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플러스 제주 2021] 여섯 번째 대멸종 극복할 스마트시티, 재생에너지 등 제안

인간이 만드는 오염은 자연 생태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돼 버렸다. 바다는 폐그물과 플라스틱, 방사능 오염수로 채워지고, 동·식물이 살아갈 보금자리에는 수백 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을 쓰레기가 쌓이고 있다. 여기에 끊임없이 내뿜는 탄소와 유해물질까지.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을 인간 손으로 재촉한다는 경고는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녹색회복의 대전환(GREEN RECOVERY)’의 방향을 찾는 자리 '테크플러스 제주 2021'이 제주에서 열렸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인류세, 스마트시티 등을 통해 우리 앞에 놓인 기후위기를 극복할 것을 한목소리로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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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플러스(tech+) 제주 2021’이 15일 오후 2시 비대면 온라인 방식으로 열렸다.  ⓒ제주의소리

제주도가 주최하고 제주테크노파크와 제주의소리가 공동 주관하는 ‘테크플러스(tech+) 제주 2021’이 15일 오후 2시 비대면 온라인 방식으로 열렸다. 

테크플러스는 기술(Technology), 경제(Economy), 문화(Culture), 인간(Human) 4가지 키워드(T·E·C·H)의 융합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테크플러스 제주는 2013년부터 시작돼 그동안 카본프리부터 빅데이터(2014), 휴머니즘(2015), 모빌리티(2016), 4차 산업혁명(2017), 디지털대륙(2018), 센서네트워크와 5G(2019), 포스트코로나(2020) 등의 화두를 도민들에게 제시해왔다.

올해는 ‘제주의 대전환 ; GREEN RECOVERY’이란 주제를 선택했다. 5명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나서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스마트기술 등을 바탕으로 기후 위기라는 인류 생존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공유했다.

# 대멸종 불러온 기후 변화, 다음 멸종은 인간 손으로?

첫 번째 강사로 나선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은 지금까지 지구에서 벌어진 다섯 번의 대멸종의 공통점은 바로 ‘기후 변화’라고 꼽았다. 기후가 바뀌면 살아가는 생명도 달라지기에, 진화와 멸종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이 관장은 첫 번째 대멸종이었던 5억4100만년 전 오르도비스기부터 다섯 번째 대멸종인 ‘공룡 시대의 종말’까지 설명하며 “지금 우리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경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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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 관장. ⓒ제주의소리

그는 “지난 다섯 번의 대멸종은 기후위기 때문이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당시는 자연적인 원인이었다면 현재의 기후위기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20년 전부터 강의를 할 때 (여섯 번째) 멸종이 오는 시기가 짧으면 500년, 길면 1만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500년은 겁주려고 너무 짧게 이야기하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500년도 너무 길게 얘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피력했다.

이 관장은 “아직 희망은 있다. 인류만 변하면 된다. 이미 더 좋은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로, 인류는 에너지전환을 통한 정책으로 해결 방안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인류의 개선 의지를 강조했다.

# 일상에서 탄소 줄이는 ‘스마트시티’가 답

두 번째 강사, 이재용 국토연구원 스마트공간센터장은 ‘스마트시티 현재와 향후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 스마트시티. 얼핏 떠올리면 첨단 과학 기술이 가득한 모습이 스마트시티라고 상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센터장은 첨단 과학이나 화려한 기술은 진정한 스마트시티와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아랍에미리트의 친환경 도시 마스다르(Masdar)를 예로 들었다. 그는 “마스다르는 탄소를 전혀 생산하지 않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신재생에너지만 활용하는 등 도시 구조 자체를 이에 맞게 설계했다. 하지만 기술력과 경제성이 부족해 많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면서 목표와 현실이 상충하는 현실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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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국토연구원 스마트공간센터장. ⓒ제주의소리

탄소 제로가 아닌 탄소 절감에 초점을 맞춘 도시도 있다. 바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스페인 바르셀로나다. 이 가운데 암스테르담은 탄소를 줄이기 위해 자가용 운송 비율을 줄이고 자전거 비율을 늘렸다. 공유 자전거나 킥보드 등을 많이 사용하도록 지원했다. 그 결과 국민 30% 이상이 자전거를 운송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공유 서비스를 이용한 스마트시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센터장은 “스마트시티라는 것은 결국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등 한정된 도심 자원 배분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스마트시티는 단순한 기술 개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증을 추진하고 기존 사회 제도에 적합한지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스마트시티를 위한 도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민원에 발목 잡히는 재생에너지? 주민 투자 확대해야

제주에서 재생에너지는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곳곳에 세워진 풍력발전기를 봐도 재생에너지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할 수 있다.

세 번째 테크플러스 강사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는 “작년 발전단가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석탄 등 화석연료로 생산된 전력보다 태양광에서 나오는 전력이 저렴해졌다”며 “재생에너지를 많이 찍어낼수록 가격이 낮아질 것이다. 지금은 큰 변화의 길목”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재생에너지가 ‘대세’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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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 ⓒ제주의소리

하지만 흐름을 더욱 탄력적으로 만드는데 필요한 과제도 있다. 바로 ‘심리적 수용성’이다.

윤 대표는 “태양광이나 풍력 에너지 허가가 취소되는 경우의 2/3가 민원에 의한 것”이라며 “지역수용성을 확보하지 않고 재생에너지 확대는 불가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일에서는 국민 800만명이 재생에너지에 직접 투자해서 돈을 벌고 있다”며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만들 때 인근 지역 주민 뿐 아니라 도민들이 참여하고, 그 수익을 지역에서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경제 활성화가 될 것이다. 이런 좋은 경험이 쌓이면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이 넓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선 피해 후 조치’했던 화학물질 관리...이제는 선제적으로

네 번째 강사인 최진희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교수는 환경독성학 전문가로 손꼽힌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오염을 사후 처리하는 ‘환경공학 분야’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1980~90년대다. 그러나 사후 처리로는 명확한 한계를 보였기에 2000년대부터 ‘사전 예방적’ 환경문제 대응으로 변화했다.

2010년에는 강력한 화학물질 정책과 환경보건 정책으로 진화하고, 그리고 2020년 들어 ESG경영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합한 의미로, 기업의 사회적·윤리적 책임을 강조한다.

최 교수는 우리가 화학물질을 특별히 관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피해가 벌어진 뒤 대처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꼽았다. 미세먼지, 환경호르몬, 플라스틱, DDT 살충제, 석면 등 대부분의 유해 화학물질은 모두 다 사용→피해→규제하는 패턴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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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희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교수. ⓒ제주의소리

그는 “산업에 쓰이는 수십 만종의 물질들은 독성 정보가 전혀 없다. 이게 바로 현실”이라며 “많은 질환이 화학물질과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환경 유해 인자와 인체 질병 간의 역학적 증거들이 쌓이고 있다”고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환경, 건강, 안전을 중요시 하는 EHS(environment, health and safety)다. 

최 교수는 EHS를 선도적으로 도입한 유럽의 예를 들며 “2007년도에 화학물질 규제법 리치(REACH)를 탄생시켰다. 화학물질을 생산, 수입하는 기업에서는 그 화학물질의 안정성에 대해 먼저 정부에 제출해 안전한지 검증해야 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후 혁신적인 독성평가법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과학기술이 융합해 화학, 신소재, 독성평가를 하게 됐다. 그중에서도 스마트 기술, 화학물질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독성을 예측하는 방법이 4차 산업혁명 메가 트렌드”라며 “새로 화학물질을 개발할 때는 연구개발 단계에서부터 EHS를 고려해 안전한 제품을 만드는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 감각적이고 기억에 남는 친환경 생활 

마지막 강사인 황준원 미래채널 MyF 대표는 환경 문제에 선진적으로 대응하는 국내외 사례들을 소개했다.

단거리·장거리 항공기 운항이 교통수단 가운데 탄소 배출이 가장 많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독일이나 북유럽에서는 ‘비행 수치(Flight Shaming)’ 운동이 벌어졌다. 나 하나가 즐겁기 위해 지구의 모든 생명을 위협하는 고(高)탄소배출이 부끄럽다는 뜻이다. 그래서 비행기보다 탄소를 덜 배출하는 배, 기차를 활용한 여행이 재평가 받고 있다.

코로나19와 맞물려 여행·소비·고용 등 사회 각 분야에는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캠, 영상화면, 로봇 등을 이용한 원격 여행 ▲여행지 특산품을 택배로 보내주고 현지인과 라이브 방송으로 소통하는 여행 상품 ▲장애인이 로봇을 조종해 주문 받는 카페 ▲해초로 만든 생분해성 봉지 ▲뜨거운 물에 녹는 포장지 ▲과일, 버섯을 이용한 대체 가죽 ▲신발을 그대로 갈아서 같은 제품으로 만드는 기술 ▲양모, 사탕수수, 천연고무, 재활용 폴리에스터 등을 이용한 신발 ▲쓰레기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가게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세제, 화장품을 리필 판매하는 시스템 ▲식물로 만든 고기와 배양육 등 국내외에서 시도되는 많은 친환경 사례들은 주목을 끌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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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원 미래채널 MyF 대표. ⓒ제주의소리

황 대표는 “친환경 생활은 아직 쉽지 않지만, 생산자 입장에서는 친환경적으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어떻게 하면 엣지(edge) 있게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할까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테크플러스 제주 강연자들은 개별 발표 이후 토론회에서 각자 생각하는 의견을 추가했다.  

이정모 관장은 “제주의 개발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고민을 가지고 개발(총량)을 관리하는지 궁금하다”면서 “제주가 종의 다양성을 계속 유지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재용 센터장은 “문제 해결을 얼마나 잘 측정하는지가 스마트시티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스마트시티 관련 정부 사업에서도 이런 점을 중요하게 평가한다”면서 “제주는 독립된 섬이기에 측정하기 좋은 여건이다. 그런 장점으로 국내 스마트시티에 있어 가장 앞서서 도입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윤태환 대표는 “유럽에서는 발전소를 지을 때 사업비 20%는 지역 주민이 참여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며 “제주도 조례를 통해 재생에너지 추진 시 의무적으로 도민 참여를 높이고 혜택이 돌아가게 만든다면 어떨까. 재생에너지 사업에 주민 참여가 많아지고 모범 사례도 많아지면서 재생에너지가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도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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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발표 이후 패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최진희 교수는 “ESG경영을 반영한 착한 기업을 만드는 것은 바로 소비자에 달려있다”며 “수익성만이 아닌 환경, 건강, 안전을 높은 순위에 두는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시민들이 구입할 때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피력했다.

황준원 대표는 “친환경, 착한 소비의 문제가 있는데 바로 ‘소비 죄책감’이다. 내가 친환경적으로 하지 않을 때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이는 친환경 소비를 멀어지게 하는 원인으로도 작용한다”면서 “그런 불편함을 잊을 정도로 괜찮은 아이디어가 나와야 한다고 본다. ‘맛있고 예쁘고 즐거운데 사실 친환경’이라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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