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의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 (20) 올레길에서 나를 찾다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코로나 시국으로 서로 거리를 두고 온전한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지금,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를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 편집자

혼자 여행하기는 왠지 용기가 나지 않는 사람, 하지만 제주올레 길은 꼭 걷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들을 위해 완주자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은 초창기부터 있었다. 사무국 내부에서도 그 필요성을 제기하는 스탭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그때 바쁜 일들을 해내느라고 우리는 그 일을 오랫동안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올 4월부터다. 가을 완주 여행 프로그램이 시작된다기에 첫날 합류하겠노라고 자원했다. 일주일 단위로 모집하는 완주여행팀 기간에 아무 때나 한 번은 합류하기로 방침을 정했지만, 기왕이면 첫날 만나는 게 여러모로 낫기에. 

사진=서명숙.
올레길 완주자 여행 참가자들. 사진=서명숙.

이번 완주여행(10월 4일~10월 9일까지) 참석자는 모두 17명. 전날 이미 서귀포에 도착해서 숙소에 여장을 푼 참가자들은 4일 아침 9시부터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 모여서 인사와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후 출발할 예정이었다. 오리엔테이션 마지막에 내가 나서서 인사를 했다. 왜 제주에서 태어났는데도 제주를 벗어나려고 애썼는지, 동경하던 대도시 생활과 천직이라고 여겼던 기자 생활에 지치고 넌더리가 나서 떠난 산티아고 길에서 왜 제주를 다시 떠올렸는지, 돌아와서 어떤 원칙으로 어떤 사람들과 손을 잡고 길을 냈는지를 10분 만에 압축해서 들려주었다. 그런 뒤 오늘 길에서 가이드 겸 인솔자인 이성근(닉네임 별방진) 선생을 참가자들에게 소개했다. 이분도 몇 년 전 산티아고 길을 완주하신 분이라면서. 이선생님이 수줍어하시면서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꾸벅하는데 어디에선가 큰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딱 내 타입이네!” 소리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제법 덩치가 큰 아주머니가 손까지 흔들어 보이는 게 아닌가.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자칫 잘못 들으면 성희롱적인 발언으로 들릴 수 있는 멘트였지만, 누가 봐도 첫 만남의 딱딱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희석하려는 ‘분위기 메이커’의 활약 같았다. 난 단박에 그분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저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

# 그녀의 사단은 무려 일곱 명에 이르렀다

출발 전 올레 센터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순서. 마침 아까 그 문제의 발언을 한 아주머니가 내 옆에 서게 되었다. 심지어 청 반바지 차림이었다. 나도 청바지는 즐겨 입지만 반바지까지는 안 입어봤는데(7부 청바지를 올여름에 처음 구입했다), 싶어서 그녀가 더 궁금해졌다. 사진을 찍은 뒤 그녀에게 이름을 물었다. “문순! 이문순! 촌스런 이름이죠?” 한다. 난 정색하면서 ‘넘 좋은 이름인데요’ 대답했다. 그런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본디 사람 얼굴도, 이름도 너무나 잘 까먹고 기억을 못 하는 나인지라 이름을 어지간해서는 물어보지 않는다. 다들 비슷비슷한 이름을 어찌 기억한단 말인가. 그래서 이성근 선생에게는 고향 마을의 유적인 별방진이라는 닉네임을 붙이거나 그의 외모나 성격, 직업의 특징에 맞춰서 별명을 부르기를 즐기는 나. 그러나 첨 만나는, 나보다 연장자일 게 분명해 뵈는 그녀에게 닉네임이나 별명을 붙일 수는 없는지라 이름을 물었는데, 다행히도 내가 외우기 좋은 이름이었다. 언론계 선배로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강원도지사 최문순 선배랑 이름이 같으니 다행이다. 크크

사진=서명숙.
도심길과 논길, 마을길, 평지와 오르막, 내리막길과 숲길과 다시 도심길을 걸어가는 7-1코스 역올레. 사진=서명숙.

센터에서 출발해 월드컵경기장까지 도심길과 논길, 마을길, 평지와 오르막, 내리막길과 숲길과 다시 도심길을 걸어가는 7-1코스 역올레. 코스 난이도가 높은 편인 데다 첫날 그리고 50대 이상 참가자가 많고 올레길 초심자가 적지 않다고 해서 다른 때보다 더 자주 쉬고 더 자주 길거리 미니 특강을 하면서 호흡을 조절했다. 그러는 사이에 참석자들의 관계와 직업, 나이들을 대충 파악하게 되었다. 

사진=서명숙.
올레 걷기에 참여한 이문순 씨의 가족들. 사진=서명숙.

알고 보니 문순 씨는 혼자가 아니었다. 하나 둘도 아닌 무려 가족 7명이 올레 걷기에 참가했단다. “내 동생 셋, 그리고 제부 둘, 그리고 올케 한 명”이 참가했다고 자랑스레 말하면서 하나하나 소개해 주는 문순 씨. 그녀 표정에는 사랑 뚝뚝, 자부심이 무한하다. “네 자매에 아들 하나 오 남매인가 보네요.” “아니 5녀 2남이었지. 근데 언니와 남동생 둘이 뭐가 급했는지 맏이인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지. 남동생들은 없지만 올케들과는 아직도 자주 만나고 자주 여행도 다니고 그래요.” 아, 그래서 남동생은 없고 올케만 있는 거구나. 그 거침없고 씩씩하고 쾌활한 표정에 언니와 남동생들이 먼저 간 사실을 언급할 때 순간 다른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쾌활한 문순 씨로 돌아오는 그녀다. 

올레 코스 중에는 추자도의 돈대산과 더불어 가장 난코스로 꼽히는 고근산에서 내려와서 우리는 잠시 그늘이 있는 길가에 앉아 쉬어가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각자 가지 소개와 올레길을 걷게 된 사연들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중 한 중년 커플 중 남자분이 부인이 얼마 뒤 만 60세 생일을 맞이하므로 환갑 기념 여행으로 올레를 택했노라고 했다. 문순 씨가 그 여자분의 생일을 축하하면서 “아유 나랑 딱 띠 동갑이네”라고 좋아라 했다. 아니, 그렇다면 문순 씨 나이가 만으로 72세나 된단 말인가. 참으로 놀라웠다. 그 나이에 저런 패션, 저런 발랄한 태도를 유지하다니. 나의 롤 모델이 아닐 수 없었다. 

# 동생들의 죽음을 겪으면서 삶의 창이 바뀌었다는 그녀

점점 그녀에게 관심이 갔다. 저 나이가 되어서도 저렇듯 밝은 에너지를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 타고난 천성일까. 아니면 주변의 좋은 환경 덕분일까. 궁금한 건 절대 그냥 못 넘기는 나, 그녀와 단둘이 나란히 걷게 된 순간을 틈타서 슬쩍 물었다. “문순 언니. 언니는 본디 그렇게 낙천적이고 즐거운 성격이셨어요?” 그녀는 “뭐 본디도 비교적 밝은 성격이긴 했지만...” 하고 난 뒤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남동생 둘 연달아 떠나보낸 뒤에 더 많이 달라진 거죠. 그때그때 즐기면서 살자는 쪽으로. 여행도 되도록 많이 다니고, 죽기 전에.”

사진=서명숙.
“남동생 둘을 연달아 떠나보낸 뒤에 더 많이 달라진 거죠. 그때그때 즐기면서 살자는 쪽으로. 여행도 되도록 많이 다니고, 죽기 전에. 이문순 씨 가족들. ” 사진=서명숙.

그녀는 기왕 말을 꺼낸 김에 동생들 떠나보낸 사연을 내게 들려주었다. 두 동생 모두 평생 잔병치레 한번 없다가 갑작스럽게 오십 살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더란다. “뭐 한평생 애쓰게 돈만 벌고 일만 하다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그 돈 저세상에 가져가지도 못하고... 그걸 연달아 겪고 나니까 그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싶더라고. 그날그날 그때그때 올 수 있으면, 즐길 수 있으면, 만날 수 있으면, 맛난 거 먹을 수 있으면, 여행 갈 수 있으면 만나고 살자는 쪽으로 인생 목표랄까 그런 게 바뀌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가족들 데리고 여행 다니기 시작한 거예요. 맨 처음이 어머니 팔순 때 아들 둘 다 먼저 보내서 우울해하실 것 같아서 우리 친목계 해외여행에 어머니를 동반해서 갔더니 그렇게나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런 어머니를 3년 전에 또 떠나보내고, 이젠 우리끼리 ‘야 밥 먹자’ 해서 모이고, ‘야 여행 가자’ 하면 되도록 시간 맞춰 같이 가고...” 안양, 용인, 서울 등지에 사는 가족들을 자주 뭉치게 하는 터미널 노릇은 역시 문순 씨의 몫인 듯했다.

# 떠나는 날 그녀와 포옹을 하다

내 시선을 끈 또 다른 여성도 있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유치원을 오래 운영해왔다는 그녀는 첫날 만나자마자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원장 생활 15년 만에 혼자 여행을 떠나왔단다. 요즘 유행하는 제주 한달살이.

“참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부터 너무나 지치고 허무하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생님들에게는 가장 좋은 직장, 학생들에게는 행복한 학교, 부모님들에게는 가장 믿고 맡길 만한 유치원을 만든다고 나름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어느 정도 그런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요. 거기에 정작 저는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저를 좀 돌아보자, 저를 좀 찾자는 마음으로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온 거지요. 근데 와보니 누군가 올레길 이야기를 하길래 뭔지 모르지만 한 번 해보지 뭐 하고 며칠 전 처음 1코스를 걸었는데요. 걷는 동안 얼마나 감동하고, 얼마나 위로받고, 얼마나 눈물 흘렸는지 모르실 거예요. 딱 저를 위해 만들어주신 길 같더라고요. 언제 만나게 되면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첫날 만나 뵙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요.”

서로 나이도, 거주 지역도, 성별도, 직업도, 살아온 내력도 다 다른 17명의 여행자들. 그들이 5일 후 돌아가는 날 표정이 못내 궁금했다. 그래서 마지막 날 그들이 걷는다는 6코스 근처 칼호텔 정원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가이드를 맡은 분과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했을 뿐, 참가자들에게는 미리 통보하지 않았다. 깜짝 놀라게 해 줄 요량으로. 

사진=서명숙.
그들은 호텔 정원 벤치에서 기다리는 날 보고선 깜짝 놀라서 소리를 치고 끌어안기도 했다. 며칠 사이에 다들 열심히 꾸준히 걸은 덕분인지 첫날보다 훨씬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서명숙.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호텔 정원 벤치에서 기다리는 날 보고선 깜짝 놀라서 소리를 치고 끌어안기도 했다. 며칠 사이에 다들 열심히 꾸준히 걸은 덕분인지 첫날보다 훨씬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마스크조차 그들의 생기와 넘치는 에너지, 베어나는 즐거움을 감추거나 가리지는 못했다. 

문순 씨는 첫날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계속 선두를 놓치지 않고 걸었다니 정말 놀랍고도 장한 선배님이시다. 그에 비해 평소 거의 걷지 않았던, 그리고 전혀 걷지 않았다는 문순 씨의 두 제부는 달라진 게 확연히 눈에 띄었다. 특히 경기도에서 오랜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명퇴했다는 작은 제부는 나이가 열 살 쯤은 젊어진 듯했다. 처음 뵐 때는 백면서생 같았는데 지금은 스포츠맨 비스무레하다고 농담을 건넸더니 좋아하신다. 엄마에게 제주여행이라는 말에 낚여서 올레를 걷는 줄도 모르고 따라온 젊은 청년도 끝까지 걸으면서 엄마를 외려 돌봐드렸다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우리 일행은 칼호텔에서 걷느라고 발이 피곤한 올레꾼들을 위해 마련해준 용천수가 흐르는 족욕 공간에서 신발, 양말까지 다 벗고 족욕을 하면서 발의 피로를 푸는 한편, 이런저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행이 끝나감을 아쉬워했다. 족욕을 마친 뒤 옛 파라다이스 호텔을 거쳐 내 개인 정원이나 다름없다고 늘 자랑하는 불로초 공원, 정모시 공원을 거쳐서 이중섭거리에 이르러 나는 문순 씨를 비롯한 여행팀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언젠가, 또 이 길 위에서 반갑게 만나기를 기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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