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탐나는가치 맵핑(1)] 마을공동목장⑨ / 김창혁 신례리공동목장 조합장

무심코 지나쳤던 제주의 숨은 가치를 찾아내고 지속 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해 다양한 지역 문제나 의제를 주민 스스로 발굴해 해결해가는 연대의 걸음이 시작됐다. 지역 주민이 발굴한 의제를 시민사회와 전문가집단이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한 뒤 문제해결까지 이뤄내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젝트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와 함께하는 ‘공동기획 - 탐나는가치 맵핑’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참여라는 측면에서 매우 유의미한 연대가 될 것이다. 이번 도민참여 솔루션이 잊히고 사라지는 제주의 가치를 발굴·공유하고 제주다움을 지켜내는 길이 될 수 있도록 도민의 참여와 관심을 당부드린다.  [편집자 주]

“50여만 평에 달하는 목장용지 가운데 실제로 활용되는 곳은 절반인 25만여 평에 불과합니다. 뭔가 활용하고 싶어도 환경보전 때문에 발목이 잡혀 아무것도 못 하죠. 결국, 세금만 내야 하는 처지인데 이런 상황에서 누군들 땅을 안 팔고 싶겠습니까.”

숱한 개발 유혹에도 마을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목장용지를 넘길 수 없다며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공동목장’.

목장 관리 한계에 부딪혀 조합원 78%가 땅을 매각하자며 총회에서 의결했으나 여전히 목장용지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목장용지를 활용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던 끝에 스스로 살아남겠다는 포부를 천명하기도 했다.

조합은 처음엔 목장을 매각하겠다고 결심했지만, 목장 아래로 섶섬과 문섬 등 아름다운 서귀포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고 뒤돌면 웅장한 한라산이 위용을 뽐내고 있는 아름다운 경관을 지키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마을 공동체의 자산을 지키고 수익사업을 통해 목장의 가치를 지켜나가겠다는 신례리공동목장을 지난 9일 [공동기획 –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젝트 팀이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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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혁 신례리공동목장조합장은 자연 보호를 명분으로 묶인 사유지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유지임에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도록 묶어 뒀으니 세금이라도 감면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결국 관리의 한계를 느껴 목장용지 전체를 매각하게 된다는 것. 자연을 보호하는 수준에서 조합이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주의소리

참가자들은 공동목장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가치를 모색한 뒤 해결책을 찾기 위한 저마다의 의견을 내놨고 김창혁 조합장은 현실적인 어려움과 앞으로의 발전방안을 소개했다.

2018년 제주연구원 조사 결과, 도내 마을공동목장은 총 51곳으로 조사된 바 있다. 2006년 조사 당시 70개였던 마을공동목장이 10여 년 사이 약 20곳 가까이가 사라진 셈이다. 

이 같은 마을공동목장의 소멸에 대해 김창혁 조합장은 ‘당근 없이 채찍만 휘두르는 행정의 일방적인 제약’ 때문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그는 “어떻게든 목장을 보전하기 위해 조합이 움직이려 해도 각종 제약에 묶여 아무것도 못 하는 땅인데 가지고 있으면 뭐 하겠나”라며 “그러다 보니 우리 조합도 78%의 찬성률을 기록하며 매각을 결의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뭔가 할 수 없는 땅이라면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목장 전체 용지를 팔아볼까 하고 시작하게 된 것이 매각의 출발”이라며 “축산 방식의 변화로 마소도 거의 키우지 않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은 차라리 땅을 팔아 돈을 쓰자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설명했다.

앞선 2005년에는 방치된 목장용지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당시 제주하이테크산업진흥원(현, 제주테크노파크)에 목장용지 약 6.6헥타르(ha)를 제주생물종다양성연구소 부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부채납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연구소 운영위원 1인 추천권, 비전문직 직원 채용 시 신례리 출신자 우선 채용 등 혜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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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례리공동목장을 둘러보고 있는 탐나는가치 맵핑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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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현장에서는 참가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제주의소리

문제 해결을 위해 어느 정도의 규제 완화 조치가 이뤄져야 하며 환경 직불금 등 자연을 지킬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 사유재산인 만큼 보조금을 줘서라도 환경을 보전할 수 있는 차원의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조합장은 “우리는 그래도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개발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전제했기 때문에 실제 매각으로 이뤄지진 않았다”며 “설촌 천년의 역사를 가진 신례리를 망칠 수는 없다는 의견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덕분에 목장용지는 매각되지 않았고 조합은 자구책을 찾기 시작했다. 자연을 보호하면서 수익을 창출할 방안을 찾기 위해 제주시 아라동 아침미소목장이나 한라산 마방목지를 견학하고 컨설팅을 받는 등 노력 중이다”라고 밝혔다.

또 “처음엔 매각 의견이 78%에 달할 만큼 의지가 강했지만, 지금은 과반도 안 될 정도로 보전하겠다는 의견이 강해졌다”며 “그러다 보니 매각하지 않더라도 조합 자체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했다.

조합이 운영하는 자체 수익사업을 통해 환경을 지킬 수 있는 재원을 얻고 조합원들에게 배당금을 어느 정도 지급해 보호 의지를 북돋을 수 있는 차원의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신례리 목장에서는 남쪽으로 멀리 서귀포 일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탐나는가치 맵핑 프로젝트 팀이 방문할 때는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맑은날이면 목장에서는 아래로 펼쳐진 서귀포 바다와 뒤로 위용을 뽐내는 한라산이 어우러진 절경을 마주할 수 있다. ⓒ제주의소리
신례리 목장에서는 남쪽으로 멀리 서귀포 일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탐나는가치 맵핑 프로젝트 팀이 방문할 때는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맑은날이면 목장에서는 아래로 펼쳐진 서귀포 바다와 뒤로 위용을 뽐내는 한라산이 어우러진 절경을 마주할 수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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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으로 향하는 탐나는가치 맵핑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김 조합장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고귀한 선물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보전해서 후손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책임감만으로 지켜내기엔 어려움이 따른다”며 “어느 정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해 줘야지 그렇지않으면 목장은 살아남을 길이 없다”고 피력했다. 

이어 “우리 목장은 한라산 높이에 맞춰 1950그루의 왕벚나무를 심고 사업을 통해 야자수 매트를 깔아 이승악오름으로 들어가는 길을 조성하는 등 노력해왔다”며 “오름과 어울리는 목장의 경관을 보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주차장이 서성로 건너에 있는 데다 오름 진입로에 무분별하게 세우는 차량 때문에 사고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목장용지를 주차장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용도변경을 허가하고 서성로에 회전교차로를 세우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주말 오후가 되면 주차장에 차를 못 세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는다. 주차장을 형성하고 싶어도 지목상 지을 수 없게 됐고 그러다 보니 무분별하게 주차하는 차들로 자연이 훼손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방치된 목장을 가꾸고 관리해 자연 그대로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면 수익도 창출하고 자연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외부 자본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10개년 계획을 세우는 등 우리 힘으로 조금씩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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