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을 넘어서는 사랑의 정동
분단을 넘어서는 사랑의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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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217) 박도, ‘전쟁과 사랑’, 눈빛, 2021
박도, ‘전쟁과 사랑’, 눈빛, 2021, 사진=알라딘.
박도, ‘전쟁과 사랑’, 눈빛, 2021, 사진=알라딘.

1.  

나라 밖에서 외국 작가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한국문학에 대해 궁금한 것 중 우선 순위로 꼽는 게 있다. 한국은 현재 지구상 유일한 분단 국가로서 그 직접적인 원인이 한국전쟁인데, 한국전쟁을 본격적으로 다룬 전쟁소설이 있다면, 그것도 장편으로서 대표작은 어떤 것인가요? 고백하건대, 이 거칠지만 매우 예리한 물음 앞에서, 순간,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문학사에서 한국전쟁을 다룬 소설이 분명 존재하고, 그 문학성이 외국의 전쟁소설과 비교할 때 결코 뒤처지않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말을 꺼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하지만, 지금부터는 이 질문과 관련한 얘기를 당당히 그러면서도 차분히 펼칠 수 있지 않을까. 박도의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은 한국전쟁의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참화를, 참전한 청춘 남녀의 생동감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쓴 전쟁소설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인간 존재의 사랑의 정동이 얼마나 위대하고 또 다른 현실을 창조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

그렇다면, 주인공 청춘 남녀는 한국전쟁에서 어떻게 만났을까. 

작중인물 준기는 평안도 영변 출생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6세의 어린 나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군으로서 자원입대하였는데, 낙동강 전선 구미 근처의 임시 야전병원에서 간호병 의용군으로 있는 작중인물 순희의 조수로서 그들의 만남은 시작된다. “문자 그대로, ‘시산시해(屍山屍海, 시체의 산 시체의 바다)’의 전투가 거의 날마다 이어”(76쪽)진 낙동강의 다부동전선에서 북녘 태생 준기와 남녘 태생 순희는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낙동강 전선에서 마주한 양측의 공방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야전병원에서 대면하고 있는 전쟁의 숱한 주검과 전상(戰傷)의 생생한 장면 하나하나가 증언해준다. 그 중 대수롭게 간주되어서 안 될 것은 유엔군의 폭격이다. 여기서, 작가는 인민군으로서 주인공들이 유엔군의 폭격만을 주목한 채 그 폭격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적 입장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미 전폭기의 공습이 무서운 것은 인민군만이 아니었다. 국군도, 피란민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지형에 낯선 미군 조종사들은 심심치 않게 아군 전투 지역에도, 피란민 움막에도 폭탄을 떨어뜨렸다. 일부 유엔군 가운데는 인민군과 피란민을 구별치 못하고 오인 사격하는 경우도 많았다. (중략) 6·25전쟁 당시 미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원 없이 폭탄을 한반도에 쏟아 부었다.”(81쪽)는 작중화자 ‘나’의 인식에서도 알 수 있듯, 비록 낙동강 전선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 폭격에 한정될지 모르지만, ‘제국­미국’의 무자비한 무력(武力) 행사를 작가가 뚜렷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낙동강 전선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는 극한의 대치 상태에서 준기와 순희의 연정은 새록새록 싹트기 시작한다. 숨돌릴 틈새 없는 전시 속에서 그들은 낙동강 달빛 아래 알몸으로 물장구를 치며 멱을 감기도 하는가 하면, 낙동강 근처 마을로 사과서리를 가는 길에 서로 입맞춤을 하며 사랑의 불길은 한층 거세게 타오른다. 둘의 이러한 사랑의 정동의 표출이야말로 지극히 현실적이며, 이 사랑의 정동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이야말로 낮은 차원의 전쟁소설이 아니라 높은 차원의 전쟁소설을 추구한 작가의 전쟁에 대한 심미적 이성의 예술적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역설적이지만, 삶과 죽음이 공존하면서 순간 그 자리가 뒤바뀔 수 있는 최전선의 사위를 팽팽히 감도는 극한의 긴장 그 틈새에는 그럴수록 긴장을 순간 이완시킴으로써 최전선에서 자칫 무화되거나 휘발될 수 있는 생의 정동을 회복하고 강하게 추스를 수 있는 생명의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이것을 주인공들의 예의 낭만적 사랑의 정동으로 드러낸다. 다시 말해, 주인공들이 최전선에서의 사랑의 정염과 그 정동의 표출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최전선의 현장이기 때문에 한층 리얼하다. 그들의 이 낭만적이고 리얼한 사랑의 정동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순희의 제안으로 함께 생존을 위한 병영 일탈이 지닌 생명의 힘을 웅숭깊게 헤아릴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그들의 탈영은 ‘전쟁과 사랑’에서 극한의 한계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실존적 선택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 대한 래디컬한 비판적 문제제기로서 반전(反戰) 평화를 바탕으로 한 분단극복의 일상을 살고 싶은 문학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것은 각자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싶은 강렬한 염원이 목숨을 건 탈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탈주의 도정에서 잠시 들른 민간인들의 탈이념 속 보호와 도움은 주인공 각자가 북녘 태생인지 남녘 태생인지 구별하지 않는, 각자의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가 가족과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삶의 정동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주목한다. 심지어 준기와 순희가 인민군 낙오병에 붙잡혔을 때 인민군 장교가 그들이 탈영병인지 알면서도 그들을 사살하지 않고 일부러 놓아준 데에는, 전쟁이 애오라지 통제할 수 없는 반전 평화의 일상을 추구하는 그 생명의 힘을 작중인물로부터 작가가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준기와 순희의 탈주의 모습 속에서 한국전쟁이 파괴한 평화의 일상을 회복시켜야 할 엄중한 책임과 과제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한국전쟁의 추한 면을 목도한다. 순희는 추풍령에서 준기와 헤어진 후 혼자 서울에 있는 집으로 가던 중 국군 헌병대에 체포당했는데, 지난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 독립군을 밀고한 공으로 일본군 헌병에 특채된 이력 때문에 대한민국 군인으로 재등용된 헌병대장의 반인권적 신문을 받는다. 한국군 창설이 친일파 군경의 재등용과 무관할 수 없듯, 순희가 국군 헌병대장에게 당하는 반인권적 신문의 적나라한 고발 장면은 그동안 한국전쟁에서 전경화(前景化)할 수 없던 음울한 후경(後景)이란 점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성찰이 서늘하다. 동시에 이 후경에 대한 작가의 문학적 응징을 지나쳐서 곤란하다. 순희는 우여곡절 끝에 헌병대장의 잔혹한 신문을 벗어날 기회에서 헌병대장을 향해 권총을 발사한다. 그런데 순희의 조준은 일부러 비껴나고, 순희는 “나는 너를 이미 도덕적으로 죽였다.”(271쪽)고 단언한다. 순희의 이 단말마와 같은 처벌은 상징적 처벌이다. 해방공간에서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채 탄생한 대한민국의 친일협력자들을 향한 도덕적 처벌이다. 무엇보다 38도선 이남에서 친일협력에 대한 역사 청산이 온전히 이뤄지지 못한 현실에서, 그것도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전쟁에서 남녘 젊은 여성의 이 상징적 처벌은 작가의 이러한 한국 역사에 대한 ‘문학적 응징’이 지닌 래디컬한 성격을 지님으로써 한국전쟁 이후 분단현실을 담대하게 살아낸 삶의 저력으로 이어진다. 

3.

그런데, ‘전쟁과 사랑’은 3년 간의 한국전쟁 시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전쟁이 종전되지 않은 채 무려 70년 동안 휴전 상태에 있는 것은 한국전쟁과 연관된 일들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을 방증해준다. 준기와 순희가 겪었고 겪는 전후의 현실은 이를 여실히 말하고 있다. 준기는 전쟁 당시 반공포로 석방 후 국군에 입대함으로써 인민군으로 참전한 정치적 적대의 이념과 행동을 형식적으로 지워낸다. 그리고 휴전선 이남의 한국 국민으로서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면서 그는 순희와 전쟁 중에 약속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의 만남을 저버린 적이 없다. 심지어 준기는 다른 여인과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순희를 향한 순정한 사랑을 잊지 못한 채 대한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그의 이러한 소식은 미국에 살고 있는 순희에게 전달되고, 그는 순희와 극적인 해후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 이민길에 오른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그들의 삶은 미국 사회의 시민권자로서 정치적 입장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한반도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는 구체적 실천을 강구하고 있는 진정성이다. 이산가족 찾기의 노력이 그 구체적 사례다. 비록 준기와 순희가 미국 시민권의 정치적 신분이어서 북한을 방문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한국전쟁의 유산인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문학적 성찰을 비켜갈 수 없다. 

준기 부부는 4박 5일 일정으로 꿈에 그리던 준기의 고향 평안도 영변을 방문하여 아버지 묘소를 참배하고 어머니와 친인척을 상봉한다. 준기 부부의 북한 방문 서사는 이 소설의 말미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작가의 의도적 구성이다. 특히, 미국 시민권자로서 북한을 방문할 수 있지만, 또 다시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엄연한 정치적 적대의 현실, 즉 한반도를 에워싼 냉전체제의 현실을 작가는 상기시킨다. 관련하여, 이 냉전체제가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와닿는 것은, 북한을 떠나야 할 공항에 배웅 나온 북한 관료의, “이제 길이 트여시니 자주 고향 방문하시라요.”(373쪽)라는 의례적 말 속에는, 준기네와 같은 미국 시민권자는 북한과 미국의 대외 관계에 따라 북한과 최소한 소통의 길을 낼 수 있는데 반해 그렇지 않을 경우 북한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국제사회의 대북 관계 및 남북 교류의 경험에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과 사랑’의 대미는 환청의 이명으로 들리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노랫말이다. 이명의 잔향 속에서 맹목적 통일지상주의를 경계할 뿐만 아니라 통일에 대한 환멸과 현실적 불가능성을 기정사실화하는, 그리하여 분단에 대한 사실수리론(事實受理論)이 팽배해짐으로써 한국사회에서 점차 분단의 일상으로 구조화하고 있는 데 대한 작가 박도의 비판적 성찰을 숙고해본다. 그래서 한국전쟁을 창조적으로 넘는 문학적 상상력은 여전히 문제적이다!

#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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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문 2021-10-20 15:11:21
박도선생님.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통일을 위한 좋은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118.***.***.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