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 (32) 구좌읍 송당리 인문카페 제주살롱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인 고봉선 작가가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글] 

숲속 작은집 창가에 작은 아이가 섰는데
토끼 한 마리가 뛰어와 문 두드리며 하는 말
나 좀 살려주세요 나 좀 살려주세요
날 살려주지 않으면 포수가 총으로 나를 빵 쏜대요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 동요 “숲속 작은 집 창가에”

구좌읍 송당리 제주살롱 창가에 앉았다. 비자 향이 솔솔 코로 스며드는 것 같다. 어디선가 “숲속 작은집 창가에”란 동요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이번 책방 탐방은 친구 혜숙이와 경선이가 동행해 주었다. 만나기로 한 신제주 민오름 입구에서 좀나팔꽃과 금강아지풀을 먼저 만났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북카페 겸 책방을 하리라는 목표로”

2017년, 이재호 씨는 북카페 겸 책방을 하리라는 다짐으로 내려왔다. 전에 왔을 때나 북카페 겸 책방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내려왔을 때나 제주는 여전히 좋았다. 물이 좋아서, 바다든 호수든 있는 물이 곳이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찾은 곳이 제주다. 평소 책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소유한 책을 활용하고도 싶었다. 그러고 보니 제주에 온 지도 어느덧 사 년이 되었다. 사십 대 중반이라고 했지만, 이재호 씨는 외모가 앳된 청년이었다. 

제주로 오기 전 그는 광고 일을 하고 있었다.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으랴만, 업무량이 많은 데다가 일반직장과 달리 야근이 많았던 광고 일은 특히 더 지치고 힘들었다. 이에 따른 스트레스도 엄청났다. 사무직치고는 엄청나게 힘든 직업이 광고 일이었다. 

평소 제주에 자주 왔던 건 아니다. 업무에 시달리던 이재호 씨, 그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지친 마음과 몸, 광고 일은 잠시 접어두고 북카페 겸 책방카페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제주로 내려왔다. 4년 전이었다. 이때 제주에는 마을책방 유행이 시작된 때였다. 이미 자리 잡은 곳도 있었다. 책방 유행 사실을 알게 된 이재호 씨는 책방카페를 해야겠다는 결심에 쐐기박았다. 그리고 제주로 왔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제주살롱 전경.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이재호 씨에겐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 여러 권의 책이 있다. 그중에서 한 권을 꼽으라면 단연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다. 이재호 씨는 힘이 들 때마다 이 책을 읽으며 힘을 얻었고, 인생의 지침서로 삼았다.

폴 발레리, T. S. 엘리엇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시인이라고 평가받는 릴케는 1875년 체코(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 왕국) 프라하에서 미숙아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강요로 군사 학교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성인이 된 후 연인 루 살로메를 만나 문학의 눈을 뜨게 되었다. ‘말테의 수기’, ‘두이노의 비가’ 등의 작품을 남겼고, 백혈병으로 투병하다가 1926년 12월 29일 스위스의 발몽 요양소에서 사망했다.

릴케는 생전에 자기 본성의 풍부한 수확을 편지에 남겼다고 고백할 만큼 1만여 통이 넘는 편지글을 남겼다. 십 대에 시작되어 세상을 떠나기 2주 전까지 계속된 그의 편지는 현재까지 29권의 서간집으로 출간되었다. 그중에서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삶과 예술, 고독과 사랑에 관해 번민하던 시인 지망생 젊은 청년 카푸스와 릴케가 주고받은 편지글이다. 자기 고민을 토로한 카푸스의 편지에 답장으로 릴케가 조언하는 식인 10통의 서간을 묶어 놓은 이 책은 릴케의 세계관과 문학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시대를 뛰어넘어 수많은 젊은이에게 감동과 위안을 선사하고 있다. 

카푸스와 릴케가 주고받은 편지를 묶어 출판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단순한 시작(詩作)이나 시와 상관없이 어떻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보편적인 조언이 가득 담겨 있다. 책방지기 이재호 씨는 그 내용이 좋아서 몇 번씩 탐독했다. 자연스레 이재호 씨 인생에도 이 책이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는 손님들께 망설임 없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추천한다. 

“지금 여기, 책과 함께 머무는 시간” 책방 유리창에 새겨진 문구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지금 여기, 책과 함께 머무는 시간” 책방 유리창에 새겨진 문구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은 스트레스를 푸는 도구”

학교 다닐 때나 직장 다닐 때나 이재호 씨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도구는 책이었다. 기본적으로 소설을 읽었지만, 인문사회며 예술비평론도 즐겨 읽었다. 특히 인문학 쪽을 더 즐겼다. 어쩌면 빈부격차, 지구온난화, 환경 오염, 도시 문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는 뜻도 될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 내려오면서부터 사회 문제에 관한 관심도 많이 줄었다.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탄탄히 다졌을 때 힘은 더 커지는 법이다.

어쨌든 이재호 씨는 처음부터 책방카페를 염두에 두고 제주에 내려왔다. 시작부터 모든 걸 염두에 두고 어떻게 할지에 대하여 구상했다. 그렇게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공사는 일 년이나 걸렸다. 그런데 왜 하필 송당이었을까?

중산간에 있는 마을답게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 송당리는 이재호 씨가 가장 오고 싶었던 마을이다. 그렇다고 이곳만 알아본 건 아니다. 이재호 씨가 내려오던 시기엔 제주도 이전 붐이 한창이던 때다. 굳이 송당이 아니어도 좋았다. 이재호 씨도 이전 붐과 함께 제주라면 어디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제주 전역을 두루 알아보았다. 그렇게 돌고 돌아서 오게 된 곳이 결국은 송당리였다. 

이재호 씨는 책방 공사 시작에서부터 책 추천과 함께 모든 소식을 SNS로 알렸다. 이를 통해 찾아온 손님 중 첫 손님에 대한 기억은 각별할 것이다. 책방카페를 오픈하고 첫 손님이 왔을 때, 그토록 기다렸던 손님임에도 그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직장생활만 하던 그가 점주가 되어 손님을 맞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찻잔을 엎지르면 어떡하나, 탁자에 걸려 넘어지진 않을까, 모든 게 두렵고 떨렸다. 실수도 많이 했다.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면서 서빙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문을 열고 얼마 되지 않은 시간, 손님이 책을 살피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수익 내기 어려운 구조의 비즈니스 책방”

책방은 수익 내기가 조금 어려운 구조의 비즈니스다. 여러 책방을 탐방하면서 이미 알게 된 사실이다. 그래서 투잡을 하는 곳이 많았는데, 제주살롱 역시 예외가 아니다. 더군다나 인문학 분야는 그리 잘 팔리는 책이 아니다. 인문서점이란 타이틀만 내걸고 책방을 운영할 수 있는 컨셉이 아니란 뜻이다. 이재호 씨도 이러한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카페랑 같이 시작했고, 다락에서는 북스테이 “생각의 오름”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재호 씨 스스로 수익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인문학 분야의 책이 다른 책보다 안 팔리는 이유는 왜일까? 내용이 무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방지기가 읽었고 북카페에 즐비하게 꽂아놓은 책은 대부분 인문학 분야의 책이다. 제주도 특성상 제주살롱의 손님은 대부분 여행자다, 여행은 무거움을 내려놓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여행지에서 무거운 책을 읽는다? 여행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는 책방을 시작할 때부터 본인도 주변에서도 걱정하던 부분이었고, 그 우려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염려와 달리 많은 사람이 찾아주고 있다. 책방지기는 이 사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여행객은 대부분 20~30대다. 그런 만큼 인문학은 외면당할 가능성도 크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책방 제주살롱에선 아예 인문서점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인문예술 분야 책들을 중심으로 SNS에 소개하고 있다. 이를 보면서 인문학을 좋아하는 분들이 부러 찾아준다는 사실이다. 많이 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찾아온 손님들은 충분히 좋아하고 만족한다. 물론 인문학의 느낌을 이기지 못하고 그냥 가는 손님도 꽤 있다. 

북카페와 책방카페를 가르는 경계선 기둥에는 주제별로 몇 권의 책이 놓여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북카페와 책방카페를 가르는 경계선 기둥에는 주제별로 몇 권의 책이 놓여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제주살롱을 찾는 이유”

오픈해서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코로나 유행 전에는 제법 손님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절반 정도로 줄었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지켜야 할 규칙은 이제 당연함을 넘어서 법으로 규정되었다. 초기엔 뉴스에서 종종 접했던 것처럼 실랑이를 벌였을 손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제주살롱은 관광객이나 여행자의 동선에 있는 곳이 아니라 SNS를 보고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지나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서 들르는 게 아니라 인문예술을 좋아하는 분들이 일부러 찾아서 오는 곳이다. 다행이랄까, 그래서인지 손님들은 매너가 있다. 코로나 방문객의 규칙으로 인한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책방을 시작한 지 4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그동안 많은 손님이 다녀가셨다. 불편한 손님도 있고 고마운 손님도 있었다. 책방은 생존이 걸린 곳이다. 그러므로 생각 없이 시작한 게 아니다. 그런데 조금은 나이가 지긋하신, 특히 남성분들 중에는 ‘니가 뭘 안다고 이런 걸 하느냐.’며 종종 훈장질하던 분들도 계셨다. 인문학 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걸 보면서 뭘 알고 하느냐는 말이다. 초창기엔 이런 분들이 몇몇 있었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사라졌다. 

이와 달리 힘을 주는 손님이 더 많다. 단골손님도 꽤 생겼다. 여행객이 대부분인 책방에서 단골손님이라니 조금은 의외다. 손님 중에는 책방지기를 보고 오는 이가 있고, SNS에 소개된 책을 보고 오는 이들도 있다. 추천한 책이 좋았다면서 찾아오는 분들이다. 당연히 단골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이들은 책도 한 건이 아니라 가능한 여러 권을 구매해 주신다. 

책 몇 권을 구매하기 위해 굳이 여행까지 올 필요가 있을까. 조금은 의아스럽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손해다. 뭍에서 일부러 제주까지 와서 책을 구매하려면 아닌 게 아니라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약삭빠른 사람이라면 추천하는 책을 참고로만 할 수도 있다. 추천하는 책을 보고 인터넷서점에서 주문하면 훨씬 경제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추천 책을 구매하기 위해 구태여 이곳으로 오는 이유가 뭘까. 제주살롱은 책을 추천하고 팔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책방지기는 부인과 함께 책 선정에서부터 공간의 분위기며 컨셉 등을 구상하고 있다. 손님들은 책 구매뿐만 아니라 부부가 지향하는 이 공간의 느낌을 좋아한다. 

책방 제주살롱에서는 판화 엽서와 함께 포스터도 판매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제주살롱에서는 판화 엽서와 함께 포스터도 판매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호불호가 갈려도”

양면성은 삶의 전반에 존재하는 법, 이곳도 마찬가지다. 약간은 호불호가 갈린다. 인문예술을 지향하고 제주살롱을 좋아하는 손님들은 북토크 등 행사가 있을 때면 일부러 비행기를 타고 내려온다. 취향이 맞는 사람들은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리와 경제를 따지지 않고 내려오는 것이다.

예전엔 책방에서 추천하는 책을 사진으로 찍어서 따로 사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일들이 거의 사라졌다.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들은 제주살롱의 SNS를 보면서 책방지기가 공들여 추천하는 것을 인정해준다. 이들은 책방지기가 추천한 책을 온라인에서 사지 않고 기다린다. 그러다가 기회를 마련해서 방문한다. 택배비를 부담하더라도 이곳에서 주문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식으로 제주살롱을 사랑하는 손님들은 책방지기의 추천을 인정한다. 그건 아마도 자신들이 사랑하는 제주살롱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잠재적인 응원을 보내고 있음일 게다. 물욕보다는 정신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단순한 책 한 권이 아니라 그 뒤에 따르는 제주살롱 주변의 분위기까지 구매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북카페에 빼곡하게 꽂힌 책들은 대부분 인문학 분야로 책방지기가 읽은 책들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북카페에 빼곡하게 꽂힌 책들은 대부분 인문학 분야로 책방지기가 읽은 책들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예전보다 책 읽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는 건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종이책을 읽는 사람이 줄었다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 이유를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책방지기는 첫째로 스마트폰을 꼽는다. 삶의 습관에 있어서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이제 영상과 이미지 중심의 매체 습관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면서 텍스트는 차츰 밀려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젊은 층으로 갈수록 뚜렷하게 드러난다.

둘째는 사회적으로 봤을 때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다. 책을 읽는 건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삶은 편리해졌으나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사회, 그만큼 피곤하다. 책 읽기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제주살롱에 오는 손님들이 하는 말도 그렇다. 책은 읽고 싶은데 퇴근하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쓰러지기 바쁘다. 책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살롱을 찾는 분들이 있다. 제주살롱의 다락 북스테이가 한몫하는 것이다. 제주살롱의 북스테이 ‘생각의 오름’에서는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으면서 오로지 책만 읽을 수 있다. 제주살롱의 북스테이 ‘생각의 오름’은 손님들껜 에너지 충전을, 제주살롱의 입장에선 수익 구조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주일에서 이 주일씩 머물다 가는 손님도 있지만, 보통은 2박 손님이 많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뒹굴뒹굴 뒹굴면서 혹은 누워서, 때론 배를 깔고 읽으며 원초적인 자유를 누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북카페로 내려온다. 북카페엔 일반 테이블 외에도 독서 전용 테이블이 있다.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손님들은 이곳에서 독서로 스트레스를 풀고 에너지도 충전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을 구매한 손님이 북카페 독서 테이블에서 책을 읽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전자책과 종이책”

전자책이 나온 지는 꽤 오래되었다. 2007년 11월 19일, 세계 최대 온라인서점인 미국의 ‘아마존’이 전자책 단말기 ‘킨들’을 출시했다. 이때 출판계는 ‘이제 종이책은 죽었다.’라며 낙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전자책 시장이 꽤 자리를 굳혔지만, 종이책 시장도 보란 듯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역사상 신매체가 등장했다고 해서 구매체가 사라지진 않았다. 티브이가 나왔다고 하여 라디오가 사라지지 않았다. 컴퓨터가 나왔다고 해서 티브이가 사라지지도 않았다. 종이책과 전자책은 저마다의 장점으로 확고한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이 둘은 이제 경쟁자가 아니라 공존의 관계에 있다. 종이책은 종이책 나름대로 전자책은 전자책 나름대로 서로를 구축하면서 같이 갈 거라고 책방지기는 말한다. 

그러나 아직 책방지기는 전자책을 보지 않는다. 책장을 넘길 때 종이책에서 느끼는 손의 감촉은 특별하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자신만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맛도 깊고 짙다. 이처럼 종이책은 보고 만지는 물성적 특성과 함께 소유하여 책장에 꽂아놓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강점으로 젊은 세대라고 해도 종이책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종이책을 선호한다. 그런데 웹소설은 전자책으로 즐겨본다. 그러면서도 때에 따라서는 종이책으로 구매할 때도 있다. 문제는 책을 꽂아놓을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자책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무게에 대한 부담도 없다. 학교 다니던 시절을 생각해도 그렇다. 책을 잔뜩 담은 책가방은 어깨를 아프게 하고 또 병들게 했다. 그러나 전자책 시대가 돌입하면서 이와 같은 문제는 사라졌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만 있으면 시험 기간에도 어깨는 홀가분하다. 

그런데 기억력에서 볼 때 종이책은 전자책보다 확실히 효율성을 높인다고 한다. Science Daily 보도에 따르면 최근 도쿄대학교 신경학자 L. 사카이 쿠니요시 교수와 NTT 데이터 관리 컨설팅 연구소가 일본 대학생 및 졸업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 연구에서 종이를 사용한 효과가 높았다고 전해진다. 시각적 효과가 있는 디지털 도구가 효율성을 높인다는 예상을 뒤엎은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외울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디지털 기기 역시 밑줄 긋기 등을 이용하면 종이에 공부할 때의 이점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지만, 종이 공책을 활용할 때 효과는 더 높다는 것이다. 

그래도 전자책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구매하는 즉시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므로 공간 효율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전자책을 볼 것이다. 그러나 책방지기는 그런 효율성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종이책을 읽는 이유다.

제주살롱 내 북카페 공간이다. 창문을 마주하여 앉으면 “숲속 작은 집 창가에”란 동요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제주살롱 내 북카페 공간이다. 창문을 마주하여 앉으면 “숲속 작은 집 창가에”란 동요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위드 코로나가 되면”

코로나19 후 책방 손님은 절반으로 줄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제주에 오는 관광객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로 입도 여행객은 최고치를 갱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대신 제주도로 향하는 관광객이 늘었다는 뜻이다. 자꾸만 늘어나는 관광객, 제주에서 코로나19가 종식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져 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자꾸만 걱정되는데 책방지기의 생각은 달랐다. 물론 한때는 코로나 환자 발생률이 높았지만, 그래도 수도권에 비하면 제주도는 확진자 발생률이 낮다. 확진 비율을 떠나서 책방지기가 하려는 말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제주엔 관광객이 더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관광객은 많아졌는데 손님이 줄었다? 아이러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손님이 줄어든 것은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상가가 너무 많이 생겨서라고 책방지기는 말한다. 카페며 숙소, 책방 등 상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공급이 수요를 넘어섰다. 그 결과 손님들이 분산되었다. 책방지기 관점에서 볼 때 손님이 줄어든 이유는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분산효과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확진자 수 억제에 따른 코로나19에 지쳤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막대한 비용 및 의료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지원금이니 뭐니 하지만 이도 우리가 세금으로 채워야 할 부분이다. 코로나 완전 퇴치는 가능한 것일까? 

지난 7월, 영국은 위드 코로나 실험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도 11월부터 위드 코로나 전환을 예고했다. 그런데 위드 코로나가 되면 제주의 경제는 더 심각해질 거라고 책방지기는 염려한다. 입도객이 줄기 때문이다. 제주도가 좋아서 오는 사람도 많지만, 해외로 가지 못하기 때문에 제주로 오는 사람도 많다. 코로나19로 해외에 가지 못한 사람들, 이들에겐 일종의 욕망이 묶여 있다.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면 이들은 그 매듭을 잘라내고 제주도 대신 해외로 나갈 것이다. 제주도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책방지기의 생각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을 나서는 길, 헬리콥터인 양 떠 있는 구름과 하늘, 물씬 가을 냄새가 풍긴다.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이 수익 면에서 원활하지 않은 건 비단 제주살롱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주의 동네 책방 모두 그렇다. 그러나 이는 단시간에 해결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책방지기들은 각자의 활로를 개척하고 있다. 책 읽는 사람이 줄었다는 것도 나만의 착각일지 모른다. 동네책방을 찾아다니며 책 읽는 사람이 많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 작은 책방 이야기를 다룬 책도 꽤 많다. 한때 성행하다가 사라진 서점과 책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하여 출현한 게 동네책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 부족하지만 그런 대열에 끼어 독서 인구를 늘이는데 일조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문서점 제주살롱은”

천고마비의 계절, 영혼을 살찌우고 나를 성장시키는 독서의 시간을 원하지 않으십니까? 쉼 혹은 생각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비자 향이 흐르는 한적한 오솔길을 따라 인문서점 제주살롱을 찾아가 보세요. 다락의 북스테이에서 원초적 자유를 누리거나 혹은 북카페에서 한 잔의 차와 함께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인문예술 도서를 읽으며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 제주시 구좌읍 송당2길 7-1
영업시간 : 금~화 11:00~18:00(수, 목 휴무일)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jejusalon

# 고봉선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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