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46)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사람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바농 : 바늘(針)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무슨 일을 같이하거나 함께 여행을 하거나, 돈을 벌 목적으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 사업을 벌이게도 된다. 그러니 ‘인간’이란 말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뜻하는 것이다.

열 질(길) 물속은 알아도 혼 질(한 길) 사름 속은 모르는 법. 심성이 제각각이라 짓궂은 사람을 만나 낭패 보는 경우도 적지 않은 세상이다.

성격이 지독히 인색한 사람처럼 상종하기 어려운 상대도 없을 것이다. 안으로 집어넣을 줄만 알았지 일단 들여놓은 것은 밖으로 내놓을 줄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일방통행으로 받기만 하고 전혀 베풀 줄은 모르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랴. 각자도생으로 제멋에 사는 세상인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인정머리가 있네, 없네 비난을 퍼부어 봤자 자신에게 돌아올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소위 ‘말한 사람 입만 아프다.’

하여도 분명, ‘바농으로 질러도 피 혼 바울 안 날 사름’이 있긴 있는 세상이다. 자고로 인심 좋은 제주에 이런 속담이 있었으니. 하긴 사람이라고 다 한가지인가. 백인백색이고 천인천색이거늘. 사진=픽사베이.
하여도 분명, ‘바농으로 질러도 피 혼 바울 안 날 사름’이 있긴 있는 세상이다. 자고로 인심 좋은 제주에 이런 속담이 있었으니. 하긴 사람이라고 다 한가지인가. 백인백색이고 천인천색이거늘. 사진=픽사베이.

하지만 오죽했으면 ‘바농으로 찔러도 피 혼 방울 안 날 사람이여’라 나무랐을 것인가. 바늘로 찔러 피 한 방울 나지 않는다 한 것은 뻔한 과장이다. 그것도 사실 아닌, 사실보다 크게 늘려 말한 향대과장(向大誇張). 이렇게 표현해야 실감이 날 것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의 극대화를 위한 기법이라 하겠다.

그런다고 고대소설 ‘흥부전’에 나오는 놀부만큼 인색하랴. 놀부야말로 본시, 심술 갈비 하나를 덧붙여 태어난 작자로 지독한 인물로 묘사됐다. 천하의 구두쇠, 깍쟁이에다 심술쟁이가 아닌가.

흔히 하는 얘기로, “시상에 우동 혼 그릇 살 줄 몰르는 사름 (세상에 우동 한 그릇 살 줄 모르는 사람)”,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사람이 분명 있다. 물론 나름의 처세법이 있을 것이지만, 너무 지나치면 사회생활에서 낙오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돈을 모아 치부하는 세상이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혹여 자립심이 강하다든지 남에게 일절 폐를 끼치지 않는다든지 하는 생활신조를 세우고 원칙대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근면하고 강인한 생활인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잘 분별해 신중하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하여도 분명, ‘바농으로 질러도 피 혼 바울 안 날 사름’이 있긴 있는 세상이다. 자고로 인심 좋은 제주에 이런 속담이 있었으니. 하긴 사람이라고 다 한가지인가. 백인백색이고 천인천색이거늘.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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