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탐나는가치 맵핑(1)] 마을공동목장⑩ / 마산업·임대·목초재배로 목장 지켜가는 장전

 

무심코 지나쳤던 제주의 숨은 가치를 찾아내고 지속 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해 다양한 지역 문제나 의제를 주민 스스로 발굴해 해결해가는 연대의 걸음이 시작됐다. 지역 주민이 발굴한 의제를 시민사회와 전문가집단이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한 뒤 문제해결까지 이뤄내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젝트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와 함께하는 ‘공동기획 - 탐나는가치 맵핑’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참여라는 측면에서 매우 유의미한 연대가 될 것이다. 이번 도민참여 솔루션이 잊히고 사라지는 제주의 가치를 발굴·공유하고 제주다움을 지켜내는 길이 될 수 있도록 도민의 참여와 관심을 당부드린다.  [편집자 주]

일제강점기 제주 한라산 중산간 일대에 조성된 마을공동목장이 운영난에 따른 소위 개발 ‘큰손’의 유혹에 매각돼 절반 넘게 사라졌다. 

제주의 허파를 품은 중산간과 곶자왈의 상당 부분이 마을공동목장에 속해있거나 맞닿아 있는 상황에서 잇단 매각은 즉각 난개발로 이어지고 다시는 공동체 자산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마을공동목장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마을공동체의 자산이자, 제주도 특유의 목축경관을 간직한 보고(寶庫)로 불린다. 이 같은 마을공동목장은 2018년 제주연구원 조사 결과 10여 년 사이 약 20곳 가까이가 사라지는 등 소멸 위기에 놓인 상태다.

지난 23일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팀은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 마을공동목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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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공동목장 제주승마공원에서 초지를 거닐고 있는 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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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팀은 지난 23일 제주시 애월읍 장전공동목장을 찾아 김대석 조합장을 비롯한 목장 관계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다. ⓒ제주의소리

장전공동목장은 1935년 설립인가를 받은 마을공동목장으로 약 119헥타르(ha) 규모다. 목장용지는 지목상 목장용지, 임야, 대지 등으로 구성돼있으며 조합이 소유하고 있다.

설립 이후부터 소 방목이 꾸준히 이뤄지던 목장은 소를 방목하지 않는 등 목축환경이 변화하면서 방목이 급감, 지난 2004년 당시 북제주군의 지원을 받아 제주마 생산기지가 조성되기도 했다.

북제주군은 사업비 4억 3000만 원을 들여 장전공동목장 부지 61만 4000㎡에 마사와 퇴비장, 급수장, 관리사, 창고 등을 설치해 혈통이 등록된 제주마를 증식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장전공동목장은 마(馬)산업에 집중, 공동목장의 명맥을 이을 자구책을 마련했다. 목장부지에 마 관련 시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임대를 내줘 승마 체험을 할 수 있는 제주승마공원과 마 부산물을 활용한 제품을 만드는 마산업주식회사를 받아들인 것. 

조합은 축산 농가를 비롯한 목장 운영 전문 인력이 없어 고민하던 끝에 제주마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임대를 결정했다. 이를 통해 임대료를 받아 목장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충원하겠다는 목적이었다.

마유 화장품 등을 생산하는 회사에 목장부지를 임대한 뒤 운영 수익의 일정 비율을 임대료로 받아 수익을 창출하고 목장 면적 80%를 목초재배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임대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다.

이 밖에도 조합은 목축이 끊긴 뒤 초지를 활용하기 위해 감자재배를 시도했지만, 목장용지에 법적으로 작물을 재배할 수 없는 데다가 인근 저수지 영향으로 토양이 유실돼 5년여 만에 중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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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공동목장은 지난 2009년 림부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에 선정돼 ‘녹고뫼 안트레 안내센터’를 세웠다. 안내센터는 말 발굽 형태의 건물로 지어졌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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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공동목장 제주승마공원의 말. ⓒ제주의소리

2009년에는 농림부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에 선정, 약 18억 원을 지원받아 목장 안에 지상 2층, 연면적 658㎡ 규모 ‘녹고뫼 안트레 안내센터’를 세웠다.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과 전시실, 사무실 등이 조성돼 생태체험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더불어 안트레센터에 있는 식당을 조합이 운영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등 목장을 지켜내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했다.

김대석 장전공동목장 조합장은 “과거에는 소를 여름에 목장으로 올려보내 관리하고 겨울에는 집에 돌려보내곤 했는데 이젠 야생 목초로 사육하기도 힘들뿐더러 방목이 아닌 축사에서 기르는 사육 방식의 변화로 소를 키우는 사람이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현재 목장은 주로 말을 사육하고 경주마를 훈련시키는 등 임대를 통한 마 산업이 중심”이라며 “직접 목축하려면 조합원들이 필요한데 대부분 다른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데다 전문적인 노하우도 부족해 임대를 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목장을 유지하기 위해 직접 가축을 기르거나 부지를 활용해야 하는데 전문 인력이 없어 임대사업으로 전환했다는 설명이다. 임대사업이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장전공동목장 역시 거대 자본의 손에 넘어가 개발이 이뤄졌을 수 있었다. 

목장 아래로 평화로가 놓여 있어 접근성이 좋은 데다 제주 바다가 펼쳐진 아름다운 경관과 돌이 많이 없는 드넓은 부지는 매력적인 요소다. 이에 목장은 다양한 사업 제안과 매각 문의를 받아왔다. 

김 조합장은 “목장 매각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주도 마을목장 전체의 문제다. 운영하기 어려우니 매각 유혹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라며 “사업자들이 목장을 찾아와 부지를 매각해 달라거나 사업을 함께 하자는 등 제안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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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공동목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대석 조합장. 그는 목장이 매각 위기에 놓인 것은 장전만의 문제가 아닌 제주도 전체 마을공동목장의 문제라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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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희 전 조합장(사진 오른쪽)과 고용기 조합 재무이사. ⓒ제주의소리

이날 탐나는가치 맵핑 현장 탐방에 동석한 강덕희 전 장전공동목장 조합장은 “조합장 시절 부지를 매각해달라는 등 외부 유혹이 많았다”며 “이에 조합 내부에서는 죽기 전에 땅을 팔아 용돈이라도 쓰고 자식들에게 유산을 물려주겠다는 등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고 했다.

목장 가치가 높지 않았던 시절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공시지가가 오르는 등 토지가가 상승하면서 조합원들이 목장을 ‘재산’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것. 김 조합장은 지금도 총회를 열어 매각의 건을 상정하면 찬성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나이 드신 조합원과 상대적으로 젊은 조합원 간 의견 충돌이 있다. 젊은 사람들은 목장을 목장답게 지키겠다는 생각을 가진다”며 “이를 위해선 목장을 매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또 “조합이 마케팅이나 컨설팅을 해줄 전문 인력이 부족한 만큼 제주도가 나서서 마을목장마다의 특색을 살려 컨설팅해줬으면 좋겠다”며 “조합 자체적인 노력에 전문성이 뒷받침 된다면 목장의 명맥을 잇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전공동목장이 시대의 변화에도 목장을 유지할 수 있게 마 산업을 주력으로 탈바꿈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조합원을 설득하고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선 더 나은 수익 창출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김 조합장은 “승마공원과 마 부산물 활용 업체에 임대도 주고 있지만, 이들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 임대료는 거의 못 받는 실정”이라며 “순수익의 일정 부분을 임대료로 받기로 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했다.

조합은 임대료 수익만 기대할 수 없어 초지에다 영양소 함량과 소화율 등 사료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이탈리안 라이그라스를 재배하는 등 다른 수입원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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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안 라이그라스가 자라고 있는 목장 초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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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조합장의 설명을 듣고 있는 탐나는가치 맵핑 프로젝트팀. 장전공동목장조합은 목장 부지인 궷물오름을 방문객에게 개방하고 있다. 주차장 역시 조합 소유지만 자유롭게 차를 세울 수 있도록 열어뒀다. ⓒ제주의소리

이처럼 한라산 중턱의 목장이 개발되지 않도록 매각 유혹을 뿌리치고 힘겹게 명맥을 이어가는 조합의 노력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례를 통한 지원이나 행정의 도움은 절실하다. 

목장에 깃든 제주 가치를 보전하겠다는 조합의 노력은 인근 궷물오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궷물오름의 일부는 조합 사유지며 입구에 마련된 주차장조차도 조합이 소유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수익은 창출하지 않는다. 

되려 사유지라는 이유로 세금을 떠안고 있으며 공익적 목적으로 주차장 부지도 제공하는 만큼 세금이라도 감면하는 등 행정에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목소리를 냈지만, 여전히 변화는 없다.

고용기 조합 재무이사는 “40여 년 전 어린 시절부터 누구네 소가 목장에 있는지 알만큼 목장과 함께 자라왔다”며 “이렇게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목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제 운영의 한계에 많이 부딪히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마을 차원에서의 관리와 운영은 사실상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자본에 목장이 넘어가지 않도록 도 차원에서 부지를 수용해 개발하거나 보전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행정 차원에서 기금을 적립해 목장을 자연정원으로 만들거나 도민들에게 필요한 시설을 짓는 등 개발하는 방향이 바람직하지 개인에게 맡겨만 둬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그램은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제주 곳곳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 구글 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mapplerk3’를 내려받아 회원 가입한 뒤 커뮤니티 검색에서 ‘Save Jeju’를 검색, 가입하면 된다.

이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곳곳의 가치들을 영상과 글, 사진 등을 통해 기록하면 된다. 회원 가입을 하지 않더라도 홈페이지(mapplerone.net/savejeju)에서 공유된 가치들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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슾길을 따라 승마 체험을 하고 있는 방문객.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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궷물오름 백중제단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탐나는가치 맵핑 프로젝트팀. 조합은 음력 7월 14일마다 우마의 번성을 기원하는 ‘백중제’를 올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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