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82) 삶의 한 방식/ 김윤숙

ⓒ김연미
ⓒ김연미

정직만이 삶의 방식 그리 쉽지 않았으리

한 소절 마디마디 결구를 다지며

텅 빈 속 채우려 했던 엇나가는 곁가지

수런거리는 댓잎파리 바람의 말 흘리나

반짝이는 그림자 둘 곳 없는 상념에

한뎃잠 깊이 내리니, 뿌리마저 허공이네

-김윤숙, <삶의 한 방식> 전문-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몸살을 앓는다. 손가락 마디에 힘이 떨어지고 다리는 몸의 무게를 지탱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든다. 앉아 있고 싶고 누워있고 싶다. 가능하면 몸을 더 낮추어 내 몸의 굴곡을 다 없애고 나면 드디어 평평해진 일자형 몸으로 이 대지의 일부가 되어 사라지고 싶어진다. 아니,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온갖 소리들을 다 무시하고 훌훌 바람이 되어 어디론가 떠나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무언가 간절한 소망이 생겼을 때 스스로 그걸 닮아가는 것처럼, 자꾸 바람이 머문 곳에 시선이 간다. 

가을 바람이 주는 ‘상념’.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수히 많았던 길의 한 갈래들을 들춰본다. 아직도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 옹이진 마음을 쓸어보기도 하고, 그 마디마디에 내 눈물을 더 보태어보기도 한다. ‘정직만이 삶의 방식’이라 하지도 못했고, ‘한 소절’마다 ‘결구를 다지’지도 못했던 시간들. 그럼에도 삶은 늘 나를 앞으로 밀어 넣으며, 때론 ‘엇나가’게 하고 그 엇나갔던 길을 오기처럼 되돌려 놓으려는 내게 화살 하나를 아프게 날리기도 했다. 

제 몸 안에 바람 길을 들이고 나서야 온전히 바람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던 대나무처럼 텅 빈 가슴으로 계절의 오감을 바라볼 수 있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계절의 변화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까. 얼마나 많은 바람의 손길을 거치고 나서야 내 몸에 돋은 거친 마음 모서리들이 둥글게 궁굴어지는 걸까. 

햇살 좋은 양지에 앉아 오래된 대나무 숲이 품은 바람소리를 듣는다. 제 몸에 마디를 내고 허공을 내고 곁가지를 낸 대나무가 품은 바람소리에는 마디도 없고, 허공도 없고, 곁가지 하나 없다. 궁굴고 궁굴어진 소리다. 원시에서부터 지금까지, 온 우주의 내력을 다 품은 대나무 바람소리가 환절기 나약하게 드러누운 내 정신을 서늘하게 흔들어 깨운다. 이제 일어나야할 때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오래된 것들은 골목이 되어갔다』,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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