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정치방담] 안민석-정철, 제주와 만나다 ①

 

겸손하고 따뜻했던 사람, 검찰의 ‘정치적 타살’이란 논란 속에 끝내 명예회복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故 김재윤 국회의원.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김재윤기념사업회’ 이름으로 모였다. 그 중에서 고인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어온 ‘최순실 추적자’ 안민석 국회의원, 카피라이터 정철, 그리고 김재윤 의원과 오랜 인연을 간직한 문윤택 제주국제대학교 교수까지. 지난 16일 故 김재윤 의원 시비 제막식을 준비해온 세 사람이 [제주의소리]와 만났다. 제막식에 앞서 김봉현 [제주의소리] 편집국장 진행으로 가진 방담 자리에서는 고인에 대한 추억과 그가 남긴 유산부터 최근 정치권을 달구는 대장동 이슈, ‘사람’의 가치를 주목하는 자유롭고 막힘없는 대화가 오갔다. 내년 치러질 대선까지. 진중하지만 때로는 유쾌했던 이날의 방담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故 김재윤 의원, 입법로비 사건은 명백한 사법살인” 
‘오징어게임’ 닮은 대장동...프론트맨 밝히면 VIP나와
안민석 “곽상도 전 의원, 사퇴 배경이 50억원 때문일까?” 
정철 “세상 가장 재미있고 울림이 큰 건 사람 이야기”
문윤택 “염치 없는 정치·사법 적폐 여전...대통령 잘 뽑아야”

‘초선 같은 5선, 수도권 내리 5선(안민석)’, ‘김제동 닮은 카피라이터(정철)’, ‘안민석·정철과 함께 하는 머슴(문윤택)’

세 사람은 자신을 각자 이렇게 소개했다. 출신, 나이, 직업 모두 다르지만 세 사람을 묶는 공통점은 바로 ‘故 김재윤 의원’이다. 제주 서귀포시를 지역구로 3선의 국회의원 관록을 가졌던 김재윤 전 의원은 지난 6월말 황망하게 우리곁을 떠났다.  

안민석 의원은 김재윤 의원이 생전 활동한 제17대~19대 국회에서 함께 활동했으며, 옥고를 마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꾸준히 마음을 나눈 사이다. 문윤택 교수는 고인을 고교 시절부터 알고 가까이 지낸 막역한 사이다. 카피라이터 정철 작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나 안민석·문윤택과의 인연을 계기로 김재윤 의원에 대해 알게 됐다. 16일 서귀포기적의도서관 마당에서 열린 시비 제막식의 타이틀인 ‘시작, 김재윤’도 정철 작가가 만들었다.

안민석 의원은 김재윤 의원이 복역 중 문재인 정부가 감사원장에 최재형 판사를 임명할 것이라는 소식에 매우 큰 심적 고통을 겪었다고 전했다.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김재윤 의원에게 1심에서 무죄 판단이 내려진 내용까지 뒤집고 징역 4년을 선고한 항소심 판사가 바로 최재형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다.

왼쪽부터 안민석 국회의원, 카피라이터 정철 작가, 문윤택 제주국제대 교, 김봉현 제주의소리 편집국장. ⓒ제주의소리
왼쪽부터 안민석 국회의원, 카피라이터 정철 작가, 문윤택 제주국제대 교수, 김봉현 제주의소리 편집국장. ⓒ제주의소리

김재윤 의원은 2014년 서울예술실용학교 이사장 A씨으로부터 ‘입법 로비’ 명목으로 현금과 상품권을 받았다는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김 의원은 “입법 로비라면 최소한의 입법 자료라도 국회의원이나 보좌진에게 전달돼야 하는데, 하다못해 이메일이나 문자 하나도 준 것이 없다”며 “재판부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증거를 무시하고 A씨의 일방적 거짓진술만 의지해 판결을 내렸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사장 A씨 역시 훗날 거짓증언이었음을 고백해 김재윤 의원의 4년 옥살이가 억울한 정치적 타살이었음을 뒷받침했다. A씨는 2020년 10월 초 방송된 KBS시사프로그램 시사직격 취재팀에 “짜여진 틀에서 저로 인해 피해를 보신 분들이, 저 역시 평생 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며 “저로 인해서 큰 고초를 겪게 해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었다. 용서를 구하는 게 제일 빠를 것 같아서. 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참회했다. 

A씨는 당시 김재윤 의원 입법로비 논란이 불거지기 전, 이미 40억원대 교비 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서 횡령 사건은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이런 이유로 여권 일각에서는 김재윤 의원 사건이 청와대 하명을 받은 검찰의 ‘기획 수사’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KBS 시사직격에서 다뤘던 방송 제목도 '메이드인 중앙지검'이었다. 

ⓒ제주의소리
안민석 의원. ⓒ제주의소리

안 의원은 “김재윤 의원 사건은 명백히 당시 박근혜정부의 청와대가 야당 의원들을 탄압하기 위한 하명 수사였다고 본다. 나 역시 ‘안민석에게 돈을 줬다’는 시나리오를 검찰이 써서 업자의 주리를 틀었는데도 나는 구속되지 않았다. 해당업자가 끝까지 돈 준 사실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 업자가 검찰이 원한 답을 줬다면 나도 걸려들어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최재형 판사가 감사원장으로 추천됐다는 소식이 들리자, 옥중에 있던 김재윤 의원이 내게 급히 특별 면회를 요청했다. 나를 붙잡고 ‘형, 이게 말이 돼? 무고한 나를 이렇게 잡아넣어서 4년 옥살이를 시킨 최재형이 촛불 정부라는 문재인 정부의 감사원장이 되는거냐’고 분노했다. 평소 감정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깜짝 놀랐다”고 기억했다.

안 의원은 청와대 인사 책임자를 만나 최재형 판사는 박근혜정부에서 김재윤 의원 사건에 대해 잘못된 2심 판결을 내린 판사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이미 임명절차가 상당부분 진행된 시점에서 되돌리기 곤란하다는 청와대의 답변을 들어야 했다. 안 의원은 당시를 떠올리며 "최재형이 문재인 정부를 배반할 것이다, 잘못된 인사다라고 끝까지 항변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회고했다.  김재윤 전 의원은 지난 6월말 최재형 감사원장이 대권 도전을 선언하며 감사원장에서 사퇴한 다음 날, 황망하게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안 의원은 김재윤 의원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전화 통화를 했다. 그는 “최재형이 감사원장을 사퇴한 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김재윤이었다. 찾아가니 거의 초죽음이 돼 있었다. 세상이 이래서는 안된다는 좌절과 분노가 뒤섞인 김재윤은... 너무 걱정이 됐다”며 “사퇴 다음 날도 전화를 걸어 ‘최재형은 절대 대통령이 안된다’고 위로했고, 김재윤도 ‘그래, 우리 국민들이 배신자를 대통령으로 뽑아주겠어’라고 말하며 다소 기운을 내는 것 같았는데 몇 시간 뒤에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고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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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에 열린 [제주의소리] 정치방담 모습. 왼쪽부터 김봉현 국장, 안민석 의원, 정철 작가, 문윤택 교수. ⓒ제주의소리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대권도전을 선언하며 뛰어든 제20대 대통령 선거. 그는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 입당해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4강 컷오프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고, 국민의힘은 4명으로 후보를 추려 최종후보 선출을 위한 마지막 경선 과정을 밟고 있다. 안민석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캠프의 총괄특보단장을 맡아 경선 승리에 일조했다.

안 의원은 최근 불거진 대장동 논란을 명쾌하게 정리했다. ‘돈 받은 자가 범인’이다, ‘사라진 자가 범인’이다, 그리고 ‘프론트맨’을 찾아라.

안 의원은 온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대장동 사건에 비유했다. 그는 “최근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인기인데, 대장동 사건과 비교할 수 있다. 영상 속에는 말이 있고 VIP가 있는데, 지금 대장동 건에서 거론되는 김만배, 정영학, 남욱, 유동규는 모두 말이다. 4~5년 동안 땅을 작업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람들이 구속됐는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수원지검을 움직여서 구속을 피할 수 있었을까. 하나은행과 SK같은 금융자본과 대기업이 들어가면 사업을 주도하기 힘들었을 텐데도 이들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VIP를 밝히는 것이 대장동게이트의 핵심”이라면서 “말과 VIP를 연결한 프론트맨을 밝히면 VIP까지 연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안 의원은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이재명 배후설’은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이재명 후보는 박근혜 정부 당시 사찰 대상이었다. 작은 빌미라도 있으면 이재명을 구속시키겠다는 게 박근혜 정부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이 머리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프론트맨이었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대장동게이트의 유력한 프론트맨으로 최근 국민의힘을 탈당, 사퇴한 곽상도 전 국회의원을 유력하게 지목했다.

안 의원은 “내가 20대 국회에서 2년간 곽상도 의원과 같은 상임위에 있었는데 그 분은 아들이 퇴직금 50억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을 사퇴하는 정치적 책임을 느낄 분이 아니다”라며 “50억원 말고 더 어마어마한 것이 있지 않고는 의원직 사퇴를 해석할 수 없다. 만약 지금도 사퇴를 하지 않고 있었다면 언론과 국민 의심이 온통 곽상도를 향할 텐데 지금은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과연 퇴직금 50억원 때문일까”라고 근원적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대장동 논란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할 방향은 프론트맨의 역할과 존재 여부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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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정철 작가. ⓒ제주의소리

정철 작가는 ‘사람이 먼저다’(18대), ‘나라를 나라답게’(19대)라는 대통령 선거 슬로건을 만든 35년차 카피라이터다.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정철이 카피라이터로서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는 바로 ‘사람’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 사람 이야기다. 가장 힘 있는 이야기도, 울림이 큰 것도 사람 이야기”라고 꼽았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카피로 변화를 일으킨 사례를 들었다. 언젠가 그가 세들어 사는 아파트 바로 앞에 대기업이 고층 스포츠센터를 세우기로 해 주민들이 반발했다. 카피라이터라는 이유만으로 주민 대책위원회에 붙잡혀갔는데, 자극적인 색과 원초적 문구 대신 ‘아이들이 햇볕을 받을 수 있게 한 뼘만 비켜 지어주세요’라는 항의성(?) 슬로건을 지었다. '결사반대' 식의 투쟁적 구호와 전혀 거리가 멀었다. 바로 이게 먹혔다. 

정철은 “이 카피가 아파트 뿐만 아니라 주변 강남 일대에 화제가 됐고 심지어 밤 9시 방송뉴스에도 소개됐다. 이렇게 되니 스포츠센터를 짓는 기업도 불편해졌다”면서 “결과는 스포츠센터가 아파트 앞쪽 부분을 과감히 2층으로 낮춰 ‘ㄴ’자 건물이 됐다. 한 뼘 정도가 아니었다. 다른 영향도 있었겠지만 카피가 어떤 힘을 가지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었다. 결국 ‘사람’의 힘이 아니겠느냐”라고 예를 들었다.

더불어 “카피라이터로서 글을 쓰는 단계는 구분, 관찰과 발견, 확장이다. 글은 머리나 손이 아닌 눈으로 쓰는 것이다. 치열하게 발견하고 관찰해 써야 한다. 발견한 아이디어를 확장하는 일은 요령과 방법이 생기기 마련”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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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윤택 제주국제대 교수. ⓒ제주의소리

언론학을 연구한 문윤택 교수는 국가 공동체의 미래를 좌우할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장 중요한 시대정신이 ‘자존과 공존’이라고 밝혔다.

문 교수는 “(정치·사법 적폐들은) 예전 같으면 최소 염치가 있어서 구중궁궐에 숨거나 검찰도 숨어서, 언론에 흘리고 국민을 호도했다. 그런데 이제는 잘못하고 있다는 죄의식과 염치마저 실종돼 민낯을 대놓고 알린다”면서 “국민들이 점점 보수언론에 의해 길들여져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다. 혼란스러운 입소문이나 SNS를 보면 본질이 흐려진다”고 여론 흐름을 짚었다.

그리고 “코로나로 극한까지 왔지만 극복하는 과정은 더 힘들 것이다. 정치가 곧 경제인 현실에서 대통령을 정말 잘 뽑아야 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죄의식과 염치의 민낯과 코로나로 인해 국민 자존감이 무너져 있다. 그래서 기본소득 같은 화두가 떠오르는 것”이라며 “코로나와 거리두기로 인해 잠시 잊고 있던, 정말 소중했던 연대감과 공동체 정신이 다시 살아나리라 본다. 정치가 먼저 맑고 밝아져야 따라가는 경제나 사회, 문화도 따라간다. 자존과 공존도 살아난다. 이 모든 것을 함께 세워야 하는 선거가 바로 이번 대선”이라고 규정했다.

문 교수는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그는 “지역 언론의 현 주소가 지역 주민의 현 주소라는 말이 있다. 제주도민들께서는 비판하고 견제하는 마음으로 [제주의소리]를 꾸준히 응원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정철 작가는 “사는 게 워낙 팍팍하고 어려워도, 일주일에 한번 혹은 한 달에 한번이라도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사람이란 철학을 내팽개치지 않고 보듬고 살아가자”라고 제언했다.

김봉현 편집국장. ⓒ제주의소리
김봉현 제주의소리 편집국장. ⓒ제주의소리

안민석 의원은 “이 자리에 김재윤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그리운 시간이다. 그가 떠난 자리는 우리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열심히 채우겠다. 김재윤이 보고 싶다면 서귀포기적의도서관으로 오시라”고 인사를 남겼다. 

김봉현 국장은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모두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가 우리 삶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깊숙이 연결돼 있다”라며 “정치권이 진영 대립으로만 치닫지 않고, 실체적 진실과 국민 행복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역시 우리 모두의 역할이고 책임이다. 김재윤 전 의원과 같은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이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내년 치러질 대선 지방선거에 더 큰 관심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 대담 진행=김봉현, 정리=한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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