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정치방담] ③ '사람 냄새' 나는 카피라이터 정철 작가

카피라이터 정철 작가는 국내 광고업계에서 35년 간 활동한 유명 카피라이터다. 많은 재화들이 그가 불어넣은 숨결을 품고 세상으로 나갔지만, 정철이란 이름 두 자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계기는 바로 18대, 19대 대통령선거다.

당시 문재인 후보의 선거 슬로건 ‘사람이 먼저다’(18대), ‘나라를 나라답게’(19대)를 만든 주인공이 바로 정철이다. 최근에는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지난 16일 故 김재윤 국회의원의 시비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를 방문한 카피라이터 정철 작가는 제주의소리가 마련한 정치방담에 안민석 국회의원과 함께 출연해 소위 '광고쟁이'로 살면서 유독 '사람'이란 화두에 천착해온 속내를 털어놨다. 

우선 정철과 가까운 사이인 문윤택 제주국제대 교수는 “정철의 카피는 맛이 다르다”라고 호평했다. 예컨대 일반적 카피들은 화장실에 적힌 문장들처럼 ‘~~하시오’, ‘~~하지 마세요’라는 식의 지시형인데, 정철의 카피는 ‘청소하시는 어머니의 무릎이 아픕니다’라는 식으로 사람 냄새가 풍긴다는 것.

정철이 카피라이터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 역시 ‘사람’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 사람 이야기다. 가장 힘 있는 이야기도, 울림이 큰 것도 사람 이야기”라고 꼽았다.

16일 [제주의소리] 좌담에 참여한 정철 카피라이터. ⓒ제주의소리
16일 [제주의소리]의 정치방담에 참여한 카피라이터 정철 작가. ⓒ제주의소리

그러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카피로 변화를 일으킨 사례를 들었다. 언젠가 그가 세들어 사는 아파트 바로 앞에 대기업이 고층 스포츠센터를 세우기로 해 주민들이 반발했다. 카피라이터라는 이유만으로 주민 대책위원회에 붙잡혀갔는데, 자극적인 색과 원초적 문구 대신 ‘아이들이 햇볕을 받을 수 있게 한 뼘만 비켜 지어주세요’라는 슬로건을 지었다. '결사반대' 식의 투쟁적 구호와 전혀 거리가 멀었지만, 오히려 더 큰 반응을 이끌어냈다.

정철은 “이 카피가 아파트 뿐만 아니라 주변 강남 일대에 화제가 됐고 심지어 밤 9시 방송뉴스에도 소개됐다. 이렇게 되니 스포츠센터를 짓는 기업도 불편해졌다”면서 “결과는 스포츠센터가 아파트 앞쪽 부분을 과감히 2층으로 낮춰 ‘ㄴ’자 건물이 됐다. 한 뼘 정도가 아니었다. 다른 영향도 있었겠지만 카피가 어떤 힘을 가지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었다. 결국 ‘사람’의 힘이 아니겠느냐”라고 예를 들었다.

정철은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청년들에게도 조언을 남겼다. 그는 “카피라이터의 삶은 때로는 하루에 다섯 가지가 맞물려서 돌아간다. 하루 종일 껌 팔고, 옷 팔고, 술 팔고, 집 팔기 위한 고민으로 가득하다. 웬만한 정신이나 체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대형 광고 기획사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지만, 3년차 카피라이터는 구하기 더 어렵다”고 현실적인 고충을 전했다.

더불어 “누군가는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어 카피라이터가 재미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카피라이터가 연예인도 만나고 화려하게 있어보인다고 말한다. 만약 전자라면 꿈꿔볼 만 하겠지만, 후자라면 입문해도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철은 ▲누구나 카피라이터(2021) ▲틈만 나면 딴생각(2018) ▲카피책(2016) ▲내 머리 사용법(2015) ▲한 글자(2014) 같은 책을 쓰면서 글쓰기 방법과 발상법을 공유해왔다.

정철은 카피라이터를 포함한 모든 글쓰기 방법을 3단계로 구분했다. 구분, 관찰과 발견, 그리고 확장이다.

그는 “글쓰기는 세상에 없는 것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고 치열한 관찰을 통해서 발견하는 것이다. 발견한 것을 조합하고 만들어서 확장하면 글이 되고 카피가 되는 것이라고 본다”며 “그렇기에 글은 머리나 손이 아닌 눈으로 쓰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확장하는 단계에 가서는 요령이나 방법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조언했다.

정철은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가 사용한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구가 결과적으로는 실패작이라고 말했다. 후보가 당선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세상이 그 슬로건을 기억해주더라. 모두가 ‘사람이 먼저’라는 가치는 계속 보듬었으면 한다”라고 '사람'이라는 가치를 중요시 여겼다.

정철은 “사는 게 워낙 팍팍하고 어려워도, 일주일에 한번 혹은 한 달에 한번이라도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사람이란 철학을 내팽개치지 않고 보듬고 살아가자”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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