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쉰 네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외국인이 제주를 침범하면서 눈에 보이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중국인이 버린 차를 보면서 요약했다. 질곡의 역사의 흔적, 좀 심한 말 같지만 똥이다. 똥이 사전적 의미는 ‘찌꺼기’다.

1. 중국인 차(車)똥

중국발 한한령(限韩令)에 이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더해지면서 외국인들이 제주에 두고 간 자동차들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10월 23일 서귀포시에 따르면 제주에 체류하다 외국으로 출국하면서 소유권 이전 등록을 하지 않은 유령차량 중 올해 운행정지 명령이 예고된 차량만 70여대에 이른다. 차량 소유자의 상당수는 중국인들이다. 제주에 머물며 구입한 차량을 명의 이전 없이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운행정지 명령 대상이 될 수 있다.

현행 자동차관리법 제24조의2(자동차의 운행정지 등)에는 자동차사용자가 운행하지 않을 경우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자동차의 운행정지를 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주인을 잃은 유령차량은 고가의 수입차와 국산 차량 등 종류도 다양하다. 당국은 외국인들이 투자이민제도나 취업비자로 제주에 거주하는 과정에서 차량을 구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투자 이민제는 법무부가 지정한 부동산 투자 상품에 5억원 이상을 투자하면 경제활동이 자유로운 거주(F-2) 자격을 부여하고 5년간 투자 유지시 영주권(F-5)을 보장하는 제도다. 사드 사태 이전 중국인들의 F-2 비자 신청이 한해 570명을 넘어섰지만 지난해 상반기 신청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중국 정부의 외화 반출 제한과 코로나19 사태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외국인들의 두고 간 차량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점이다. 소유주와 연락이 닿지 않을 경우 당장 차량을 찾을 방법도 없다. 제3자가 운행할 경우 대포차로 활용될 우려도 높다. 소유주 없이 보험 가입도 불가능해 사고 발생 시 피해자에 대한 보상도 어려워진다. 올해 5월에는 외국으로 출국한 중국인 소유 차량을 명의 이전 없이 무려 11년간 운행해 온 지인이 적발되기도 했다. 해당 차량이 제주에서 체납한 과태료만 30여 건에 달했다. 서귀포시는 “명의 이전이 안된 차량은 단속에 적발되기 전까지 행방을 찾기 어렵다”며 “향후 적발시 번호판을 영치해 차량을 운행을 차단하고 직권말소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인들이 버리고 간 차(車)가 ‘중국 똥’이다.

2. 일본군 진지(陣地) 똥

2016년 8월 발간한 책 ‘일제의 흔적을 걷다’(더난출판사, 저자 정명섭·신효승·조현경·김민재·박성준) 가운데 ‘제주도 자살특공대 진지와 성산일출봉’ 부분을 소개한다. 일제강점기(1910-1945) 35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성산일출봉 해안가, 바닷가로 내려가자 콘크리트로 만든 부두가 있다. 조선시대에 육지로 보낼 말들을 실었던 곳이어서 수마포라는 지명이 붙었다. 제주도 올레길 제1코스이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오지만, 해안가에 내려가 동굴까지 살펴보지는 않는다. 콘크리트로 만든 수마포의 부둣가 끝까지 가자 해안가에 도착했다. 조금 걷다 보니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움푹 들어간 공간이 나타났고, 그곳에 우리가 찾던 것이 있었다.

한때 기세등등했던 일본은 1944년 들어 몰락의 길을 걸었다. 진주만 기습으로 격분한 미국이 본격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패배를 거듭한 것이다. 태평양전쟁 초기에 점령했던 지역은 물론 본토까지 위협받게 된 일본은 비상수단을 꺼내들었다. 바로 가미카제 특공대였다. 비행기를 몰고 미국의 함선에 자살공격을 감행하는 식으로 전세를 뒤집으려 한 것이다. 비행기를 사용하는 방식이 가장 먼저 등장하긴 했지만 비행기 숫자는 넉넉하지 않았고, 조종사를 양성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따라서 더 쉽게 만들고 간단히 조종할 수 있는 자살특공무기가 속속 등장했다. 가미카제 다음으로 잘 알려진 것은 일본 해군의 93식 산소어뢰에 사람이 직접 탑승해서 적 함선과 충돌하는 인간어뢰 카이텐이다. 합판으로 만든 모터보트에 폭발물을 싣고 그대로 목표물에 돌진하는 신요도 잘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날개를 부착해서 조종성을 향상시킨 특수 잠항정 카이류 등이 있다. 나중에는 아예 잠수복을 입은 잠수부가 물속을 걸어가 적의 함선에 접촉기뢰를 찌르는 방식의 복룡이라는 자살특공병기도 등장했다. 전쟁의 광기가 가장 소중한 존재인 사람의 목숨을 스위치로 바꿔버린 셈이다. 가미카제를 제외한 여러 자살특공병기 중 가장 쉽게 만들어지고 사용된 것은 신요다. 합판과 엔진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고, 물속을 움직이는 잠항정에 비해 조종이 간편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광기에 휩싸인 오래전의 남의 나라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직면한 역사이기도 했다. 1945년 이오지마를 뺏기고 오키나와가 공격당할 위기에 처하자 일본은 제주도의 요새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미군의 압도적인 공격력을 막아내기 위해 자살특공대 무기를 배치했다. 성산일출봉의 해안가에도 그런 전쟁의 광기가 남긴 흔적들이 있다. 해안가를 한동안 걷자 부둣가에서 보이지 않던 움푹 들어간 지형 안에 두 개의 동굴이 바닷가를 향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정확하게는 동굴진지였다. 떠밀려온 흙과 풀에 가려져 있긴 했지만 입구 주변과 내부는 콘크리트로 튼튼히 보강되어 있었다. 

태평양전쟁 말기가 되면서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린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신경을 써서 만든 것이었다. 이는 이 동굴진지가 일반적인 방어진지와 다른 목적 혹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진지 자체는 정교하게 마무리되어 있었지만 내부는 크거나 깊지 않았다. 덕분에 어떤 자살특공무기가 보관되었는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이에 관해서는 기록과 증언도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이곳에 주둔한 것은 제45신요부대였다. 엔진을 단 모터보트에 폭탄을 장착해 적선에 자폭하는 신요를 담당하는 부대였다. 당초에는 가이텐, 카이류 같은 다른 자살특공무기들도 배치될 예정이었지만, 실제로 부대가 편성되고 배치된 것은 신요가 유일했다. 일본은 147개 신요부대를 편성하여 일본 전역과 오키나와, 대만과 제주도 일대에 배치했다. 제주도에 배치된 신요부대는 모두 세 개였다. 제45신요부대는 성산일출봉에, 제 119신요부대는 삼매봉에, 제120신요부대는 수월포에 배치되었다. 각각 제주도의 동쪽, 남쪽, 서쪽에 자리 잡은 셈이었다. 이는 실제로 일본이 예측한 미국 상륙지점과도 일치했다. 

그중 가장 먼저 실전에 배치된 부대는 성산일출봉 동굴진지에 있던 제45신요부대였다. 이 부대에는 제주도에 배치될 100여 척의 신요들 중 절반이 배속되었다. 성산일출봉의 동굴진지 공사는 일본 해군 시설부에서 맡았지만 실제 굴착과 시공을 맡은 것은 모두 조선인들이었다. 현지 주민들은 물론, 육지에서도 끌려와서 강제노역에 시달려야만 했다. 주로 굴착을 해본 경험이 있는 전라도 지역의 광부들이 강제로 끌려왔다고 전해진다. 공사는 성산일출봉의 해안가 절벽을 따라 진행되었다. 절벽과 물이 만나는 곳, 즉 물이 차면 닿는 곳에 7미터 정도 굴착을 하고 지붕과 벽을 콘크리트로 보강했다. 이곳에 배치된 신요1형은 길이가 5미터가 조금 넘었기에 충분히 보관이 가능했다. 그리고 안에는 두 바퀴가 달린 리어카 비슷한 것을 두고 그 위에 신요를 실었다. 그리고 그대로 사람이 바다까지 밀어서 띄웠는데,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동굴진지와 바닷가까지 시멘트로 일종의 도로를 만들어 두었다. 합판으로 만들었기에 사람이 밀고 가는 게 가능했다. 성산 앞바다에 적이 나타나면 바로 출격해서 공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죽음을 불사한 각오와 달리 현실은 초라했다. 제 45신요부대가 제주도에 배치된 것은 1945년 4월이었다. 그때는 아직 공사도 끝나지 않았고, 기반시설도 마련되지 않았던 것이다. 바닷가에서 진행되는 작업이라 물이 들어오는 동안은 일을 하지 못했고, 별다른 장비가 없어 모든 공정을 사람 손으로만 해야 했다. 제주도에 온 신요부대 병사들은 임시로 움막을 짓고 지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해안가의 동굴이라 전기 장치의 부식이 심하게 일어났다는 점이다. 결국 그들은 신요를 동굴진지에 넣어두는 대신 해안가 모래밭에 엎어놓고 위장을 해두어야 했다. 신요의 최대 장점인 빠른 준비가 불가능해져버린 것이다. 성산일출봉에 배치된 신요는 요카렌들이 조종하기로 되어 있었다. 해군비행예과연습생의 줄임말인 요카렌은 늘어나는 비행기 조종사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일정 이상의 학력을 갖춘 지원자들을 뽑아 속성으로 훈련시킨 후 임명한 부사관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태평양전쟁 말엽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차출되었는데, 이들을 태울 비행기가 부족해지자 신요의 조종 임무도 맡게 되었다. 어디 이뿐인가. 일본군 진지에 숨겨진 숱한 사연들이. 제주도내 숱한 진지(陣地)굴이 ‘일본군 똥’인 셈이다.

사진=픽사베이.
필자가 어렸을 때 지금은 신화역사공원으로 변해버린 고향 서광리 빈독나물 들판에서 쇠똥을 주워서 말려 온돌 불을 땐 아련한 추억도 있다. 몽고군 ‘소말(牛馬) 똥’이다. 제주의 지정학적(地政學的, Geopolitical))인 숙명인가? 밀려오는 관광객의 똥은 어떻게 할고? 사진=픽사베이.

3. 몽고군 소말(牛馬) 똥

민둥산 제주 오름, 언제부터 민둥 오름인가? 똥을 건조시켜 땔감으로 쓰는 몽고와 제주의 같은 온돌 불 풍속은 몽고가 제주를 점령한 1273년부터다. 한라산이 화산 폭발 후 탐라 원시림(原始林)은 사라지고 목장 지대 초지(草地)가 조성 되면서다. 

서기 1105년 탐라가 고려에 복속된 이후에 등장한 명칭이 제주. 원(元)이 고려를 침공한 이후(1273-1373), 이 제주섬에 기동력의 기반인 군마(軍馬) 생산을 위한 목장을 건설하면서 탐라총관부(耽羅摠管府)를 설치, 군마생산을 독려하는 총독부를 설치한 것이다. 요즈음 말로 하면, 전쟁 무기를 생산하는 병참 기지를 건설한 셈이다. 탐라는 원나라의 군마 생산용 식민지로 전락했다. 동시에 원은 고려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설치하였다. 물론 화전민에 의한 산림 피해도 있었지만 우마(牛馬)의 초지 조성으로 오름이 민둥오름이 됐다. 촐밭과 오름 등지에 쇠와 말들이 싼 똥을 말려 온돌(굴묵) 땔감과 지슬 밭에 거름으로 사용하는 제주 풍속은 몽고에서와 마찬가지다. 1950-1960년대, 필자가 어렸을 때 지금은 신화역사공원으로 변해버린 고향 서광리 빈독나물 들판에서 쇠똥을 주워서 말려 온돌 불을 땐 아련한 추억도 있다. 몽고군 ‘소말(牛馬) 똥’이다. 제주의 지정학적(地政學的, Geopolitical))인 숙명인가? 밀려오는 관광객의 똥은 어떻게 할고?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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