호사는 “재판부가 원고 각자의 다양한 고통을 인정하지 않았다. 4.3 때 1년간 옥살이한 사람과 20년 옥살이한 사람의 피해 정도가 똑같다고 판단한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소송은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이 달렸다. 서로 다른 각 개인의 손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판결”이라며 “이런 판결을 얻게 돼 4.3 피해자와 유족 들에게 부끄럽고 안타깝다”고 고개를 숙였다. 

원고측은 판결문을 확보하는 등 민사 재판부의 판단 이유를 검토, 항소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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