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길은 언제나 내게로 향해 있다’ 마음의숲 출판 

 

걸음을 옮겨 길 위에 설 때는
혼자여야 합니다. 
그리고 단지 걷기만 하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의식의 문이 열립니다. 
그동안 분주히 떠돌던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길이 벗이 될 때쯤이면
고향을 만나게 됩니다. 

길은 누구를 만나기 위해 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그곳에서 성찰이 이루어집니다. 
성찰이란 고독의 불빛입니다. 

-길은 언제나 내게로 향해 있다- 본문 중에서

저마다 목청을 돋우는 세상, 한걸음 뒤로 물러나 들려주는 수행자의 나지막한 읊조림이 있다. 사색이 빈궁한 시대, 우리가 되새겨야 할 화두를 챙기게 하는 청아한 새벽 도량석 독경소리를 닮았다. 삶이 묻자 길(道)이 답을 주고, 사유하자 길이 그 기쁨을 준다. 나지막하나 큰 울림이 길 위로 다가온다. 

운수납자로 떠돌다 제주 선흘리의 보리도량 ‘선래왓’에 몇 해 전 걸망을 풀어놓은 인현(법명 오성) 스님의 마음수행 산문집 ‘길은 언제나 내게로 향해 있다’가 출판됐다. 마음의숲 출판. 값 1만3800원. 

ⓒ제주의소리
타인에게 이끌리지 않고 '나 다운' 삶을 살아가는 수행자의 이야기. 제주 선래왓 인현 스님이 인생의 답을 찾는 이들에게 전하는 마음의 지도처럼 펴낸 산문집이다. 마음의숲 출판. 1만3800원. ⓒ제주의소리

이 책의 화두는 ‘길’이다. 인현 스님은 길을 두고 “누구를 만나기 위해 나 있는 것이 아니라, 길은 자신에게로 향해 있는 성찰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명사와 사색을 습(習)으로 챙기고, 습(習)으로 업을 짓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 공간이 ‘길’이다. 

저자는 사위를 가라앉히는 바람 소리처럼, 수행자의 이야기로 마음의 평안을 되찾아준다. 외로움을 벗 삼은 자신을 만나게 해준다. 외로우나 괴롭지 않은 경지에 다다른 그의 발걸음을 뒤따르는 것이 세상의 풍파를 피하는 좋은 방법임을 쉬이 눈치챌 수 있다.

제주 삼양동에서 태어난 인현 스님은 제주 구좌읍 김녕 백련사에서 우경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가야산 해인사 강원과 지리산 실상사 화엄학림에서 경전을 공부했다. 해인사 학인 시절, 해인사가 펴내는 월간지 ‘해인(海印)’의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지리산 쌍계사, 금정산 범어사, 미얀마 마하시 명상센터 등으로 걸음을 옮겨 수행 정진했다. 한때 가야산 해인사, 속리산 법주사 승가대학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제주불교사 연구활동이 전무하던 시절인 1990년대부터 학술연구모임인 제주불교사연구회를 창립해, 청년불자들과 근현대 제주불교사 연구의 주추(柱礎)를 놓기도 했다. 

인현 스님

인현 스님은 “여기, 일기장 속의 이야기들이 인연이 닿는 분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고 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삶이 곧 수행이다’라고 말씀하신 옛 어른들을 조금이라도 따라가려는 다짐이자, 자꾸만 게을러지려는 마음을 경책하는 것입니다”라고 산문집 발간의 변을 남긴다. 

이번 산문집에는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의 ‘오성스님의 편지’(2008~2011년)라는 코너에 장기 연재됐던 인현 스님의 글들이 다수 실렸다. 모든 것들이 길 위에 있고, 그 길은 우리를 향해 있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이치를 새삼 깨닫게 한다. 

입을 열기도, 닫기도 어려운 세상. 절집 수행자의 삶을 차곡차곡 기록한, 출가 사문의 첫 마음으로 우리 가슴에 새긴 글씨. 짧은 글 속의 긴 울림. 깊어가는 이 가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문집과 동행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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