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권포럼] 화해-통합 균열 일으키는 배제된 4.3희생자, 명예회복 필요

28일 열린 '2021 제주인권포럼'에서 진행된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주관 '인권 실현을 위한 4.3운동의 과제-배제된 기억에서 내일의 역사로' 4.3세션. ⓒ제주의소리

"4.3의 희생자는 4.3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하거나 후유장애로 사망한 사람들입니다. 무장대이든, 군경이든, 부녀자이든, 아동이든, 그들은 모두 여기에 해당하며 평화공원에서 안식을 취할 자격을 갖습니다."

"단지 '빨갱이'라는 누명이나 어명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명예회복이 아닙니다. 원래의 명예를 되찾는 것이 진짜 명예회복입니다. 4.3희생자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무고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친일을 처단하고, 분단을 반대하고, 거대한 음모에 맞서 공동체를 지키다 희생된 것입니다."

"공동체의 재생과 공존을 모색하려는 시도는 오직 '희생자' 자격을 획득한 이들에게만 허용됐습니다. 의도적으로 입을 다물어 버리는 사람들의 출현을 피할 수 없게됐고 비(非)희생자들은 점점 유령화 됐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4.3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작업이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제도권에서 '배제된' 이들은 여전히 그늘에 가려져 있다. 4.3당시 무장대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위패가 철거돼 희생자에서 제외되거나, 4.3으로 인해 장애가 생겼으나 증거 부족을 이유로 후유장애가 불인정된 이들, 여러가지 이유로 미신고된 희생자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명백한 4.3의 피해자임에도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여전히 소외된 채 4.3의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28일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열린 '2021 제주인권포럼'에서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주관한 4.3세션은 '인권 실현을 위한 4.3운동의 과제-배제된 기억에서 내일의 역사로'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4.3희생자에서 공식적으로 배제된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다.

허호준 한겨레신문 선임기자가 좌장으로 나선 가운데, 고성만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양성주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무처장, 김은희 제주4.3연구소 연구실장, 김경훈 시인, 김석윤 제주공공정책연구소 나눔 소장 등 5명의 토론자가 의견을 개진하고, 자유토론이 이뤄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고성만 교수는 "4.3에 연루됐던 모든 인명 피해자가 희생자로 공식화되지 못하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가 하나의 국민국가 체제 속에 수렴되기 어려운 현실은 '화해'와 '통합'과 같은 미사여구의 실체를 폭로하고, 국민적 기억을 구성하려는 기획에 균열을 일으킨다"고 희생자와 비희생자로 나눠진 현실의 문제를 꼬집었다.

고 교수는 "누가 진정한 희생자인가를 둘러싼 알력과 대립은 종식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일련의 선별과 배제, 동일화와 차이와 과정에서 치열한 길항 관계가 재연될 것"이라며 "배타적인 선 긋기 논리에 입각한 과거청산 프로그램과 희생자 정책은 정부 공인 '희생자'와 거기서 배제된 이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불평등 문제에도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28일 열린 '2021 제주인권포럼'에서 진행된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주관 '인권 실현을 위한 4.3운동의 과제-배제된 기억에서 내일의 역사로' 4.3세션. ⓒ제주의소리

양성주 사무처장은 "가해자의 처벌을 불문에 부치는 것처럼 희생된 사람에 대해서도 이유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을 4.3희생자로 결정해야 한다. 그렇게 돼야 진정한 화해와 상생의 틀이 마련될 것"이라며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는 기간에 예외 없이 부당한 것이며, 이로 인한 피해가 있다면 반드시 피해회복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권리가 아닌 의무"라고강조했다.

그러면서 "4.3사건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넓히거나 희생자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4.3특별법 조항에 4.3기간 범위 밖이라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할 수 있는 근거, 또 연좌제 등에 대한 피해 진상을 별도로 조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은희 연구실장은 "정부는 4.3의 배경에서 당시 4.3을 주도했던 인물들에게 이념의 굴레를 씌워 4.3희생자 선정 과정에서 배제했다. 신고했다가 철회한 것으로 확인된 사람만 10명으로, 이들의 가족들은 우익단체의 공격이나 정부로부터 받은 상실감 때문에 4.3 이후 더한 상처로 인한 고통을 드러내기조차 꺼려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4.3의 완전한 해결 과정에서 양산된 또 다른 해결 과제인 '배제된 4.3희생자'는 결국 4.3의 정의, 정명과 연결돼 있다"며 "어디선가 누구인가는 어둠에 가려져 헤아리지 못하는 그늘이 4.3에서는 없도록 국가가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경훈 시인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4.3에서 배제된 비희생자들을 '죽음에도 기준이 있느냐. 차 떼고 포 뗀 채 의義도 없고 영靈도 없고 명예도 없는'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4.3때 양민들이 억울하게 아무런 이유 없이 죽었다는 고정된 인식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며 "4.3희생자들은 제주도민을 몰살하려는 거대한 음모에 맞서 제주공동체를 지키다 희생된 것으로, 명예로운 이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석윤 소장은 4.3관련 연구논문을 인용해 "평화와 인권을 강조하면서도 대한민국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국가적 차원에서의 좌익은 여전히 은폐되거나 억압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특히 좌익의 배제는 평화와 인권의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내용"이라며 "좌익의 배제와 우익과 양민의 공존은 평화의 섬 제주가 대한민국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분석했다.

김 소장은 "현재로서는 제주4.3사건에서 사망한 사람 또는 제주4.3사건과 관련해 사망에 이른 사람을 4.3사건의 희생자로 규정해야 한다. 더구나 분단된 국가에서 남로당이 불법화됐다고 하더라도 남로당원은 본래적으로 범죄인이 아니므로 그들을 평화공원에서 흔적조차 제거해버릴 권한이 국가에게는 없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