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공간 오이 연극 ‘소년과 소녀들은 어디에서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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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소년과 소녀들은 어디에서 어디로' 출연진(앞줄 맨 오른쪽부터 부지원, 강미진, 오지혜)과 작가 겸 연출 남석민. ⓒ제주의소리

극단 ‘예술공간 오이’의 신작 연극 ‘소년과 소녀들은 어디에서 어디로’는 뜻을 쉽게 알 수 없는 제목처럼 혼란스러움을 관객에게 한껏 안겨준다. 그 혼란스러움은 공연 중에 어디라도 자리할 수 있다는 시작 전 안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두 개로 나눈 공연장 입구와 일반적인 연극의 틀을 탈피한 열린 무대로 이어진다. 그런데 끝이 아니다. 등장한 두 여자 배우(강미진·오지혜)와 한 명의 남자 배우(부지원), 세 사람은 공연장 전체를 종횡무진하며 대사와 몸짓을 쏟아낸다.

‘쏟아낸다’는 표현은 공연을 받아들이는 관객 입장에서 작품에 공감하는 과정이 썩 일반적이지 않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마치 수학 공식을 풀어내는 듯 이어지는 대사, 핏대를 세우며 소리 지르는 고성, 수북이 쌓인 옷 더미와 그 안에서 골라낸 옷을 입었다 풀었다 반복하고 뛰고 그리는 동작들. 얼핏 다가오는 인상에 주목하면 작품은 행위예술을 떠올리게 한다.

쉴 새 없이 떠들고 움직이는 공간 안에서 관객은 어색하고 당황스럽다. 그러다 툭툭 던지듯 다가오는 메시지들은 퍽 진지하다.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살아있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멈추는 게 아니라면 멈춰도 괜찮아요, 되돌아가도 괜찮아요, 가더라도 ‘왜’가 중요합니다, 그냥 해요, 안되면 그냥 그만해요, 원하는 대로 가요.

과장되고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는 공연과 예술은 무엇인가, 삶은 무엇인가, 심지어 관객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들을 더욱 낯설게 만든다. 그 낯섦은 평범한 무대와 관객의 벽을 허물고, 관객이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도록 이끈다. 중반부까지 퍼포먼스 인상이 강하다면 이후부터는 짧지만 틀을 갖춘 서사로 메시지를 보다 또렷하게 전한다. 잇따른 실패에 방황하는 청년과 친구 사이의 갈등·화해, 열정을 다해 임하는 존재와 그것을 막고 통제하는 존재 간의 충돌이다.  

그렇게 공연이 끝났어도 관객은 쉽게 박수를 치거나 일어서지 못한다. 과연 끝났는지 의구심이 들만큼 무형식은 이 작품의 고유한 매력이다.

‘소년과 소녀들은 어디에서 어디로’는 남석민이 쓰고 연출한 작품이다. 극작가로서 입봉작이다. 2016년 예술공간 오이의 삼도2동 시절, 연극 ‘사슬’ 출연진으로 알게 된 남석민은 당시 강렬한 눈빛 연기로 기억에 남아있다. 이후 예술공간 오이뿐만 아니라 연극공동체 다움, 제주시 뮤지컬 아카데미, 극단 파수꾼 작품 연출 등을 통해 연극인으로 활동 폭을 넓혀가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술가들의 첫 창작은 어떤 방식으로든 주로 본인 삶을 다룬다고 알려진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는 진지한 마음, 남석민이 생각하는 예술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도발적이고 당돌하게 다가오지만 동시에 묘한 따스함이 느껴진다. 공연 말미, 남석민 연출의 외할머니 육성으로 유안진 시인의 시 '꿈길'을 들려준다. 시와 연극이 공유하는 의미, 가족이 등장한다는 형식을 포함해 여러모로 상징적인 장치다.

꿈길
유안진

결국
다른 길은 없었다
꿈길 꿈길밖에는

홀린 듯이
구미호에 홀린 듯이
따라서 가자

싫어질 땐
돌아오고
돌아오단 흐느끼며
되돌아가도 되는

버렸다가도
다시 가고 싶어지는
천형의 외길을

피눈물로 등 밝히며
목숨 걸고 가자

캄캄 내 인생의
외가닥 길을 가자

작품 속 거친 분위기는 몇 번을 반추해도 다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적어도 새로운 형식의 연극 예술을 시도한다는 점은 주목하기 충분해 보인다. 익숙하지 않을 연극에 집중하던 배우들에게는 지면을 빌려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23일 시작한 ‘소년과 소녀들은 어디에서 어디로’는 31일까지 토요일·일요일에 열린다. 시간은 오후 3시와 7시다. 관람료는 1만3000원이며 예매 시 1만2000원이다. 청소년, 예술인패스, 재관람 시에는 8000원이다. 예매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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