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히 자전거 좀 탑시다!

나는 자전거를 굉장히 늦게 배운 편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의 가을이 다 되어서야 배웠으니까. 서귀포 푸른 학생의 집 잔디밭에서 그 질기다는 청바지를 찢어가며 이리 넘어지고, 저리 자빠지고. 그렇게 다리에 생채기를 늘려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날 놀리려 내가 쓰러진 주위를 자전거로 빙글빙글 도시던 아버지를 보며, 언젠가는 나도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고 말겠다며 다짐했었던 기억도. 그 다짐이, 지금에 와서는 반쯤 이뤄진 것 같다. 왜 반쯤이냐 묻는다면 '어디서 달릴까요?' 하고 되물을 밖에.
 

   
 
 
우연히 자전거 이용 공익광고를 보게 되었다. 산소의 분자식인 O₂를 자전거 바퀴로 그려놓은 게 참 재미난 느낌인데다, 나름대로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 중 한명이기에 환경에도, 건강에도 좋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게 은근히 자랑스럽기도 한 기분이었다. 공익광고로까지 제작될 만큼 '자전거를 타는 습관‘이 좋다는 의미니까.
 
그런데 그 광고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그 날 오후, 자전거를 타고 독서실로 향하던 길에 나는 '이제 자전거도 타고 다니지 말아야 하나….' 싶은 고민에 빠지게 되어버렸다.
 
내가 주로 다니는 길은 자전거 전용로에서 자전거 보행자 겸용도로로 이어지다 나중엔 자전거 도로가 없어서 차도나 인도를 이용해야 하는 코스인데, 나중에 차도를 이용하는 것이야 별 수 없다고 쳐도, 자전거 도로를 달리면서도 이렇게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가 싶었던 것이다.
 
자전거도로를 고속으로 달리는 배달 오토바이들과, 자전거도로에 떡 하니 주차된 자동차. 가뜩이나 좁고, 울퉁불퉁해서 노면사정 안 좋은 도로인데 옆에서 오토바이가 쌩쌩 지나가고, 길 전체를 자동차로 막아 놓아버리면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가 없지 않겠느냔 말이다.
 
물론 자전거를 무지, 무지, 무지하게 잘 타는 사람들은, 재주껏 잘도 피해 다닌다지만, 그렇게 잘 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장 나만 해도 무딘 운동신경 탓인지, 바로 옆에서 버스가 지나가거나, 오토바이 한대만 지나가도 간담이 서늘해지곤 한다. 자전거 마니아나 프로 선수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자전거도로가 있는 것이라고.
 
   
 
 
자전거 전용 도로는 과연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인가? 자동차를 보유한 가구가 점점 늘어감에 따라 주차공간이 부족해진 운전자를 위해서? 신속정확배달을 모토로 하는 음식점 배달원을 위해서? 그렇다면 왜 자전거 도로라는 이름을 붙였는가.
 
자전거를 타고 싶다. 자전거를 타는 건 취미활동으로도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고, 따로 시간 낼 필요 없이도 적지 않은 운동량을 채워주고, 왕복 버스비 1600원을 아낄 수 있는데다, 크게 봐서는 지구 환경에 도움을 주기까지 한다고 한다. 자전거를 싫어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자전거를 탈 수가 없다.
 
이리저리 깨지고 뒤집힌 자전거 도로, 자동차가 주차된 자전거도로, 오토바이가 달리는 자전거도로. 처참한 상태의 자전거 도로를 달리느니 차라리 버스와 나란히 달리는 것을 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정말, 무엇을 위한 자전거 도로인가?
 
자전거 도로에서, 자전거가 달릴 수 없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화가 난다. 속이 상하고 억울하다. 공익광고를 통해 자전거를 타라 말할 거라면, 정말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환경 또한 조성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말로만 자전거를 타라, 타라 수십 번 말한다 해도, 기본적인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는데 자전거를 달릴 수야 없으니 말이다.
 
오늘 아침에 집을 나서며, 자전거를 탈 것인가 버스를 탈 것인가, 부모님을 졸라 자가용을 탈 것인가 한참을 고민했다. 마음 같아서는 자전거를 타고 싶지만, 그래도 아직 파릇파릇한 열여덟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수능이 150일도 남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고생하고서 승천해버리면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그렇다고 자가용을 타기는 부모님의 눈치도 보이고, 기름 값도 무지하게 아까운 일. 땅 파도 기름 한 방울 안 나오는 나라에서 펑펑 기름을 써댈 수는 없으니….
 
별 수 없이 버스에 올라 버스카드를 찍으면서, 피 같은 돈 800원이 지출되었다는 빨간 글씨에 또 800원 만큼의 한숨을 내쉬었다. 빠듯하고 빤한 용돈이라 문제집 사고 독서실 끊고, 휴대폰 요금을 내면 얼마 남지도 않는데, 그나마의 문화생활이라도 하려면 한 번 내는 버스비 800원이 얼마나 아쉬운지 모른다.

그래도 목숨보다 중한 게 있을까.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중 뒤에서 경적소리도 없이 쌩 하고 나를 추월한 오토바이를 생각하면 800원의 지출도 감내할 밖에.
 

   
 
 
자전거를 타고 싶다. 낑낑대고 페달을 밟노라면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가뜩이나 운동량이 적어 나날이 굵어져만 가는 허벅지도 어떻게든 걱정을 덜 수 있다. 게다가 공익광고를 보면 나라에서도 자전거 타기를 장려하고 있다. 굳이 광고가 아니라 해도, 장차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의 삶을 생각하면 환경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자전거를 타고 싶다. 그러나 건강과 환경을 위해 목숨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건강과 환경과 목숨을 모두 지킬 수 있도록, 생명의 위협 없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꼭 와 줘야 할 텐데…. 지금 상황을 보면 가능성도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게 해 달라. 자전거를 타고 싶다. 자전거를 타라 말하고 있는 그대, 제발 좀 자전거를 타게 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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