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실패박람회 in 제주] 민복기 제주시소통협력센터장 “문제 해결의 접점은 관계에서 시작”

초등학생들의 온종일 돌봄,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모를 해양폐기물. 우리 곁에 존재하는 각종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은 각자 위치에서의 진정성 있는 노력, 그리고 이해 당사자 간의 ‘관계 맺기’에서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제주지역사회혁신 지원 협의체, 제주도, 제주시 소통협력센터가 주관한 ‘2021 실패박람회 in 제주’가 28일 오후 제주시 소통협력센터에서 열렸다.

<br>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제주지역사회혁신 지원 협의체, 제주도, 제주시 소통협력센터가 주관한 ‘2021 실패박람회 in 제주’가 28일 오후 제주시 소통협력센터에서 열렸다. ⓒ제주의소리

이날 행사는 지난 7월부터 4개월에 걸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해온 실패박람회를 마무리하는 자리다. 실패사례 콘텐츠 공모전 시상식을 시작으로 ▲가수 겸 요조의 강연 ▲반려동물 장묘서비스 발표 ▲초등학생 온종일 돌봄 공간 발표·토론 ▲해양폐기물 처리 발표·토론 ▲강평 순으로 진행됐다.

제주에 없는 반려동물 장묘서비스, 경력단절 위기가 가장 높다는 저학년 초등학생 돌봄, 규정부터 현실까지 막막한 해양폐기물. 실패박람회에서 소개된 사회문제들 모두 만만치 않은 숙제를 안고 있다. 참가자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점을 각자 공유했다. 다른 사안이지만 네트워크를 통한 소통이 절실하다는 점은 동일했다.

# 반려동물 장묘 서비스

제주대학교 수의학과 재학생·졸업생들이 모인 스타트업 ‘다만너’의 박환훈 씨는 자신들이 준비하는 반려동물 장묘 서비스를 소개했다.

만약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으면 타 지역의 경우 장묘 서비스업을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제주는 사체를 마땅히 처리할 곳이 없다. 그래서 폐기물 처리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쓰레기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곤 한다.

ⓒ제주의소리
스타트업 ‘다만너’의 박환훈 씨가 사례 발표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박환훈 씨는 “제주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반려동물이 급증하는 추세이고, 설문 조사에서도 반려동물 장례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압도적이다. 시장성은 충분하다”라면서 “다만, 원희룡 전 지사가 민선 7기에서 동물장묘시설을 추진하다가 주민 반대로 실패한 경우처럼, 실무적인 문제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물건조장 방식을 제안했다. 동물건조장은 기존의 소각방식이 아닌 고온, 고압, 건조, 분쇄 공정을 통한 저비용 사체 처리 방식이다. 마이크로 웨이브를 사용해 필요한 연료도 관행보다 95% 절감할 수 있다. 특히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촌진흥청이 인증한 방식이며, 동물보호법에도 부합한다.

여기에 타 지역 업체와의 차별성을 위해 ▲3D 프린팅으로 반려동물 인형 제작 ▲수목장·납골당 도입 ▲장기적으로 반려동물 테마파크 구축 등을 제안했다.

박환훈 씨는 “요람부터 무덤까지라는 말처럼 반려동물의 생애주기를 반영하는 것은 수의사로서 직업적 소명이기도 하다”라며 “제주지역에 생소한 반려동물 장묘 문화를 정착하기 위한 것이 수의사로서 숙명”이라고 강조했다.

ⓒ제주의소리
왼쪽부터 최진 모더레이터, 김영지 이사장, 강순열 센터장. ⓒ제주의소리

# 초등학생 돌봄 서비스 

다음 사례발표 주제는 ‘초등학생 돌봄 서비스’다. 최진 제주시 소통협력센터 모더레이터, 김영지 경력잇는여자들 이사장, 강순열 피어나리 다함께 돌봄센터 센터장 등이 현장에 참석했고, 임혜순 커뮤니티컨설팅 꾸림 대표는 강원도 춘천에서 온라인으로 함께했다.

발제를 맡은 김영지 이사장은 출산·육아를 겪는 직장인 엄마들의 가장 큰 경력단절 위기가 ‘초등학교 입학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유는 ▲저녁 돌봄 여건 부족 ▲학업 격차 ▲자녀의 정서적 문제 우려 등이다. 

김영지 이사장은 “여기에 코로나 시국까지 겹치면서 거의 대부분의 엄마가 초등학교 입학을 전후로 직장을 그만둔다. 양질의 직장이어도 최소 육아 휴직을 선택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설명했다.

경력잇는여자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마들이 자녀들을 서로 돌보는 돌봄 공간 ‘수눌당’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공동 돌봄 활동을 가지면서 경로당 방문, 할머니 초청 이야기 듣기 같은 지역 공동체와의 소통까지 더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김영지 이사장은 “경력 단절 엄마들은 시간제 근무라도 하면서 경력을 유지하길 원한다. 이런 측면에서 기업과 엄마들을 연결해주는 코어워킹제를 제안해본다”고 밝혔다.

서귀포에 위치한 ‘피어나리 다함께 돌봄센터’는 올해 7월 문을 열었다. 오전 9시부터 시작하는데 30분 먼저 부모들이 찾아와 기다릴 만큼 지역 사회에 호응을 받고 있다.

강순열 센터장은 “피어나리 돌봄센터는 학교와 학원의 연장이 아닌 가정의 연장이라는 운영 기준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유익한 식사, 맛있는 간식을 제공하고 또래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서로 즐겁게 관계 형성을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고 설명했다.

ⓒ제주의소리
초등학교 돌봄 사례 발표 모습. 영상 화면 속 토론 참여자는 임혜순 커뮤니티컨설팅 꾸림 대표다. ⓒ제주의소리

그러면서 “부모와 아이들 모두에게 만족도 조사를 한다. 부모들은 처음에 안전한 공간에서 돌봄하는 것만으로 충분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하더라.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학교와 학원에서 공부는 충분히 했으니 돌봄센터에서는 친구들과 뒹굴면서 신나게 노는 것을 원한다”면서 “물론 센터도 학교 준비물을 확인해 부모에게 알려주거나 간단한 숙제를 미리 하는 서비스는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센터장은 공공 기관에 대한 건의 사항으로 “지금도 서귀포시청, 보건복지부 등에서 많은 배려를 해줘서 인력을 지원받는다. 문제는 이런 좋은 사업들이 방학 이전에 대부분 끝나버린다. 방학 기간에 센터를 찾는 아동 숫자와 이용 시간 모두 2배로 늘어나는데 인력은 줄어드는 셈”이라고 개선을 촉구했다.

임혜순 커뮤니티컨설팅 꾸림 대표는 춘천 지역에서 돌봄 활동을 이어가는 공동체 사례를 소개했다. 임혜순 대표는 “춘천사회혁신센터의 시범 사업에 참여하는 돌봄 공동체 6곳 가운데 사업을 계기로 새로 만든 경우는 1곳에 불과하다. 이들은 ‘우리가 해온 활동을 사회가 인정해줘서 지원하는 구나’라는 큰 용기와 만족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돌봄 활동은 신뢰만 가지고는 확장 가능성을 장담하지 못한다. 나름의 규칙을 정하는 노력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면서 “현실적인 벽에 부딪치는 경우도 있기에 코디네이팅 할 수 있는 기관·단체가 있다면 각각의 돌봄 공동체를 연결시키고 확장하는 기대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제주의소리
왼쪽부터 이경호 모더레이터, 전장원 대표, 강진영 연구위원, 변수빈 대표. ⓒ제주의소리

# 해양폐기물 처리

‘해양폐기물의 처리 및 자원순환체계 마련’ 사례 발표 겸 토론회에는 이경호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모더레이터, 전장원 플로빙코리아 대표, 강진영 제주연구원 연구위원, 변수빈 디프다제주 대표가 참석했다. 일정 상 원종화 포어시스 대표는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플로빙코리아, 디프다제주 모두 제주에서 해양 활동을 가지면서 쓰레기 수거도 병행하는 민간단체다. 포어시스는 해양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7년 창업한 신생 기업이다.

참가자들은 각자 보고 느낀 제주의 해양폐기물 문제를 나누며, 해결 방법까지 모색했다.

전장원 대표는 “쓰레기 수거 봉사활동을 하면서 어촌계의 이중성을 느끼곤 한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곳도 있지만, 반대로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해양폐기물과 관련한 행정의 지원 사업 때문이 아닌지 의심된다”면서 “정방폭포를 올려다보면 무척 아름답다. 하지만 폭포 바깥으로 조금만 돌아가서 바닷속을 보면 수십 년은 족히 쌓였을 쓰레기 퇴적층이 존재한다”고 냉정한 현실을 꼬집었다.

더불어 “해양폐기물 수거 봉사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제법 많다. 나도 울컥한다. 바다 속에서 보이는 쓰레기가 한두 개를 줍는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어촌계 분들도 의심의 눈초리 보다는 함께 협력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변수빈 대표 역시 “어촌계나 해녀분들에게 쓰레기 봉사활동이라고 설명해도 ‘우리 바다’라며 막거나 꺼려하는 경우를 자주 만난다. 읍면사무소 역시 지침이 없으니 최소한의 쓰레기 처리 비용도 지불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차라리 쓰레기 봉사를 하지 말라고도 한다”는 안타까움을 전했다.

변수빈 대표는 “언젠가 환경부 장관을 만난 적이 있는데 해양폐기물 자체가 시작과 끝이 다르나보니, 모든 부처가 연결돼 있어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장관마저 이렇게 말하니 현장에서 봉사하는 우리도 막막했다”면서 “그럼에도 하나하나 해나가는 방법 밖에 없지 않나. 행정은 최소한의 지침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해양폐기물 가운데는 의료폐기물 같은 처리 곤란한 경우도 많다”고 강조했다.

ⓒ제주의소리
해양쓰레기 처리 사례 발표 모습. 영상 화면 속 토론 참여자는 원종화 포어시스 대표다. ⓒ제주의소리

강진영 연구위원은 자신이 2013년 진행한 해양폐기물 연구를 바탕으로 정책 조언을 전했다. ▲동서남북을 나뉜 제주 지역 여건에 맞는 해양폐기물 처리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참여해 대안을 만들어내는 위원회 구성 ▲기업·민간이 특정 구역의 해양쓰레기를 관리하는 ‘섹터 처리’ 도입 ▲관련 정책 수립에 있어 모니터링 이상으로 수거 작업 중요 ▲국가적으로 해양폐기물 중점 해안 선정해 모니터링·수거 정책 수립 ▲민간 봉사단체들 지원할 지침 마련 등이다.

특히 강진영 연구위원은 제주 지형에 대해서 “제주 동쪽과 서쪽은 해류 영향을 받고, 남쪽과 북쪽은 하천 영향이 크다. 동쪽은 여름철 파래, 서쪽은 조류를 타고 오는 해외 폐기물, 남북 쪽은 생활폐기물과 빗물에 쓸려오는 초목 비중이 크다”라며 “이런 특성에 맞게 동쪽은 파래를 바로 없앨 처리시설이 필요하고, 서쪽은 해외 폐기물이 많으니 재활용 시설이 들어가야 한다. 남북 쪽은 초목류, 생활쓰레기를 우선 건조시켜야 한다. 그래야 이후 소각하거나 매립이 가능하다”라고 맞춤형 대안을 제시했다. 

원종화 대표는 “해양폐기물로 만든 상품이 최근 잘 팔리니 역효과도 나타난다. 오히려 외국에서 쓰레기를 수입하려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국내 다수의 회사들이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부처 간의 벽도 여전하다. 해양폐기물 문제는 어려운 현실이지만 이해관계자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대하면 좋겠다”면서 “제주에서 해양폐기물 처리를 위해 부서 간의 벽을 허물고 대안을 만들면 전국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특히 “2017년 제주도청을 찾아서 담당자에게 두 마디를 들었다. ‘어디 출신인가요?’ 그리고 ‘내려오셨는데 제가 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없다’였다. 당시 제주가 내가 아는 것과 많이 다르다는 점을 실감했는데, 해양폐기물 처리 기술을 많이 개발해서 다시 찾아간 최근에도 반응은 2017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제주라는 공간이 가진 문제들을 해결함에 있어, 제주 안에서 외부 사람이라고 외부 기술이라고 배척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뼈 있는 조언을 남겼다.

실패박람회 총평에 나선 민복기 제주시 소통협력센터장은 “사례발표들을 보면서 사회 문제의 해결은 관계에서 시작한다고 느꼈다. 법을 개정하고 지침을 만들고 주민과 활동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돼야 한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다. 민관 모두 각자 역할을 조금씩 시도하다보면 양쪽이 만나는 접점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남겼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