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댁, 정지에書] (31) 안일수 어르신(1955년생)의 메밀음식이야기 ②

밥이 보약이라 했습니다. 바람이 빚어낸 양식들로 일상의 밥상을 채워온 제주의 음식은 그야말로 보약입니다. 제주 선인들은 화산섬 뜬 땅에서, 거친 바당에서 자연이 키워 낸 곡물과 해산물을 백록이 놀던 한라산과 설문대할망이 내린 선물로 여겼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김진경 님은 제주 향토음식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입니다. ‘제주댁, 정지에書’ 시즌1에서 소개된 지난 1~25회 원고는 제주의 음식들을 하나씩 소개하는 서술이었습니다. 이어 ‘제주댁, 정지에書’ 시즌2로 마련된 26회 원고부터는 제주의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매월 한 분의 삶을 풀어낸 글을 격주로 소개하면서 그 속에 DNA처럼 배어있는 제주음식 이야기를 함께 교감하려 합니다. 인터뷰에는 일러스트 작가 '色色님'도 동행해 현장에서 영감을 찾아낸 아름다운 삽화도 매회 선사합니다. 할망 하르방이 들려주는 제주인의 삶과 제주음식에 깃든 지혜를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글]

안일수 어르신의 삶의 터전은 제주시내이다.

하지만 어르신의 마음의 터전은 고향인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이다. 이는 어르신의 공간, 즉 어르신이 꿩메밀칼국수를 파는 식당에 걸린 액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안개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듯한 메밀꽃밭의 사진과 벚꽃과 유채가 만개한 봄날의 가시리 사진액자는 제주시내에 있어도 마치 따뜻한 봄과 시원한 가을, 가시리로 여행을 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식당에 걸려있는 표선면 가시리 녹산로 사진에는 유채꽃와 왕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봄의 전경이 절정이다. /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어렸을 적 어르신이 살던 집은 우리가 사진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제주 옛집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한다. 대나무 울타리와 동백나무가 둘러싸고 있는 그 집은, 아침마다 동백나무에 동박새가 찾아와 짹짹거리곤 했는데, 그러면 그 예쁜 새소리에 소녀시절 어르신은 기분 좋게 잠이 깨어났다고 한다. 

어릴 적 어르신 댁에서는 밭농사를 꽤 크게 지었기 때문에 마소를 많이 길렀다. 말과 소는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노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특히 제주도 농촌에서는 가장 중요한 가축이자 농사도구였다. 나는 혹시 마을에 테우리가 있었는지 어르신께 여쭈어보았다. 보통 농사를 시작하기 전, 테우리가 말과 소를 몰고 땅을 밟도록 하는 것을 ‘바령밟기’라고 하는데 뜬 땅을 단단하게 다져서 씨앗이 잘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또, 마소의 분뇨는 흙에 훌륭한 영양분을 제공한다.

그런데 안일수 어르신 댁은 따로 테우리를 부른 적은 없다고 하셨다. 가족이 직접 마소들을 몰고 다니면서 밭볼리기를 하셨다고 한다. 쉐막도 가족들이 모두 함께 관리했다. 농사가 곧 가족의 생업이었기 때문에 가족의 일원이라면 불평없이 당연히 손을 보탰다. 그 것이 그 당시 제주사람들의 삶이었다. 어르신의 친정집에는 돗통시가 2개 있었는데 어르신 오빠의 가문잔치 때는 12마리의 돼지를 잡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무려 돼지 14마리와 소 1마리를 잡아서 상을 치렀다 한다. 이제까지 어르신들이 잔치나 영장때 잡았다고 하신 돼지 마리 수 중 단연 최고였다. 돼지 14마리와 소 1마리라……. 어르신 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영장 먹으러 왔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어르신은 가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표선중학교로 진학하셨는데 그 당시 표선중까지 가는 버스요금이 10원이라는 기억이 또렷하다고 하신다. 그나마 사정이 좋으면 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걸어서 등하교하는 경우도 많았다.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해서 집안 살림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특히 밭일을 하러 오는 분들에게는 안일수 어르신이 음식을 직접 준비해 두고 등교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보리밥에 쌀을 조금 넣어 반지기밥을 안치고 양애를 무쳤다. 토란으로 국을 끓이고 갈치젓이나 자리젓을 짠짠하게 준비해두고 등교를 했다고 한다. 두 아이를 기르는 워킹맘인 나도 바쁜 아침에 아이들 아침 챙기는 것이 가끔 힘에 부친데, 중학생 소녀가 일꾼들의 밥을 준비해놓고 등교를 했다니,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어르신의 아버님은 생전에 곤밥(쌀밥)을 참 좋아하셨는데, 그래서 어르신댁에는 아버지를 위한 곤밥을 안치는 밥솥이 따로 있을 정도라고 한다. 아버님은 멜젓과 자리젓도 좋아하셨는데 해안지방이 아니기 때문에 자리젓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머니나 어르신이 8km가 넘는 표선장까지 장을 보러 다녀오셔야 했다. 장에 갈 때는 집에서 수확한 보리쌀을 들고 가는데, 이 보리를 멜이나 자리와 맞바꾼다. 또 고무신이 헤지거나 학용품이 필요할 때도, 역시 수확한 작물들을 가지고 표선장으로 간다. 그러면 새 고무신이나 운동화, 혹은 공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당시 제주 분들은 그렇게 집에서 수확한 것들을 가지고 장에 가서 삶에 필요한 도구와 물건들로 바꿔왔다. 그래서 아마도 그 당시 어르신에게 시장은 공부할 수 있는 학용품을 구할 수 있는 행복한 장소였을 것이다. 그래서 편도 8km의 시장가는 길이 전혀 멀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안일수 어르신이 운영하는 꿩메밀국수집 ◯◯식당. 어르신의 아뜰리에 같은 공간이다. 제주시 이도1동 소재, 중앙로상점가에서 동문시장으로 향하는 시장 골목 안에 있다. /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꿩메밀국수는 요즘 꿩메밀칼국수라고 부른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에는 꿩메밀칼국수를 파는 곳들이 제법 있었는데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다. /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어르신의 친정댁은 가시리에서 정미소도 운영했었다고 한다. 이때도 곡식은 훌륭한 화폐의 역할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정미소에 와서 곡식을 빻는 대가를 보리나 조로 치르곤 했다고 한다. 어르신의 이런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니 당시 상거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화폐보다는 제주의 주곡(主穀), 즉 조와 보리였던 것 같다. 

어르신의 말씀에 따르면 예전에 제주 사람들은 기름(식용유)이라고 하면 당연히 유채기름을 떠올렸다고 한다. 지금은 유채기름을 짜 주는 방앗간이 거의 없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촌에서는 유채기름을 짜 주는 방앗간이 있었다고 하는데, 갓 지은 밥에 갓 짜온 유채기름을 둘러서 비벼 먹으면 그 맛은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고 한다. 지금 젊은이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시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돗지름(돼지기름)을 녹여서 단지에 담아두고 그 돗지름으로 빙떡도 지지고 다른 요리에도 이용했다. 그 돗지름으로 지진 빙떡은 지금 콩기름을 둘러 지져낸 빙떡하고는 차원이 다른 맛을 냈다고 하는데, 그 빙떡을 옥돔과 함께 먹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고 한다.

어르신 댁의 식게에는 주로 곤밥에 옥돔과 무를 넣은 옥돔뭇국을 올리셨다. 옥돔구이가 자주 올라가긴 했지만 시장에 좋은 생선이 들어오면 옥돔 대신 다른 생선을 올리기도 했다. 메밀을 많이 재배했던 마을이기 때문에 메밀묵은 늘 올렸는데 메밀가루로 쑨 묵이 아니라 메밀쌀로 만든 청묵을 올렸다. 청묵은 메밀쌀을 자루에 넣고 물에 담가 주물러 전분을 우려내어 만드는데, 보통의 메밀묵과 달리 묵이 완성되면 반투명한 색감이 된다. 청묵은 일반 메밀묵보다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에 청묵을 메밀묵보다 더 좋은 음식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름철에는 청묵이 잘 쉬어버리거나 흐물흐물해질 수 있어서 겨울보다는 좀 더 되직하게 묵을 쑤어야 한다. 어르신은 메밀묵틀에 참기름을 넉넉하게 바르고 잘 쑤어진 메밀묵을 틀에 부었을 때 그 꾸덕하게 흘러내리는 묵직한 느낌만으로도 메밀묵이 잘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고 하셨다. 

옛날 어른들은 다 이렇게 묵을 만드셨다. 이렇게 만든 묵은 지금 마트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묵과는 완전히 다른 맛을 낸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해녀이신 외숙모가 나에게 해준 말씀이 문득 생각났다. 우미무침을 만들려고 마트에서 우미(우무묵)를 사야겠다고 하자, 숙모께서는 마트에서 파는 우미는 너무 흐물거려서 별로라며, 우미(우뭇가사리)를 직접 끓여 우미(우무묵)를 만들어야 제대로 된 식감의 우미무침이 된다고 하셨다. 

어르신은 메밀쌀을 정고레(맷돌)로 갈고 마지막에 체로 쳐서 남은 걸로 누룩도 빚으셨다고 한다. 체로 쳐서 남은 것, 그것을 제주도에서는 는쟁이(혹은 느쟁이)라고 하는데, 그 는쟁이로 범벅을 만드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누룩을 만들었을 줄이야! 이제껏 내 머릿속에 제주의 누룩은 오직 보리로 만든 것이었다. 이렇게 또 ‘메밀누룩’이라는 새로운 식재료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니, 새로운 식재료가 아니다. 옛날부터 있었지만 내가 여태껏 몰랐던 식재료가 나에게 왔다. 

메밀로 많은 음식을 만들어 오랫동안 먹어왔던 어르신의 DNA에는 분명 ‘메밀’이 깊게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장에 가기를 소풍가는 것만큼이나 좋아했던 어르신이 평생동안 경험해온 다양한 제주 식재료와 음식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제주전통시장 한편에 자리잡은 어르신의 식당은 식당이라기보다는 어르신의 아뜰리에처럼 보인다.

어르신은 이제껏 식당일을 하면서 한 번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즐겁게 일했다고 하신다. 그래서 어르신의 아뜰리에로 들어서면 행복한 에너지가 듬뿍 담긴 작은 가시리 마을을 음식 한 접시로 만날 수 있다.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보름코지 빌레왔(왓)디.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해석 : <바람받이 너럭바위로 왔지>

한라산엔 눈내리고 저바다에
절쎄었다 동백나무엔 빨갛게 불 붙고
큰대나무밭엔 바람소리 고망독새(굴뚝새)
쩍쩍울고 동박생이(동백꽃새)는 쨍쨍운다
우리아빠 우리엄마
살아생전에 고생고생해서
바람받이 돌땅밭에
정을들며 살아왔네
이고장이 살곳이라고 마음정하니
살아서 고맙수다 고맙수다
진정 참말로 고맙수다
아빠엄마 엄마아빠
진정 참말로 고맙수다

절세었져 : 바다 속에서 물들이 출렁이며 부딪히는 소리가 목탁 소리처럼 들릴 정도로 세다(가파도 김영남 해녀의 말 인용)

어르신의 가게에는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고향의 풍경과 시구절이 나란히 있다. 오래된 제주어라 정확히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리움이 잔뜩 뭍어있었다. 일러스트=色色. ⓒ제주의소리
어르신의 가게에는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고향의 풍경과 시구절이 나란히 있다. 오래된 제주어라 정확히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리움이 잔뜩 묻어있었다. 일러스트=色色. ⓒ제주의소리

햇수가 거듭되고 삶의 경험이 반복되고 반복되어 터득한 제주음식의 깊이를 이제 갓 불혹이 된 내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있을까? 안일수 어르신과 나눈 제주음식, 메밀음식 이야기를 통해 나는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제주음식과는 또 다른 차원을 연 느낌이었다.

# 김진경

20대에 찾아온 성인아토피 때문에 밀가루와 인스턴트 음식을 끊고 전통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떡과 한과에 대한 공부를 독학으로 시작했다. 결국 중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던 일도 그만두고 전통 병과점을 창업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제주전통음식으로 영역을 확장해 현재 베지근연구소의 소장을 맡아 제주음식 연구와 아카이빙, 제주로컬푸드 컨설팅, 레시피 개발과 쿠킹랩 등을 총괄기획하고 있다.

현재 제주대학교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을 밟으며 제주음식 공부에 열중이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 어멍의 마음으로 제주음식을 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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